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다음 날 아침, ‘언제나처럼’ 그것이 커피를 내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것은 경쾌한 몸짓으로 커피 기계를 다뤘다. 커피를 내리는 그것의 모습이 이제 너무 익숙해서 약간 무서운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러다가 그것이 떠나면 꽤나 적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어, 너 아침부터 기분이 좋구나.” 그것이 내가 웃는 걸 흘끔 보더니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 좋네요.”
“좋지. 좋은 건 좋은 거야.”
“네네.”
“적당히 성의도 없고. 좋네.” 그것이 킬킬거렸다. 나도 그것을 따라서 킬킬거리며 웃었다.
“바쁜 하루의 시작이군.” 그것이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의 계획은 수의사부터 만나는 것이었다.
“어디에서요?”
“병원이지 어디긴 어디야. 수의사는 동물병원에 있지.”
“하지만 저는 데려갈 반려동물도 없는데 무슨 핑계로 동물병원에 찾아가죠?”
“아, 괜찮아. 그건 걱정하지 말아.” 그것이 의자 밑에서 가방을 꺼냈다. 가방 안에는 고양이가 들어있었다.
“세상에나, 어디서 데려왔어요?” 나는 가방을 들여다보며 소리 질렀다.
“데려오지 않았어.” 그것이 킬킬거렸다. “이건 네 환각이야.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나는 말없이 가방 안의 고양이를 들여다보았다. 귀여운 줄무늬 고양이가 웅크린 채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이건 너무…
“… 귀여워.” 내가 중얼거렸다. 그것이 가방에서 고양이를 꺼냈다. 고양이는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그것의 품에 안겼다.
“본인들의 감각을 과신하는 게 인간들의 문제야. 환각과 실제가 그렇게 쉽게 구분될 거라 생각해?” 그것이 고양이를 내게 건넸다. 고양이의 부드럽고 한없이 늘어지는 듯한 몸이, 털이 느껴졌다. 힘차게 골골대는 고양이의 몸에 귀를 갖다 댔다. 이게 실제가 아니라니. 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제 자신도 실제가 아닌 누군가의 환각일 뿐일까요?” 고양이와 눈을 맞추려 애쓰며 물었다.
“그게 중요해?” 그것이 내게서 고양이를 다시 돌려받고는 무릎 위에 두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 너도, 나도 누군가의 환각일 수 있고, 그 누군가도 누군가의 환각일 수 있지. 그 누군가는 또 무엇일까? 누군가의 누군가의 누군가를 포괄하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그렇게 무한히 나갈 수 있지. 그게 너희들을 미치게 만드는 거야.” 그것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너희 세계에 답이 없는 것의 답을 구하지 마.”
병원 대기실에서 삼십 분 정도의 기다림 끝에 수의사와 마주 앉았을 때 이미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을까. 수의사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그것이 대충 알려준 대로 고양이의 증상을 말한 다음 고양이를 면밀히 살펴보는 수의사를 나 또한 면밀히 살펴보았다. 짙은 화장에 가려진 실제 낯빛을 알 수 없었지만 표정이나 목소리에서는 작은 고통이나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실망스러웠다. 그것은 분명 수의사가 고양이를 잃은 슬픔으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 보이는군요. 우선은 피검사를 해보고 초음파와 엑스레이를 볼 예정입니다.” 어딘지 익숙한 말투로 수의사가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양이를 그에게 맡긴 채 대기실로 나왔다. 그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때? 눈으로 보니 만족해?” 그것이 히죽거리며 물었다.
“고양이를 빼돌린 게 확실해요?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이는데.” 나는 누가 들을까 두려워 입을 가리고 소곤거렸다.
“뭐, 고양이를 잃어버린 게 벌써 몇 달 전이니까 일상으로 돌아올 정도의 시간은 지났지. 무엇보다도 지금은 멀쩡해 보여도 저 수의사는 결국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할 거야.”
“음… 저는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요.”
“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눈에 보이는 슬픔, 드라마틱한 절망. 최소한 일상으로의 회복이 불가능해야 복수 아닌가요?”
