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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구르르꺄르르 Apr 27. 2022

양화대교에서

나를 유혹하는 다리

사람들은 양화대교와 행복, 두 단어를 곧 잘 연상한다. 잔잔하고 호소력 있는 노래 덕분이다. 담담한 원곡자와 다르게 절절하게 불러낸 오디션 프로 아이돌도 나는 연상한다.


9월 말 어느 토요일 밤. 나는 양화대교로 걸어가며 죽음을 연상했다. 통념과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비참해서, 어둠과 마스크에 내 모습이 모두 가려질 것이기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갔다. 행복하자는 그 노래에 눈물로 저항하고 반발하면서. 절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를 그곳에 데려가서 행복하자는 말을 망쳐놓고 싶었다. 내 걸음은 유난히 빠르게 느껴졌다. 죽음을 결심한 마음에는 시간 필요 없었다.


양화대교 북단에는 야외 운동기구들이 있고 다리 방향과 직각으로 벤치가 있다. 거기에 도착해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눈물을 한참 동안 이어서 흘렸다. 물 위에서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마음도 같이 일렁였고 슬픔은 안정되었다. 그 안정은 슬픔의 시작처럼 너무나 개연성이 없었다. 멋쩍을 정도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기초과학연구원에 따르면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도록 하는 양측성 시각 자극이 공포 반응을 감소시켜준다고 한다. 그래서 분노와 슬픔, 절망으로 다가갔던 양화대교에서 한강의 물빛으로 진정된 게 아닐까.


양화대교를 배경으로 벤치에 앉아 한강의 윤슬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그녀는 무엇 때문인지 결연하게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그곳으로 왔지만 눈물에 더욱 굴절된 빛들을 바라보며 빠르게 진정된다.


나를 유혹했던 양화대교. 죽음으로 유혹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위로로 유혹했다. 택시기사를 둔 가수의 위로의 노래가 괜히 탄생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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