유열의 음악앨범, 외모지상주의가 구원한 살인자

정지우 감독. 유열의 음악앨범

by 백승권

미수(김고은)는 동네 빵집을 한다. 현우(정해인)는 출소 후 두부를 찾는다. 정신 나갔다. 빵집에서 두부를 왜 찾아. 두부를 찾던 애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다. 빵집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다시 찾아온다. 무리들과 어울리다 괴롭히던 학생이 죽었고 그 혐의로 감옥에 가야 했다. 직접 밀지 않았을 수도, 덜 때렸을 수도 있다. 조금 멀리서 야 적당히 해 그러다 죽어 이랬을 수도 있다. 같이 있었고 가해자 용의자다. 죽은 자의 가족에게서 용서받지 못할 자. 미수와 가까워지는 현우는 이 사실을 절대 알리지 않는다. 사람 죽이고 깜빵 간 새끼가 아닌 성실하고 잘생긴 빵집 직원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이게 쉽나. 같이 놀던 애들이 현우를 찾는다. 현우는 시비에 휘말리고 빵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몇 년 후 둘은 다시 만난다. 좋아 죽는다. 내일 같이 지내던 누나 보러 가고 싶은데 현우는 내일 군대 간다. 분단국가의 비극. 현우와 미수는 고요하고 어색한 밤을 보낸다. 현우 제대 후 둘은 다시 마주친다. 현우가 이사 간 미수의 집에서 월세 산다. 둘은 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기서 끝나면 광고보다 더 짧다. 미수의 삶이 있고 현우의 삶이 있다. 미수가 판단하는 미수의 삶은 후지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귀마개 없이 한시도 앉아 있을 수 없는 굉음의 공장 사무실에서 문서를 정리하며 먹고살아야 한다. 좋은 일이 없다. 힘들고 힘들고 내가 싫어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 커리어의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작은 출판사로 취직하기 전까지.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사장은 미수를 좋아한다. 서서히 접근한다. 미수의 삶에서 어느 부분이 약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현우는 전과자의 삶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지만 가장 가까운 무리가 범죄자다 보니 항상 엮인다. 미수는 궁금하다. 그러다 알게 된다. 현우의 과거. 미수는 이제 괜찮다고 한다. 힘들어 말라고. 현우는 욱한다. 가장 사랑하는 자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진실이 털렸다. 가출한다. 과거 어울렸던 새끼를 패러 간다.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을 믿는 자에게 돌아간다. 부모도 연인도 친구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 나를 믿는다고 한 유일한 사람. 빵집에서 같이 일했던 미수의 언니, 은자(김국희) 누나에게. 은자 누나가 기가 막히게 만든 수제비를 먹으며 현우는 운다. 쓰다 보니 현우는 은자 누나와 맺어졌어도 딱히 이상하지 않을 뻔했다. 물론 현우가 덜 생겼으면 믿는다거나 수제비를 준다거나 반가워한다거나 같은 따스한 태도는 확실히 덜했을 거다. 현우를 구원한 건 현우의 외모다. 역시 외모지상주의가 최고다.

미수와 현우는 다시 만난다. 그때 미수는 대표(박해준)의 억대 럭셔리 스포츠 세단 마세라티를 타고 있었다. 현우는 팔다리가 전부였다. 미수는 운다. 팔다리뿐인 현우가 제로백 4.7초짜리 마세라티를 쫓아간다. 대표는 웃는다. 어이없지 솔직히. 미수는 운다. 미수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마세라티는 멈춘다. 미수가 내리고 억지로 안긴 후 현우를 밀어낸다. 숨기고 싶었던 남자와 알고 싶었던 여자는 헤어진다. 뛰지 마 뛰지 마 현우야 현우는 돌기둥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운다. 한 발도 뛰지 않고 어깨를 들썩인다. 첫 만남이 그랬듯 영화는 끝까지 우연과 기적으로 둘을 기어이 붙여준다. 유열이 신으로 등장한다. 이름을 호명하여 떨어진 인간들을 바로 붙여주는 신. 영화는 미수의 미소로 끝난다. 마세라티 없으면 자신도 한강 다리를 뛰어서 건너야 하는 보행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언젠가 후회하게 되겠지. 하지만 현우가 잘생겼으니까 그날은 좀 더디게 올지도 모른다.

영화는 학생 시절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 현우에게 평생의 형벌을 지운다. 사회 안에서 산 채로 매장시킨다. 조심스럽게 얻은 관심과 사랑을 잃을까 봐 평생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무덤에서 겨우 기어 나왔다고 여기면 과거의 망령들을 소환해 다시 과거의 죄악의 구렁텅이로 처넣는다. 죽인 자를 부활시킬 수 없기에 죽을 때까지 고통스럽게 만든다. 장난처럼 괴롭혔고 장난처럼 죽였다. 용서도 구원도 없다. 이런 현우에게 미수는 치트키였다. 가면이었다. 진한 화장이었다. 과거의 또는 진짜 모습의 자신을 가릴 수 있었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다고 최면에 빠지게 만들었다. 깨고 나면 슬픈 꿈. 끝까지 숨기고 모르고 가짜여야 했다. 진짜 현우가 미수에게 발각된 날, 현우는 도망친다. 현우의 죄를 알게 된 미수를 과거로 만든다. 현우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죄인은 평생 홀로 울어야 했다. 미수가 현우를 선택하고 현우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현우는 각오해야 한다. 죄를 묻지 않으면서도 죄를 알고 있는 자와 평생 마주하며 살아야 한다. 죽은 자가 돌아올 리 없고 유족의 슬픔은 나아질 길 없을 테니 나는 가해자에게 영화라는 이야기가 내리는 이런 형벌의 방식이 맘에 든다. 사랑은 구원이 아니다. 더한 구속이 되어야 하고, 죄인을 경계하는 자로 만들어야 한다. 현우가 남은 생 같은 죄를 짓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환원하며 용서를 구한다면 그제야 미수는 선의의 감시자가 아닌 사랑받을 자격을 부여하는 새로운 세계의 연인으로 안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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