“너희 인간들은 너무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해.”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슬픔이 저 수의사 안에 있다는 건가요?”
“말이라고 해? 매일 밤마다 울다 지쳐 자느라 충혈된 눈과 부은 얼굴을 짙은 화장으로 가린 것은 눈에도 보이는구먼.” 그것은 혀를 차며 집에서부터 갖고 온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마셨다.
고양이의 검진이 끝나고 나는 다시 수의사를 마주했다. 그것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수의사를 다시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눈이 충혈되어 있다. 그렇게 듣고 봐서 그런지 얼굴도 푸석해 보이고. 어젯밤 기분 좋게 술이라도 마셨나 보지. 대체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자문하며 수의사로부터 고양이를 받아 들었다. 이동장에 다시 집어넣으려고 허리를 굽히던 중 수의사가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것이 보였다. 초겨울 날씨인데도 수의사는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있었다.
하얗게 트고 심하게 갈라진 발이 보였다.
병원을 나선 후 보온병에 든 커피는 맛이 없다며 투덜거리는 그것을 데리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 생각이 간절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새로 내린 커피를 마신 후에야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내 말이 맞지?”
“네.”
“그래, 무엇을 봤지?”
“날이 추운데 맨발이더군요. 살면서 한 번도 양말이라는 걸 신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발이 심하게 트고 갈라져있었어요. 저도 발이 심하게 갈라진 적이 있기 때문에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해 자신을 돌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겠죠.”
“그래. 수의사는 자기 나름대로 자신에게 벌을 주고 있어.”
“잠깐이지만 수의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의사의 오진으로 고양이를 잃은 남자의 발도 보여줄까?” 그것이 킬킬거렸다. 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발도 수의사의 발처럼, 그런가요?”
“발뿐이겠어?”
“지금도요? 지금은 그래도 복수를 한 상태인데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흠. 커피도 마셨겠다, 이제 그를 보러 갈까?”
“어디로요?”
“그가 운영하는 카페. 아주 맛있는 커피를 파는 작은 카페.”
“아, 그래서 그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했군요.” 내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것이 크게 웃으며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가정집으로 보이는 건물의 1층에 위치한 카페는 정말 작았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두 개가 전부였다. 나는 여전히 고양이가 든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야.” 그것이 말했다. “그는 나를 만난 기억이 없어.”
“그것도 일종의 룰인가요?”
“내가 복수해 준 모든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당연히 만난 이들의 기억을 지워버리지.”
그 얘기인즉 나 또한 이 모든 기억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벌써부터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있던 그가 일어서서 우리를 맞았다. 그는 눈도 충혈되지 않았으며 단정하게 양말에 단화를 신고 있었다. 그것과 나는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매고 있던 고양이 이동장을 의자에 내려놓으며 확인하듯 그에게 물었다.
“고양이가 들어있는데 괜찮겠죠?”
“그럼요.” 그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저도 고양이를 키우는걸요. 고양이는 언제든 환영이에요.”
그는 커피를 테이블로 가져오더니 가방 쪽에 시선을 던졌다.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나는 그러라고 말하고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예쁘네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키우시는 고양이는 어떻게 생겼나요?”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는 노란 줄무늬로 몇 달 전에 우연히 길에서 주웠어요. 배고파 보여서 밥을 주니 계속 쫓아와서 그냥 키우기로 했죠.”
“집에 잘 적응했어요?”
“네. 원래 인간과 살던 고양이 같아요. 나이도 적지 않은데 건강상태도 아주 좋고. 혹시 가출한 고양이인가 싶어 주인을 찾아주려 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키우고 있죠.” 그것이 그의 뒤쪽에서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에게는 사장님을 만난 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겠어요.”
“그럴까요?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더니 한 달 정도 지난 후부터는 제 곁에 붙어 있으려고 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전에 함께 살던 아이처럼 행복해 보이지는 않아요. 제 기분이 그래서 그런지.”
“전에 살던 아이는 어땠는데요?”
