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kadi Oct 18. 2023

백수들의 회사놀이 (2)

몇달전까지 백수였던 나, 눈떠보니 백수 회사에서 1일?!


백수 사원들은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위로를 전했다. 자신이 더 화를 내며 정말 나쁜 회사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일하는 도중에는 내가 너무 나약해서 이 모든 것들을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많이 고민했어요.”

내 말에 많은 백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저도 그랬어요.”


“내가 일을 그만둘만큼 힘든 처지인지 매일 고민했어요. 그런데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고요. 더 빨리 일을 그만뒀으면 건강을 해치진 않았을텐데.”


백수 사원과 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모두 고유했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 흔해 빠진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청년 취업난, 임금 체불, 직장 내 괴롭힘, 블랙 기업, 조용한 퇴사, 고시 낭인, 번아웃 등. 우리가 겪은 일들을 지칭하는 사회적 표현들은 이미 넘쳐났다.


이 모든 일은 하나하나 뉴스에 보도되지도 않을 만큼 흔해 빠진 일이었기에 그저 귀찮게 발에 치이는 여러 소식 중 하나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었다. 흔해 빠진 이야기들은 흔해 빠졌다는 점 때문에 보다 복잡한 비극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흔해 빠진 고통 속에서 삶이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마음의 힘이 없을 때 방은 쉽게 더러워졌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괴로웠고, 친구들이 직장에 모두 있기에 고통을 스스로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니트컴퍼니에서 세상 사람들이 조명하지 않는 백수들의 비극과 희극을 모두 볼 수 있었다. 헌신하다가 헌신짝 된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 언젠가 고통받았던 사람들, 회사가 무서워진 사람들이 거기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몇 개월간의 프로젝트 끝에 반짝이는 전시회를 만들어내고는 했다.


나는 누군가는 보고 웃어버릴 백수들의 전시회를 보며 그들의 일상을 상상했다.


“회사가 무서워서 취업하기가 싫어요”라고 말하며 슬픈 표정을 지었던 사원은 달리기를 하며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취업 사이트에 올라온 회사 중 가고 싶은 곳이 전혀 없었어요”라고 말했던 사원은 그림을 그리며 제2의 인생 경로를 준비했을 거다.


“불안감에 밤에 잠을 잘 수 없어요”라고 말했던 사원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명상으로 좀 더 깊은 잠을 청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업무 인증을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니트컴퍼니 전시회 작품 중 하나. ‘시도하는 사람’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다. ©️니트생활자 홈페이지



마치 내가 언젠가 해 본 게임처럼, 백수 사원들은 모두 그 시간동안 레벨업을 했다. 전시회에서 백수 사원들은 초창기 수줍음과 민망함을 버리고 아주 뻔뻔스럽고 훌륭하게 본인들의 ‘일’을 홍보했다.


“제가 또 실천력이 좋잖아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때로는 우울한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도 전시회에서만큼은 활짝 웃었다.


게으르고 지저분한 것도 하나의 모습이었지만 반짝이는 것도 하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본 백수들은 모두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간들이었다.


전시회가 끝나는 날 백수 사원들은 모두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는 날 모두가 서로에게 큰 박수를 쳐줬다. 퇴사 축하를 해주는 회사라니, 그 광경을 보는데 웃음이 나왔다. 퇴사를 한 몇 명은 취업에 무사히 실패한 후 ‘경력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회사놀이 기수에 다시 신청하기도 했다.


니트컴퍼니를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자영업자로, 예술가로, 직장인으로 전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다 어떻게 살아갈까?


백수들의 스토리를 착실히 해금한 나는 백수를 떠올릴 때 술병과 퀴퀴한 냄새, 감지 않은 머리와 좁아 터진 고시원 대신 다른 것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것은 뽀짝과 리데이, 리추얼과 썽, 그린과 문어빵, 탱구와 같은 이름이기도 했고, 백수 사원들과 나누었던 대화이기도 했으며, 알록달록하게 채워졌던 커뮤니티 업무 인증 사진들이기도 했다.


백수들이 퇴사를 할 무렵, 우연히 평소 가고 싶었던 회사에 붙었기 때문에 나도 니트컴퍼니를 떠나게 되었다.


계약기간이 거의 만료되고 있을 무렵이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퇴사 소식을 전했을 때 모두가 크게 축하를 해줬다. 역시 정말 이상한 회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트컴퍼니 이후에도 내 삶은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았다. 새로운 회사에 취업한 이후에도 여전히 인정받기 위해 전전긍긍했고, 일요일 저녁이면 출근하기 싫어 체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민원 전화를 받다 힘들어서 탕비실이나 화장실에 앉아서 훌쩍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친해진 직원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기도 했고, ‘사회생활 꿀팁’, ‘일 잘하는 법’과 같은 영상을 찾아 시청하기도 했다.


일이 너무 하기가 싫을 때는 몰래 트위터를 켜서 “오늘도 출근한 내 인생이 레전드”라고 쓰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결코 ‘레전드’가 될 수 없는 극히 평범한 2030 여자들의 사회생활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은 그 반짝거리는 전시회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돈 버는 일만 일이라 인정하는 세상에서 잠시 멈추어 돈은 한 푼도 가져다주지 않는 일들을 하며 행복을 느끼고, 자신을 돌보며, 미래를 그렸던 사람들을 생각할 때면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나에게 돈을 가져다주는 일만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운 좋게 하고 싶었던 일들 중 일부를 해볼 수 있는 직장에 취업한 나와 달리, 세상에 아주 많은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주는 회사에 다니지 못했다.


