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1/2
눈이 일찌감치 떠졌다. 새벽마다 나를 괴롭히던, 안갯속에 서있는 꿈도 꾸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태양열이 서서히 공기를 데우며 습기를 증발시키는 아침, 콧구멍을 통해 초겨울의 건조하고도 차가운 공기가 기도를 통해 폐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느끼는 이 세상, 그리고 나의 육체. 나는 왜 이것들로부터 빨리 벗어나지 못해 안달일까?
“좋은 아침이군.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 처음 본다, 게으른 인간이여.” 그것이 아침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커피를 내리지 않나요?”
“마지막날인데 집을 어지럽힐 수는 없지 않겠어?”
나는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 손동작의 의미를 아는지 그것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카페로 갈 거야?” 그것이 안달을 내듯 물었다.
“흐음. 첫날 갔던 곳에 다시 갈까요?”
“좋아.” 그것이 정말 좋다는 듯 공중에 붕 떴다 내려왔다. “넌 내 취향을 정말 잘 이해하는구나.”
놀라울 정도로 저와 취향이 비슷하니까요.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몸을 붕 띄우고 싶었다.
대충 외출 준비를 마치자 현관 앞에서 기다리던 그것이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냐는 듯이 그것의 손을 보고 다시 그것의 얼굴을 보았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네 손을 잡아줄게.” 그것이 말했다.
나는 그것의 손을 잡았다.
그것과 나는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그것의 손은 따뜻했다.
아마도 내게 주는 일종의 위안이겠지. 나는 생각했다. 그날, 그렇게 사고처럼 갑자기 떠날 줄 알았다면 난 그때 너의 손을 절대로 놓지 않았을 것이다. 곧 너를 만나러 내가 간다. 그런데 네가 누구더라?
“무슨 생각해요?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는 그것에게 물었다.”
“네가 하고 있는 생각을 생각하고 있지.” 그것이 히죽거렸다. 놀랍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것과 맞닿은 손을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몇 가지 확인을 할 게 있어. 그것이 카페에 앉아서도 한참을 침묵을 지킨 후에 입을 뗐다. 네 집에 정리할 게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건 알아. 넌 이미 날 만나기도 전에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니까.” 그것이 확인하듯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말을 이었다. “넌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상태의 사람이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거나 너의 신변을 찾아 여기저기 들쑤실지도 몰라.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우선 한 달 전에 남은 재산의 처분과 유언장을 법무사에게 맡겨놓은 상태예요. 함께 사는 가족도 없고 나이가 나이인지라 법무사 쪽에서도 큰 의심 없이 법정 대리인을 맡아 주었고요. 저와 한 달 이상 연락이 되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재산을 집행해 달라는 요청도 이미 해놓았어요.”
“언제부터 준비를 한 거야?”
“죽음? 죽음을 준비한 지는 오래됐어요. 그렇다고 대단할 것은 없어요. 혼자 늙어가는 노인이 할 만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남은 가족이 있다면 뭐가 다를까? 생각해 봤지만 오히려 성가실 것만 같았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없었다. 재산의 처분이라든가 하는 일들은 즐겁기까지 했다.
“얼마 되지 않는 남은 재산은 유기동물들을 위해 쓰게 될 거예요. 기부할 명단을 몇 군데 지정해 놓았죠.”
“즐거워 보이는군.” 그것이 말했다. 막상 그것의 기분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왜 기분이 안 좋아요?” 내가 물었다.
“인간들이 누구에게 어떤 복수를 하는지 보는 것이 꽤나 즐거웠거든. 인간은 어리석고도 재미있고 가끔은 나 같은 것을 놀라게 만들어주기도 했지. 만나본 대부분이 자기 자신의 원한을 갚는 것에 집중했는데 너는 이상하게 남의 복수에 대해 얘기하고, 또 궁금해했어. 마치 나처럼 말이야. 복수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인간과의 대화가 내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나 보군. 더 이상 그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섭섭하게 느껴지는 것이 말이야.”
“다니다 보면 나 같은 사람은 얼마든지 또 만나지 않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러고 다닐지는 생각 좀 해봐야겠어.”
“왜요?”
“애초에 이런 짓을 하고 다니게 자극을 주었던 은행원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그 은행원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좀 알 것도 같거든.”
“… 알고 나니 더 이상 인간이 궁금하지 않나요?”