“그 아이는 아주 예쁜 삼색고양이였죠. 12년을 사는 동안 내내 어린아이 같았어요. 눈만 마주쳐도 골골대며 애정을 표시하던 아이였어요. … 그가 꿈꾸듯 말을 이었다…. 정말 모든 걸 내줘도 아깝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병에 걸려 제 곁을 떠나고, 일 년 정도 지난 후에 길에서 우연히 지금의 고양이를 만났고요.”
내가 유감을 표시하자 그는 괜찮다며 웃어 보이고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것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시며 우리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저는 왜 이들을 만나고 싶었을까요?” 나는 왜인지 허탈한 기분이 되어 그것에게 묻듯이 자문했다.
“고양이가 잘 있는지, 그가 새로운 고양이를 만나서 행복한지 뭐 그런 게 궁금했던 게 아니야?”
“그런가 봐요.”
“그래, 어때 보여?”
“최소한 행복해 보이지는 않아요.”
“그렇게 끔찍하게 사랑하던 아이가 죽은 지 이제 고작 일 년 반이 지났을 뿐인데 새로운 고양이를 데려왔다고 바로 좋아지겠어?”
“그렇긴 해도. 그 고양이가 수의사의 고양이라는 걸 알면 훨씬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까요? 복수를 한 걸 알았을 때는 고맙다고 했다면서요?”
“과연 그럴까? 그는 고양이 위주로 생각하는 인간이라서 말이지, 마음이 약해지면 오히려 수의사에게 고양이를 돌려주러 갈 수도 있어. 자신의 복수와 고양이의 행복을 저울질하다가 결국 고양이의 행복에 복수심이 지는 거지. 그렇게 다시 고양이를 수의사에게 돌려주고 나면 저 인간은 자신의 고양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더 이상 살 수도 없었을 거야.”
“설마?”
“정말이야. 게다가 이건 저 자가 한 얘기라고. 수의사의 고양이를 데려다주고 나는 그만 가려는데 황급하게 자신의 기억을 없애달라 하더군. 어차피 그럴 거였는데 말이야. 수의사의 고양이가 소파 밑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약한 자신이 고양이를 돌려줄지도 모른다고, 어렵게 성립된 이 복수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야. 그래서 어차피 내일이면 나를 만난 모든 기억은 사라질 거라고 말을 해줬어. 안심하는 눈치던데?”
“그것도 좀 이상하네요.”
“또 뭐가? 넌 참 이상한 것도 많다.” 그것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복수에 성공한 줄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이 복수의 완성이라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복수란 모름지기 복수를 했다는 쾌감을 갖고 살아야 성공한 거 아닌가요?”
“네 말대로라면 은행원도 쾌감에 겨워 즐겁게 살았겠지. 바로 그렇게 목을 매달았겠어?”
그도 맞는 말이었다.
“대체 복수란 뭘까요?” 나는 풀이 죽었다.
“내가 보기에 말이지, 인간의 복수란 내 살을 깎아 상대를 죽이는 일이야. 살이 얼마나 깎여야 죽지 않을까? 얼마나 적정 수준으로 깎아야 되는 걸까? 내 살을 깎지 않는 복수란 없어. 내가 좀 도와주기는 했지만 고양이를 잃은 남자는 적정 수준으로 깎았고, 결국 잘 살아남을 거야. 물론 복수의 상대인 수의사도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겠지.”
“살아남겠죠, 어떤 반성도 없이.”
“뭐, 수의사는 반성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형편없는 판결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판사가 제 딸이 죽은 후에 과연 반성을 했을까?”
“그게 목적이었잖아요? 판사가 반성하고 앞으로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앞으로의 판결에는 영향을 미칠 거야. 아무래도 제 딸이 그렇게 죽었으니. 하지만 판사는 반성 같은 건 하지 않았어. 판사는 그저 복수심에 불타 오르고 있지.”
“어이없네요. 자신이 복수를 당한 것도 모르고.”
“자기반성이 안 되는 인간들이 있어.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그런 편이지.”
“자살한 여자의 언니는 어떻게 살고 있어요?”