그 사람들 중 일부는 회사를 떠나 백수가 되었다. 회사를 떠난 것 뿐인데 이들의 소망과 꿈, 하고 싶은 일들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치부되었다. 마치 백수가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MZ라는 말로도, 백수라는 말로도, 유령이라는 말로도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을 새롭게 보기 위한 아이디어는 예부터 많이 존재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을 보전해주자는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도, 조금 덜 일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더 많이 상상하자는 주 4일제나 노동시간 단축도,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활동들을 한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제도도 논의된 적 있다.


세상이 항상 그렇듯 일에도 기쁨과 슬픔이 늘 따라붙는 것이겠지만, 어쩌면 그 모든 아이디어들은 일의 기쁨 쪽에 무게를 더 실어줄 수 있게 만드는 기폭제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백수와 직장이 괴로운 사람들에게 돈이 안 되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자고 부추기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니트컴퍼니 바깥에서 회사놀이를 할 수 있을까? ©️니트생활자 홈페이지



그래서 일은 당신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요? 누군가 물어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 속에는 그 반짝이는 전시회와 매주 진행했던 주간회의, 업무 인증 게시판과 니트컴퍼니 이야기도 꼭 들어간다.


돈 안 되는 일들도 소중한 일이 될 수 있다고도 주장해보고 싶다. 그 반짝이는 전시회들이 놀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과 추억과 꿈이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열심히 설명하고 싶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회사 놀이’를 할 수 있다면. 누군가는 미친 소리라고 얘기하겠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하고 멋지고 우스운 전시물들을 만들어 낼지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Q. 안녕,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해.


A. 안녕? 난 신민주, 20살 이후 다녀본 회사만 6개인 프로 퇴사러야. 취업 사기를 당하거나 계약직으로 일하느라 이렇게 되어버렸네. 다양한 회사 경험이 많은 만큼 회사에서 꽤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기도 하는데, 사실 난 돈 안되는 일들을 훨씬 잘하는 것 같아. 요새도 Kpop 아이돌 춤을 배우거나 글을 쓰거나 맘에 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돈 안되는 일을 많이 하고 살아.


Q. 처음 일이란 내게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들었을때, "일은 내게 '0'이다"를 골라줬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


A. 나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야. 안시킨 일도 찾아서 하는 회사가 좋아하는 인재가 나거든. 가끔 내가 3인분의 일을 해내고 있는거 아닌가 싶기도 해. 그렇지만 일을 하다가 아프게 되거나 번아웃을 경험해본 적도 있어. 예전에 계약 해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퇴사한 회사에서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몰래 계단에 앉아 울었던 적도 있거든.


어떨 때는 직장에서 하는 일보다 개인적으로 만든 여러 프로젝트를 하는게 재미있기도 하고. 나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정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을 엄청 하기 싫어한다는 것도 알아. 전체 사회적으로 일은 어쩌면 마이너스에 가까울수도 있겠지.


글감을 정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게 백수 회사에서 백수들과 회사놀이를 했던 시간이었어. 일이 싫어서 퇴사했지만 일을 너무 하고 싶은 사람들도 그 곳에 있었고, 일 자체가 무엇인지 고민을 던져주었던 사람들도 있었어. 하고 싶은 일은 온통 돈이 되지 않는 것들뿐인데 그런 일이 직업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무엇을 '일'로 부를 것인지 고민이 되더라고.


나는 우리 사회에서 돈 되는 일만 일이라 인정한다해도 돈 안 되는 일들도 일이라 생각하긴 해. 그런 측면에서 일이 내 삶에 "0"이라 골랐어. 언제든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이동할 수 있는 수치가 0이기도 하지.


그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무엇을 선택할지에 따라 달려있는 것 같아. 돈 안되는 일들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플러스로, 반대면 마이너스로 가겠지.


Q. 이 글에서 가장 말하고싶었던, 핵심적인 문단을 하나만 꼽자면?


A. 백수들의 스토리를 착실히 해금한 나는 백수를 떠올릴 때 술병과 퀴퀴한 냄새, 감지 않은 머리와 좁아 터진 고시원 대신 다른 것들 것 떠올리게 되었다. 그것은 뽀짝과 리데이, 리추얼과 썽, 그린과 문어빵, 탱구와 같은 이름이기도 했고, 백수 사원들과 나누었던 대화이기도 했으며, 알록달록하게 채워졌던 커뮤니티 업무 인증 사진들이기도 했다.


이 부분일 것 같아!


Q. 마지막으로 사회초년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해!


A. 사실 난 회사를 옮길 때마다 다시 사회초년생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느낄때가 많아. 잔뜩 긴장하고, 눈치보고,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하고, 일이 괴로워도 꾹꾹 참고. 동년배보다 퇴사 경험과 입사 경험이 많은데도 그렇더라. 성격탓인지 원래 이런 것인진 모르겠지만.


사회 초년생이라해도 모두 다른 관계와 상황속에 있을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사회 초년생에게 회사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는 하지만, 사실 난 그게 내 상황에 꼭 들어맞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그래도 한 가지 조언은 도움이 되었어.


회사 생활이 괴롭다면 그 부분을 내 삶에서 아주 조그맣게 만들어 버려야한다는 말 말야. 취미를 만들고 친구를 만나고 내가 하고 싶은 돈 안되는 일거리를 만들어보면 좀 인생이 즐거워질지도 몰라.


만약 그런 시간과 힘을 도저히 낼 수 없는 없무 환경이라면 조심스럽지만 이직을 고민해보는 것도 방법이야. 회사를 다니며 이직을 꼭꼭 준비해보는 것으로.. 블랙기업에 다니다가 아픈 사람을 너무 많이 봤어. 나도 그랬고. 어쨌든 이 힘든 시기를 같이 잘 헤쳐나가면 좋겠다!




신민주
-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판을 까는 여자들> 저자
- 돈 안되는 일을 더 잘하는 회사원



이전 07화 백수들의 회사놀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