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전야에 이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뭔가를 적고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고양이와 술. 얼핏 들으면 즐겁고 다정한 광경을 떠올릴 만한 조합이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집 앞 주차장에 노랑이가 나타난 것은 보름 전쯤이다. 어디 갇혀있다 나왔나 싶을 정도로 뱃가죽이 홀쭉하게 달라붙은 녀석은 구내염의 전형적인 증상을 모두 보이고 있었다. 일단 이놈을 살찌우자는 목표를 갖고 찾아올 때마다 열심히 사료와 캔과 츄르를 비벼서 바쳐왔는데 추운 겨울 맨몸으로 화단에 웅크린 채 밥을 기다리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빌라의 다른 주민이 비닐 텐트를 임시로 쳐놓은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 되었다. 밥 먹는 동안 춥지 말라고 설치해 놓은 그 얄팍한 텐트에 녀석이 터를 잡아버린 것이었다. 부랴부랴 텐트 안에 담요를 깔아주고 핫팩을 넣어주었다지만 겨울 추위를 견딜 만한 것은 절대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 텐트로 (당연히) 만족하지 못하고 건물로 자꾸만 들어온다는 사실이었다. 총 여덟 세대가 사는 이 빌라에는 길냥이에 매우 우호적인 주민도 있지만 극혐 하는 주민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주민들이 사용하는 단톡방에 길냥이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 올라왔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카톡을 사용하지 않아서 나 대신 단톡방에 들어가 있는 남집사가 대화 내용을 캡처해 보내주는 친절에 기대고 있다.) 이토록 심란한 크리스마스 전야라니.
한편 친절한 남집사는 그토록 기다리던 크리스마스에도 집에 오지 못했다. 오직 이날을 쉬기 위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왔던 것인데 함께 일하던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 결국 내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영상통화의 화면 속 그의 피폐한 모습을 보며 친구라는 허상에 매번 속고 마는 인간 존재에 대해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가려고 했던 동네 단골 술집(일 년에 많아야 서너 번 가지만 어찌 됐든 유일하게 가는 술집이라서 단골이라 칭한다)에 혼자 터덜터덜 찾아갔다. 남집사 대신 시간을 함께 보내줄 책 한 권을 끼고 들어가 다이끼리 두 잔을 내리 마셨다. 카페인을 오랜만에 섭취하면 각성효과를 뚜렷한 감각으로 느끼게 되듯이 알코올을 오랜만에 마시니 어떤 순서로 취기가 오르는지 세밀한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보이차를 한 사발 마시고 간 후라서 위장에서의 흡수가 느린 덕도 있었을 것이다.) 일단 혀의 감각이 마비되고, 뇌의 뒤쪽에서 앞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식으로 취기가 오른다. 책을 읽기에는 너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심근경색이라든가 칼슘이 쌓인 관상동맥 같은 것들에 대한 글을 힘겹게 읽어나가는 중에 술집 안으로 젊은 커플이 들어왔다. 남자가 ‘헤밍웨이가 마시던 술‘을 주문하는 것이 들렸다.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헤밍웨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더 듣지 않고 다시 책을 읽던 중 남자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정보가 다시 얼핏 귀를 파고들었다. 글 쓰는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들, 데뷔 전략들… 이쯤 마시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계산을 치르고 가게를 나섰다.
취기가 살짝 오른 채 집 앞에 도달하자 그 얄팍한 비닐 안에 웅크리고 있는 길냥이가 보였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너도 건강하고 어린 시절이 있었을 테고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지금쯤 인간의 집에서 따뜻한 바닥에 뒹굴거리고 있을 텐데.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가장 낮은 곳’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오신 예수라는 표현이 내게 있어서는 이 종교의 본질이다. 그리고 내게 있어 가장 낮고 비참한 대상은 대부분의 경우 길냥이들이었다. 추위 속 웅크린 약하고 가엾은 생명들에게 아기 예수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인간은 캔을 맛있게 비빌게. 살아서 내일도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