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피울음

이창동 감독. 밀양

by 백승권

밀양에서 여자의 삶은 억척스럽기 그지없다. 알몸으로 가시밭을 뒹굴 듯 그녀의 생채기는 피와 수분이 다 빠져나와 의지를 지탱할 어떤 여분의 물리적 조건도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 그때 약사가 처방해 준 것은 진통제가 아니라 믿음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당신을 지탱할 거라며 약사는 그녀를 전도했다. 처음에 그녀는 믿지 않았다. 보이는 것도 못 믿는데 보이지 않는 햇살 속의 은혜를 찾으라는 건 코웃음 나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남편을 닮은 아이가 죽자 그녀는 잡을 곳이 없었다. 그녀가 의지할 곳은 이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피울음을 토하고 그녀는 신과 가까워졌다고 믿었다. 표정은 밝아졌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가며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고난을 겪은 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해맑은 웃음으로 그녀는 교화되어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였지만 그것은 기적이라 불려졌고 그녀는 이제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마저 새로운 건 아니었다.


아들을 죽인 범인의 면회를 다녀오던 날. 그녀의 눈은 뒤집힌다. 그녀는 더 이상 신이 자신만 돌보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살인자에게도, 자식과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도 공평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새 그녀는 자신만의 잣대로 신을 재단하고 있었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에게 복수하며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잘 아물지 않는 상처를 보란 듯이 다시 헤집고 있었다. 더 이상의 기도도 찬양도 없었다. 더 크게 울고 더 기이한 행동을 되풀이할 뿐. 희망은 공기처럼 늘 맴돌고 있었음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을라치면 시험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아들의 죽음을 잊고 여생을 즐길 어미는 어디에도 없다. 아들이 죽는 순간, 그녀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굳이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용서는 세상 모든 종교들의 기본 덕목일 것이다. 진정한 믿음이 시작되는 기반이기에 수백 년이 지나도 끊임없이 설파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죄짓는 일을 여전히 만류하고 있다. 하지만 용서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 일이 있다. 그것은 언어로 나타내고자 하면 그 정의가 너무 축소되는 것이다. 아무리 울어도 슬픔이 가시질 않고 위액을 토해내도 먹먹함이 가시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손이 저질렀어도 그걸 막지 못한 자신이 더 큰 죄인이고 이렇게 남아 살고 있는 비겁함이 너무 싫어 죽으려 죽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는 일. 삶이 죄가 되는 순간, 용서는 부질없어진다. 내가 용서 한들 죽은 이가 되살아나는 일은 없을 테니, 우린 그냥 용서하고 용서받았다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봐주며 지겨운 미움을 끝내는 것이다. 끝이 아닌 타협, 인간사에 썩둑 베어지는 일이 있을까? 여자는 누구도 용서하지 못하지만 하늘은 그녀에게 햇볕을 남긴다. 이제 볕으로 나오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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