“그게 말이지, 내가 그간 봐온 사람 중에서 가장 이 상황, 그러니까 복수를 한 상황인데 본인은 그게 자신의 복수인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을 가장 즐기고 있는 사람이야. 그 여자는 여전히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고 있어.”
“그 언니의 경우 기억을 못 하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겠네요.”
“물론이야.”
“하지만 복수는 제 살을 깎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래. 그 언니라는 여자도 복수에 성공한 그 밤에는 매우 고통스러워하더군. 그 여자는 복수가 제 살을 깎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어. 자신의 복수에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기억을 없애는 데 동의하지 않더군. 판사의 딸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지고 가겠다는 거야.”
“그래서요?”
“알았다고 하고는 기억을 지웠지.”
“아하.” 그것답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복수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허무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기억을 지우는 것은 나의 관대한 서비스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알겠어요.”
“자, 이제 수의사의 고양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러 갈까?”
그것과 나는 카페 사장의 집에 들어갔다. 주인 없는 빈 집의 문을 자연스럽게 열고 들어가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것이 익숙한 듯 해가 잘 드는 방에 들어갔다. 창가에 고양이가 오르내릴 캣타워가 있었고, 수의사의 고양이는 그 위에 올라가 있었다. 카페 사장이 설명해 준 대로 노란 줄무늬의, 앞발에 흰 양말을 신은 듯한 무늬가 있는 통통한 고양이었다.
“햇볕을 쬐고 있었군. 기분이 꽤 좋지? 밥도 마음에 들고, 집도 이만하면 괜찮지?” 그것이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고양이가 눈을 감고 그것의 손길을 음미하는 듯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고양이와 대화도 가능해요?”
“인간과도 대화하는데 고양이와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아?” 그것이 킬킬거렸다. 나는 왜인지 조금 부끄러워졌다.
“고양이가 뭐라고 해요?”
“뭐라고 하는 것 같아? 이 표정을 보고 맞춰 봐.” 그것이 계속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양이의 표정을 보기 위해 무릎을 굽혀 눈을 맞췄다. 고양이는 나와 눈을 맞추며 골골 소리를 냈다. 갑자기 눈물이 솟아올라 나는 당황했다. 이런 따뜻함과 다정함을 너무 오랜만에 느껴봤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내게도 그립고도 그리운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안갯속에서 손을 놓친… 이어지던 생각이 다시 안개에 막혔다. 하지만 내게도 너 같은 소중한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대충 수습하고 흘끔 보니 그것은 말없이 고양이만 보고 있었다.
“좋아 보여요. 충분히 행복해 보이고.” 나는 마음속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렇지? 맞아. 나쁘지 않다는군. 이 집과, 함께 사는 인간과, 밥과 간식 등등 모든 것이.”
“함께 살던 수의사가 그립지는 않대요?”
그것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양이를 들여다보았다. “그립다는군. 아주 많이.”
하지만, 그것이 말을 이어갔다, 걱정하지 마. 자신이 버려진 게 아니라는 걸 안대.
“다행이군요.” 이 낙천적인 고양이에게 가방에 든 고양이 친구를 보여주자는 생각을 한 순간 더 이상 내 어깨에 고양이가 들어있는 가방이 매여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며 그것이 한숨을 쉬었다.
“진즉에 그 환상은 사라졌어. 인간이란 정말 둔하다니까. 알면서도 깜짝 놀랄 정도야. 둔하지만 오지랖 넓은 인간아, 눈으로 확인해서 이제 만족해?”
나는 힘없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마지막으로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다. 우주가 담긴 듯한 구형의 투명 수정체가 아름다웠다. 조심스럽게 고양이에게 바짝 다가갔다. 고양이가 하품을 크게 하더니 내게 몸을 살짝 기대고 이마를 몇 번이고 팔에 문질렀다. 고양이의 턱을 쓰다듬으니 가르랑거렸다. 그 희미한 진동을 느끼며 그리움과 슬픔을 느꼈다. 네가 이 집에서도 행복하길 바라. 그것과 나는 고양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