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민 감독. 인간수업
어떤 삶은 구원받지 못한다. 능력 부족이 아니다. 능력이 넘쳐도 구원은 없다. 보통 사회 진입 시기에 깨닫게 된다. 개인의 능력은 구원이란 혜택과 거리가 멀다고. 그런데 이걸 보다 이른 나이에 깨달으면 많이 힘들다. 지옥이란 표현을 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지독한 고통의 연속. 각자의 맥락이 서로 달라 지옥이란 말이 어울린다기보다 남들에게 한마디로 설명하기 편해서 주로 쓰인다. 누구도 가본 적 없고 가본 자는 말할 수 없는 상황.
오지수(김동희)는 처음부터 혼자였다. 남들처럼 인간의 새끼로 태어났지만 남들처럼 길러지지 못했다. 부모는 도망갔다. 그들도 사연이 있었겠지. 하지만 어떤 사연이든 새끼 버린 부모는 영원히 추궁당한다. 그게 혈연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암묵적이자 절대적인 합의다. 남들처럼 공부하고 학교 가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그런 삶. 보통처럼 보이는 삶. 같은 반 애들과 닮은 삶. 오지수는 거창한 게 아니라 비슷해지고 싶었다. 그 비슷한 삶 속에도 각자의 지옥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걸 알고 싶지 않았을 뿐.
오지수의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란) 두려움이 생존 회로를 빠르게 돌렸고, 자신을 미성년자 성매매 범죄자에서 보호 브로커로 합리화시킨다. 당황하면 학주와 경찰 앞에서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외치는 오지수가 자신의 성매매 범죄가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건 아무리 짜 맞춰도 캐릭터 밸런스 붕괴다. 절박해진 인간이 어디까지 간교해질 수 있느냐를 표현한 부분이라면 또 몰라도. 자신을 속인 후에 모두를 속이려 했다는 게 차라리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이런 캐릭터를 처음 본 건 이와이 슌지 감독의 2001년 작품 '릴리 슈슈를 위하여'였다. 왕따와 학교 폭력을 당하던 소심한 남학생이 학년이 올라가며 일진 두목 같은 캐릭터로 바뀌며 같은 반 여학생에게 성매매를 시킨다. (이후 그 여학생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20년 전 그려진 일본의 교실이 2020년에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의 소재로 등장한 셈이다.
10대 성매매 범죄자 오지수에게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캐릭터들이 투입된다.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실장(최민수), 남자 친구 선물 사주려고 성매매와 연결되는 일진(정다빈), 재벌 부모 아래서 옥죄이다가 자발적 성매매 범죄 가담자가 된 핵인싸(박주현), 쿨한 꼰대지만 힘없는 담임(박혁권), 노력하지만 마찬가지인 경찰(김여진), 오지수를 지옥에 밀어 넣은 도박중독자이자 첫 번째 가해자 오지수 애비(박호산)까지. 모두 오지수에게 얽혀 있지만 각자 지옥에서 헤어나기 바쁘다.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군상들, 누가 누굴 구원하나. 다들 자기 지옥 챙기느라 오지수 지옥은 안중에도 없다. 남은 건 공멸뿐이다.
처음이 힘들지. 오지수의 성매매 범죄는 빠르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스템이 된다. 공급과 수요가 연결되고 수익을 창출한다. 오지수의 생활비와 학비가 축적된다. 어쩌면 대학 등록금과 미래 생활 자금까지. 은행이나 재벌 비자금을 해킹했다면 근사한 금융 범죄처럼 보였을 텐데. 오지수는 악독하게도 그 좋은 머리로 가까운 최약자들을 숙주로 삼는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했겠지.라고 얼마나 스스로를 다독였을까. 최악을 막기 위해 실장을 배치하고 경찰을 부른 자신에게 정의의 사도라며 으쓱거렸을까. 한철 기행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오지수의 범죄는 명분이 보호해줄 영역에서 시작부터 벗어나 있었다.
변태들의 가학 행위, 산채로 몸을 토막 내는 살인, 온몸을 흉기로 난자하는 집단 폭력 등이 오지수의 10대 성매매 범죄와 줄줄이 엮여 있었다. 나비효과. 나쁜 선택은 더 많은 나쁜 선택으로 이어진다. 가난이 범죄로 '어쩔 수 없이' 이어졌다고 정당화시키면 마음이 편했겠지. 오지수는 범죄라는 옵션을 선택했다. 좀 더 빠르고 쉽고 오랫동안 들키지 않게 돈을 벌 수 있는 일. 자신도 죽을 뻔했지만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을수록 오지수는 피와 폭력에 둘러싸이는 일이 불쾌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아이고 이걸 어쩌지 난 어떡해 같은 징징이 표정으로 가면을 쓰고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나도 다쳤는데 남도 다칠 수 있지. 내가 경고했는데 네가 말을 안 들었으니 다친 건 니 책임이야. 시체가 늘어난다. 틀린 답에 재시험은 없었다. 인생은 실전이고 죽은 자가 부활하는 퀘스트는 없다.
사람들은 같은 시공간 안에 살고 있지만 엄격한 동선으로 분리되어 있다. 범죄의 판으로 들어온다면 동선은 이전의 세계와 완전히 달라진다. 학교-집이 아니라 학교 모텔 성매매 폭력 살인 지옥 반복 이런 식이다. 오지수의 인간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답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오지수는 알고 가담하고 판을 짰으며 다수의 파멸로 확장되었다. 지금도 오지수 같은 인간들은 자기 연민에 빠져 울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희생시킨 약자들의 피에 젖은 손과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