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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구르르꺄르르 Apr 29. 2022

지금이어야만 할 수 있는 것

이런 일탈

3월 말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일에 여유가 생겼다. 반나절만 출근하고 반나절은 재택근무를 하란다. 말이 좋아 재택근무지 덕분에 운동도 하고 등산도 갔다. 그리고 서해안의 깨끗한 일몰을 보았다.


계획 없었다. 그날은 무척 답답했다. 아찔함을 동반한 어지러움을 며칠 동안 겪은 후였다. 스트레스를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무의식적인 압박을 받을 때 종종 있었던 증상이다.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 답답함에 시달렸다. 왜 그런지 안다면 원인에 접근할 수 있었을 텐데 대증요법을 할 수밖에.


그날 오후는,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었다. 곧 재택근무기간은 끝날 것이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혼자서 호적하게 서해안 일몰을 두 번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무작정 기어 D.


군산에서 해물짬뽕을 거하게 먹고 서천 장항으로 넘어갔다. 날씨는 정말 깨끗했다. 근처 캠핑장의 텐트를 구경했다. 평일 오후에 이런 장관이 펼쳐지는 곳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은 것일까. 나도 이런 삶의 이벤트를 만들 수 있는 기회와 여력이 있는 것이기에 억울하지는 않았다.


산책로 데크를 걷고 전망대에 올랐다. 해가 지는 것을  타임랩스를 눌러놓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두대 피웠다. 오직 짜릿함 때문에 하는 짓. 순전히 오직 비뚤어지고 싶었다. 좋은 풍경 속에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 이 장관 바라보며 날씨와 고요가 도와주는, 흔치 않은 기회에서  감수할 수 있는 기회비용이었다.


사진에 웬만하면 보이는 만큼 잘 담기지는 않는데 이 사진은 그때 그 순간의 감동을 비교적 잘 담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일몰과 함께한 일탈.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그 정도의 감동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종종 머릿속에서 생겨나는 일탈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다.


이 사진은 어떤 사람을 넣어서 생각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그냥 저 자리는 오직 나만을 위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편리한 곳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다는 든든한 일탈이었다. 원인에 직접 접근할 수는 없었지만 훌륭한 대증요법이었다.


장항의 일몰. 페이지 접어 놓기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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