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디 단 꿀맛을 품은 채 손길을 기다리는 노란 참외 다섯 개. 방습제가 없어 세일한다는 도시락 김 여덟 개. 칼로리 따져가며 꼼꼼히 고른 콘프레이크 한 봉지. 고지혈증 약을 복용하면서 마시게 된 저지방 우유.
습관처럼 영수증에 적힌 24.300 원이 정확한지 후다닥 머릿속으로 계산해본다.
대충 맞는 듯. 기계가 계산하는데 오죽하려고.
'봉투 드려요?'
'종량제 봉투 한 장 주세요'
마트에 올 때마다 남들처럼 거창한 장바구니가 필요한 적은 없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비닐봉지 손잡이를 엇갈려 꿰어 차고 부피가 큰 김세트는 옆구리에 끼고 오면 그만이다.
그러고도 한 손이 남는다.
이번엔 순전히 머리가 아닌 검지 손가락 끝의 영험한 기운으로 어떤 숫자와 기호가 눌러지는지도 모르면서 익숙하게
삑. 삑. 삑. 삑. 삐리리.
기억력이 아닌 손가락이 열어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일단은 사과고 우유고 뭐고 다 귀찮다
지난해 지독한 결정장애의 선택이었던 아일랜드식 탁위에 장 봐 온 것들을 아무렇게나 던져놓는다.
해넘이가 가까워지는 이 맘때쯤의 일상은 언제나
그랬다.
"시장 갔다 올게. 숙제 다해놓고 있어"
한 시간 남짓 후에 엄마는 손잡이가 늘어져 볼품없는 시장바구니에 저녁 찬거리를 한가득 사 오시곤 했다.
운이 좋으면 시금치며 고등어며 찬거리 꾸러미 속에 아직 김이 다 식지 않은 따끈한 순대나 호떡 한 봉지가 담겨있곤 했다.
그렇게 엄마의 수고로 차려진 밥상에는 노릇노릇 앞 뒤로 기름지게 잘 구워진 고등어 한 마리가 아버지 국그릇 가까이 자리 잡고 있었고 된장과 참기름으로 버무려진 시금치무침에 넓적넓적 두툼한 돼지고기가 둥둥 떠있는 푸짐한 김치찌개가 놓여있고 밥상 한편에는 늘 그렇듯 이쑤시개를 박아놓은 김 한 접시가 자리 잡고 있다.
밥상을 들이기도 전에 반찬투정부터 하고 보는 막내 흰밥 위에 얹어져 있는 마아가린 한 숟갈과 간장도 김 접시만큼이나 익숙하다.
항상 말씀이 없으셨던 아빠는 tv 뉴스에서 눈을 못 떼시면서 식사를 하시고 엄마는 뒤로 물러나 고개까지 내젓는 우리 남매의 밥 위에 시금치나물을 두어 젓갈씩 꼭 올려주셨다.
시뻘건 국물이 진했던 돼지김치찌개는 지금.. 그때보다 고기를 더 넣어봐도 그렇고
온갖 재료를 넣어 끓여봐도 절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왜일까.
엄마는 그렇게 당신의 소소한 하루 일과가 끝나갈 즈음이면 윗목 TV 앞에 자리 잡고 앉으셔서
달동네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이 반복되는 연속극에 푹 빠져 계셨다.
뒤통수가 불룩했던 텔레비전 브라운관속의 배우들의 표정에 따라 엄마의 표정도 바뀌곤 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익숙하게 양손으로는
마당에서 걷어온 빨래들을 끌어안고
확인할 필요도 없이 세탁물의 주인 별로 한편에
개켜놓으신다.
초저녁 잠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아랫목에 모로 누우신 채 마저 읽지 못한 두툼한 월간 신동아를
베고 잠이 드셨다.
숙제를 끝내고 책가방을 챙겨놓고 양치질까지 마친
내복 바람 남매들의 놀이는 기어이 다툼으로 번지고 눈물에 분함에 씩씩거리며 파고든 엄마품에선 늘 고소하면서 매운 향이 스치는 양념 냄새가 나곤 했다
내가 눈 감는 그 순간에도 부를것만 같은 아픈 단어.
엄. 마.
그 시절 내 코끝에 배어있던 엄마품의 짙은 양념 냄새도.. 돼지고기 김치찌개의 깊은 맛도 잊은 지 30여 년이 된듯하다.
뒤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그립지 않은 것들이 없다.
지나간 사소한 것들이 소중해지고 그리워지는 나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만큼 기억과 추억이 쌓여간다는 것.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 혼자가 된 지금.
문을 열면 불이 켜져 있고 큰 냄비에 국을 끓여 한 국자씩 덜어먹으면서 생선 한점, 고기 한 젓가락 얹어주고.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있어도 그것이 흉이 되지 않는 그런 가족.
내가 아프면 걱정해줄 사람들.
내가 늦으면 기다려줄 사람들.
그들이 그립고 함께했던 그 시절이 많이 그립다.
내가 끌어안고 이고 지기엔 너무나 무거운 그리움의 무게들.
그 무게에 짓눌린 내 심장은 뱉어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삼켜내야만 했던 내 속울음을 받아내느라 이미 굳은살이 박일 대로 박여 단단해져가고 있다.
총 한 자루 쥐지 못한 채 전우도 없는 전쟁터에 내던져진 심정으로 아슬 아슬한 하루를 살아내는 오늘.
세상살이에도 스톱워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다면 내일이 두렵지 않을 텐데.
되돌리고 싶을 때 누를 수 있는 리셋 버튼이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텐데.
괜찮아. 늦지 않았어. 이제부터 잘살면 돼.
혼자 위로해보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고 너무 많은걸 잃어버린 건 아닐까.
그래도 나이 들어가는 내가 슬프지 않다.
돌아보면 내가 품고 가야 할 소중한 기억들이 많기에.
내일은 얼마만큼의 기억을 안고 오늘을 돌아보게 될까.
지금 내가 끌어안고 살아가는 소소하지만 정겨운 추억으로 오늘이 기억되어야 할 텐데.
행복한 그 시간에 멈추고 싶고 때론 후회 투성이라 다시 시작하고 싶은 스톱워치는 없지만
그리움이 겹겹이 포개져 굳은살로 단단해진
이 심장으로 난 또 오늘을 살아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