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할멈의 다섯 번째 기일
오늘은 소피할멈의 다섯 번째 기일이다. 기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오묘해서 몇 번째인지 셀 때마다 ‘아니 겨우 이것밖에 안 지났어?’라는 마음과 ‘벌써 이렇게 지났어?’라는 생각이 동시에 튀어나온다. 이런 모순적인 생각은 아이들의 기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며칠 전 커피의 정기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었는데, 검진 결과 신장 수치가 조금씩 계속 오르고 있는 것 외에는 모든 지표가 다 양호하다는 원장님의 후한 평과 함께 ‘이대로라면 커피가 25세까지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덕담을 들었다. 놀랍게도 난 뛸 듯이 기뻐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매우 기뻤으나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 마음을 들킬까 봐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으로는 이런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저는 커피가 이렇게 건강하게 오래 살 줄 몰랐어요.” 당연히 원장님은 커피가 어렸을 때 몸이 많이 약했었냐고 물어봤고, 나는 ‘구토를 자주 했다’고 대충 둘러댔다. 커피는 구토 때문이 아니라 방광결석으로 인한 급성신부전으로 큰 위험을 겪은 바 있으니 하려면 그 얘기를 했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 일을 겪으며 커피가 15살까지만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랬던 커피가 열아홉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사실 내가 못할 말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혼자 노묘들을 돌보며 사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자유는 박탈당하고 몇 시간의 외출을 하는 것도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계획하고 계산해야 가능해진다. 노묘와 사는 모든 사람들이 돌봄에 집착하듯 매달려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좀 그런 편으로 살고 있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피곤하고 지긋지긋한데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있다. 조금이라도 방만하게 살다가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그때는 그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죄책감과 후회에 매달리게 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괴로운가의 경중을 따져 보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한테 앓는 소리를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커피가 건강한 것이 나의 희생(?) 덕분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원장님이 인정했듯이 커피는 워낙에 타고난 건강 체질이다. 그러면 뒷바라지는 조금 덜하고 좀 더 자유롭게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 묻는 순간 그러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오롯이 나의 탓이 될 터이니 죄책감과 후회.. 어쩌고 하는 대답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일종의 순환논리에 갇혀버린 셈이다. 커피가 이렇게 건강하게 오래 살 줄 몰랐다는 말에는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좀 더 내밀한 부분까지 들추어 말하자면, 나는 마리가 그렇게 빨리 가고 커피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둘이 평균적으로 비슷하게 살다가 갈 줄 알았… 바랐던 것이다.
커피와 쥰이 삶을 마치면 아마 내 삶의 일부도 끝나버릴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또한 나의 (상징적) 죽음이기도 하겠지만 죽음의 의미가 그러하듯 그건 해방이자 자유이기도 하다. 그 순간은 너무나 두렵고 떠올리기도 끔찍한 비극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은밀히 기다려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에게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후회와 죄책감과 자책과 걱정과 그로 인한 불면의 밤으로부터. 여전히 이토록 건강한 커피가 스무 살을 넘어 스물다섯 살까지 건강하게 내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건 너무나 기쁜 일이다!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숫자는 차마 생각지 않았었다. 설레발이 오히려 일을 망칠까 봐 두려운 것도 있었지만 구체적인 숫자를 떠올리는 것이 숨 막혔기 때문이기도 하다. 맙소사, 이런 망망대해의 섬에 갇힌 듯한 고립된 삶을 앞으로 6~7년을 더 살아야 된단 말인가? 그때 나는 대체 몇 살이지?
병원에서 돌아와 씩씩하게 사료를 와드득와드득 씹어 먹고 물도 챱챱 마시고 소변도 시원하게 갈기며 노익장을 자랑하는 커피를 보며 잠시나마 떠올랐던 불경한 생각에 대해 반성하며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지만 관절을 생각해서 실제로 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스물다섯이라는 그 덕담을 그저 덕담으로, 흐릿한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유롭든 매여있든 삶의 기쁨은 흐릿하게, 슬픔은 선명하게 경험된다.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피야 고구마 맛나지?
소피가 마지막 날들에 입었던 저 옷을 언젠가는 태우든가 해야 할 텐데… 생각만 한다.
요즘 한동훈을 보며 이 영화가 계속 떠올랐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영화처럼 시원하게 총질이라도 하든가 등신아.
아, 나도 여의도 가고 싶드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