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이고 클래식한 교양과학 서적

이언 스튜어트 <생명의 수학>

by 유월의쥰


… 분류학자들은 오늘날 식물을 약 30만 종, 균류와 동물이 아닌 것들을 약 3만 종, 동물을 약 125만 종으로 계산한다. 동물 가운데서도 120만 종은 새우나 달팽이처럼 등뼈가 없는 무척추동물, 그 가운데서도 약 40만 종은 딱정벌레이다. 유전학자이자 진화 생물학자인 존 버던 샌더슨 홀데인은, 연구를 통해 신에 대해 무엇을 알았느냐고 한 여성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딱정벌레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지요, 부인.” 척추동물은 고작 6만 종이다. 어류가 3만 종, 양서류가 6000종, 파충류가 800종, 조류가 1만 종, 그리고 포유류가 5000종이다. 포유류 가운데서 약 630종은 원숭이, 여우원숭이, 유인원, 그리고 사람을 아우르는 영장류이다. 지난 10년 동안 53종의 새로운 영장류가 나타났다. 40종은 마다가스카르에서, 2종은 아프리카에서, 3종은 아시아에서, 마지막으로 8종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나왔다. 온 세상을 샅샅이 뒤져서 그렇게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사실 생물은 찾기가 매우 어렵기도 하다. 생물이 그렇게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 이언 스튜어트, <생명의 수학>, 안지민 역, 사이언스 북스, 112

이언 스튜어트는 ‘위대한 수업’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수학자다. 위대한 수업 시리즈는 최근 몇 년 간 내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훌륭한 독서 가이드가 되어 주었는데, 그 목록에서 가장 중요한 학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스튜어트 선생일 것이다. 실은 이런 말을 하기 민망할 정도로 사실 그의 책을 사놓고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수학을 다루는 책은 정말이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생명의 수학>은 수학자의 눈으로 본 생물학(주로 진화론)이라는 목표와, 이언 씨 특유의 영국식 유머감각과, 그만의 독특한 설명 방식이 굉장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수학이 아닌 생물학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언 씨의 강의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은 바로 그가 설명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는데, 마치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마술사처럼 무지한 청중으로부터 이해를 뽑아내는 식의 강의를 한다. ‘네가 모르는 것을 알아. 그건 당연해. 하지만 이건 어떨까? 잘 봐, 이건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되는 거야. 짠, 봤지? 네가 뭘 놓쳤는지 이제 알겠지? 하지만 이제는 알 거야…’ 문제는 그 순간이 지나가면 여전히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이지만 개안한 듯한 순간은 매력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그는 타인이 자신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고, 그에 대해 비난하는 대신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 주는 타입의 좋은 수학자다. (그런데 왜 쓸수록 슬퍼지는 걸까.) 특히 이야기를 시작하는 도입부가 항상, 굉장히 매력적이라서 감탄을 하며 읽게 된다.

… 다윈은 자신이 쓴 책의 제목을 <종의 기원>이라고 지었다. 그 후 생물학자들은 그 책의 주요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진화 생물학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가 무엇일 것 같은가?

그렇다, 바로 종의 기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윈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거나 종이 진화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몇백만 년 혹은 몇십억 년 전에 일어났던 과정들과 오늘날 생태계의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세세하고 정확하게 재구성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 정말 놀라운 것은 진화의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가, 생물학자들이 이미 그 증거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이다.

많은 부분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과학자들은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다고 확신하는 것인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아주 똑같은 상황을 일상생활에서 접하고 있다. 자녀가 학교에 갔다 왔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가 실제로 학교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말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알지만, 뇌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 과정을 거쳤음을 증명하려고 학습 전과 후의 뇌를 고해상도로 스캔하지는 않는다. 부엌 바닥에 놓은 섬뜩한 증거물로, 키우는 고양이가 지난밤에 쥐를 잡아왔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고양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과학은 직접적 관찰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간접적 추론이다.

-위의 책 322~3

책은 외계의 존재를 탐구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되는데, 생명을 정의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외계인의 이미지에 휘둘리고 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머쓱해지는 기분도 든다. 스튜어트 선생은 특히 이 부분에서 도킨스 선생 못지않은 독설을 지르는데 (둘이 서로를 비난하는 배틀을 하면 얼마나 재미있겠느냐만 둘이 그럴 일은 결코 있을 것 같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명감독 리들리 스콧 옹이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장 큰 보편적 특징은 진화이다. 생명은 진화를 거치며 다양해지고, 일부는 더 복잡해지며, 그동안 고향 별의 조건에 더욱 적응해 간다. 실제 외계인이라면 우주 어딘가의 환경에서 진화해 왔을 것이며 그 환경에 적응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믿을 만한 외계인 영화를 만들려면, 그럴듯한 환경과 진화 역사 또한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어미 외계인과 기생하는 자식들로는 효과가 없다. 하지만 텔레비전이나 영화 제작자들 다수가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공상 과학일 뿐이야. 꼭 말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이 현실성 없는 오락거리와 형편없는 공상 과학 소설을 만들고, 심지어는 과학의 수준도 낮추는 것이다.

- 위의 책, 434

이 구절을 읽고 <에일리언:프로메테우스>가 떠올랐다. 최근의 훌륭한 SF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콘택트> 같은 영화는 스튜어트 선생의 비난을 당연히 피해 가지만, 이전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외계인 등장 영화에서는 어찌 됐든 인간의 형태에서 변주된 모습을 하고 있고, 이는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도 피할 수 없는 한계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에 대한 리들리 스콧의 일종의 항변이다. 왜 그런지 설명해 주마.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이 괴물의 dna 증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빠르게 세대를 거듭하기 때문에 진화를 통해 더욱더 인간의 형태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프로메테우스 이후의 시리즈는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이 원치 않게 에일리언의 유전체 증여자가 된 모냥으로 인간의 유전체 증여자로 등장하는 ‘어버이’ 외계인의 기원까지 다가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상상의 영역이라 뭐.. ) 하여튼 이 역순으로 올라가는 진화의 과정을 그린 <프로메테우스>의 충격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은은하게 이어지고 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스튜어트 선생이 이 영화를 봤는지, 봤다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지금 찾아보니 영화 프로메테우스 개봉이 2012년이었으므로 리들리 스콧 옹이 이 책을 읽고 항변하듯 영화를 찍었을 리는 없겠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11년으로 벌써 왜 오랜 시간이 지났다. 2011년을 말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쓰는 것이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지만, 과학 발전의 속도에 비추어 보면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언 씨는 이 책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될 것 같지 않다(427)고 쓰고 있지만, 책이 출간된 바로 다음 해에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입자를 발견했으며, 2013년 최종 확정되었다. 이런 소소한 것들은 오히려 책을 읽는 약간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런 이런, 이렇게 똑똑한 이언 선생이 틀렸군! 이런 심술 맞은 생각보다는 새삼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 너머까지 나아가고 있는 실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언 씨의 이 책은 어딘지 모르게 <진화론>의 전통, 즉 전통적 과학의 범주 안에 들어있다는 느낌을 준다. 과학서도 읽다 보면 클래식과 모던을 구분 짓게 되는데 매우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아마 점점 더 이런 류의 신간은 접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 슬퍼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