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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di Oct 17. 2023

열정은 모르겠고, 안정은 있습니다 (2)

난 누구보다 회사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주 5일, 최소 40시간을 쏟게 되는 노동이 당연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으면 좋긴 하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에 부지런히 근본적인 대책을 탐구하기보다 나는 조용히 취미 하나를 결제한다.


회사원이 되고 익숙해진 것은 바로 내 행복과 활동성을 외주 맡기는 일인 것 같다. 돈을 벌기 때문에 어쨌든 일 바깥의 내 일상은 매우 안정되어 있고, 이것만으로도 나는 매일 출근을 한다.


돈이 없으면 못 사 먹을 복숭아 샌드위치. 또 먹고 싶다.



하지만 일상이 무탈하다고 해서 ‘일’의 시간을 마냥 견딜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쪽 업계의 성수기가 되면 나는 야근은 물론 휴일 출근까지 불사한다. 추가 수당은 포괄임금제라는 이름으로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 이런 시기에 일상의 안정만 바라보다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나는 말라죽을 것이다.


몇 년 전 인턴을 막 마쳐갈 때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청년인생설계학교에 참가한 적 있다. 아직도 매 반기마다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사유와 활동을 함께 하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도록 도와준다.


인턴 당시 동기들은 전부 대학원생들이어서 다들 돌아갈 곳이 확실했는데, 나만 학사 졸업생으로 둥둥 떠다닐 생각에 여기저기 고민을 흘리고 다녔더니 지원 권유를 받았다.


정말 재미있고 알찬 프로그램이었고, 그때 사귄 친구들은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직접적으로 얻은 것들은 희미해졌으나, 흔적은 더욱 짙게 남은 것이다.


여전히 기억나는 활동 한 가지는 명예, 돈, 자율성 등 각자가 삶과 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따져보는 시간이었다.


여러 방면으로 체계적으로 점수를 매기고, 토너먼트를 하듯 그어내다 보니 ‘사회적 효용성’과 ‘관계’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쓸모’ 있는 일을 하는 게 내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구나, 스치듯 생각했다.


이후 곧바로 지금 직장에 취업했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니 효용성을 따질 수가 없었다. 다만, 귀사의 인재들과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매우 어필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얼마 전 연이은 야근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을 때, 외국 메신저로 연락이 하나 왔다. 또 다른 해외 클라이언트일까 진저리를 우선 치고 보니, 1년도 전에 딱 한 번 협업했던 곳 담당자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현재 고객이 아니므로 좀 편하게 긴 메시지를 확인했다. 짧게 줄이자면, 당시 회사에서 이직을 했고, 협업할 곳을 찾고 있고, 그때 나와의 기억이 좋아서 개인적으로 먼저 연락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치 신의 계시 같았다.


요 며칠 일하기 싫다고 염불을 외웠더니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하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 외에도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들이 있다. 이번과 같은 칭찬과 인정은 그중 빠르게 휘발되는 편이다. 내게는 오히려 연차가 차면서 만나게 된 신입 분들의 우는 소리가 큰 원동력이 된다.


“대리님 저 어쩌죠?” “대리님 꼭 휴가 가셔야 하나요?"

“대리님 저는 ‘빵개국어’인가봐요” 등등 어린 나보다도 어린 친구들의 걱정과 고민을 듣고 있으면 그게 별 거 아니라는 것, 도와줄 내가 있고, 조금만 지나면 너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노동이 가치 있다는 것도 상기 시켜주고 싶다.


매일 작은 사무실에 갇혀 다르지만 비슷한 일을 하다 보면 내 일이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주는지, 애초에 이 일이 왜 돈벌이가 되는 건지 종종 잊게 된다.


시야가 좁아지는 건지 프로젝트 말미마다 분명하게 보이는 수치나 결과물 보다 다른 사람의 인사 한 마디가 더 큰 보람이고, 어쩌면 있을지 모를 성과급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의기투합이 더 힘이 된다.


결국 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이다. 일상에서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지금 일을 지속하는 건, 사람과 부대끼며 일하는 맛이 곧 내게 또 다른 안정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난 내가 내 일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미래가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믿는 것은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쳐도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결국 내 동아줄이 되어 줄 거라는 점,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결국은 어떠한 좋은 면을 발견할 거라는 점,


그것이 내 안정의 또 다른 주춧돌이 될 거라는 점이다.





아는 사람에게 먼저 글을 보여주는 일이 없다.

내 글을 보여주는 건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 글도 내 가까운 사람들, 특히 안정을 준 일상과 회사 사람들에게 전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그들에게 내 안정을 빚지고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따로 갚지는 않겠지만 나 역시 그들 주변에서 비슷한 존재가 되겠다고 약속은 해 본다.







Q. 안녕!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해.


A. 홍보일을 2년째 하고 있는 김서야. 여기저기 휩쓸려하는 일이 많지만 고집도 센 편이야.


Q.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A. 내가 또 얘 열정에 휩쓸리는구나.


Q. 이 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단을 꼽아보자면?


A. “주 5일”로 시작하는 문단. 써놓고 보니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니는 이유를 잘 보여주더라고.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는 사회초년생들에게 한마디 남겨줘!


A. 퇴사를 하는 쪽이든 남는 쪽이든 불안함을 안고 지내는 시기인 것 같아. 각자에게 각자의 길이 있다는 마음으로, 설령 길이 아닌 곳을 걸어도 즐겁길 바라!




김서
-글로벌 홍보 업계 2년 차
-특기 : 끌려다니기 (이 프로젝트도 끌려와서 함..!)
-장기 : 열정 없어도 열심히 하기, 간 보기 (취미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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