“아니 아니, 넌 착각을 하고 있어. 나는 인간이 궁금한 게 아니었어. 그것이 등을 의자에 기대며 강하게 부정했다. 나는 단지 ‘그’ 인간들이 궁금했을 뿐이야.”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죠? 마지막으로 또 하나 들려줄까요?”
“좋지!” 그것이 활짝 웃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일지 궁금한데?”
“당연히 복수에 대한 이야기예요. 가장 성공적이면서, 가장 어리석고, 매우 잔인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가혹했던 복수에 대한 이야기랄까요?”
“요란한 복수인가 보네.”
“네. 꽤나 어려운 방식의 복수를 택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이름은 메데아.”
“메데아!”
“메데아는 그리스 고전 속에 등장하는 공주이자 마녀예요. 이아손이라는 남자에게 한눈에 반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다시피 하고 그를 돕지요. 둘은 결혼해서 아들을 둘 낳게 되었지만 이아손은 다른 여자에게 반해서 메데아와 두 아들을 추방하려 해요.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돼요. 이아손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감행했던 노력은 메데아가 왜 복수를 행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에 불과하죠. 메데아는 이아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화도 내고 매달려도 보고 저주도 쏟아내며 애를 쓰지만 코린토스의 왕의 후원 아래 공주와 결혼할 기회를 포기하지 않아요. 오히려 메데아가 무섭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코린토스의 왕은 메데아와 두 아들을 추방하려 하지요. 메데아는 마법의 힘을 부리는 여자였고 그러니 두려웠겠죠. 추방을 명령받은 메데아는 분노와 슬픔을 거두고 차분히 복수를 준비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최고이자 최악의 복수였죠. 이아손의 장인인 코린토스의 왕과 그의 딸을 죽이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어린 두 아들마저 죽였거든요. 이아손을 빼고 그와 관련된 사람을 모두 죽인 셈이에요.”
“좀 전에 이아손은 자신의 아들들도 버렸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요. 자신이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하면 메데아와 아들들이 추방당한 후에도 계속 경제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말하지만 그건 메데아에게 위로조차 되지 못하죠. 오히려 화만 부추기게 돼요.”
“코린토스의 왕과 공주를 죽이면 이아손이 화가 나서 메데아와 자신의 아들들까지 죽일까 봐 차라리 자신이 먼저 죽인 게 아닐까?”
“메데아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에요. 코린토스의 왕과 공주를 죽이기 전에 이미 자신이 도망칠 곳을 마련해 두었으니까요. 아들들을 함께 데리고 가는 건 일도 아니었을걸요? 실제로 메데아는 아들들을 죽인 후 시신을 모두 데리고 도망가요. 이아손이 아이들 시신이라도 달라고 애원하지만 보란 듯이 데리고 가버리죠.”
“흐음… 자기 파괴적이고 잔혹하긴 한데 말이지… 그것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왜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나의 복수를 위해 제3의 누군가를 해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논할 때 사실 이 이야기가 가장 먼저 생각났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메데아가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것은 본인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니까요. 메데아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죽였어요. 자신이 잘못된 사랑을 선택한 결과물들인 아들들을 죽이지 않고는 자기 자신에 대한 복수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이아손에 대한 사랑의 결과물들을 죽임으로써 배신당한 사랑을 한 칼에 베어냈죠. 이아손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길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의 유전자와 자신의 유전자가 함께 만들어 낸 것에 대한 부정, 경멸이기도 하죠.”
“말이 되는군.”
“이때 메데아의 아들들의 독립된 인격은 보이지 않아요. 그런 건 깡그리 무시해 버려요. 오직 자신과 이아손이 만들어낸 분신으로만 생각하는 거죠. 여성의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모성을 꼽는 것이 고전적인 가치관인데 그리스 고전에서 이런 복수를 그려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모성애를 대상으로 이토록 완벽한 승리를 거둔 자기애도 흔치 않지요. 실제로 작가가 이 작품이 발표했을 때 꽤나 많은 욕을 먹었다고 해요.”
“에우리피데스는 남자잖아? 어떻게 이런 글을 쓰게 된 거지?” 그것이 내가 말하지 않은 극작가의 이름을 정확히 말했다. ‘놀랍지는 않지만.’ 나는 몰래 웃었다.
“그게 꽤나 미스터리하죠? 고대 그리스에는 여자들에게 시민권조차 주지 않았는데 말이죠. 메데아를 욕하려고 쓴 건가도 생각해 봤지만 그렇다기에는 메데아의 심정이 상당히 구구절절이 묘사가 되어있고 무엇보다 극 중에서도 이아손이 꽤나 멍청하고 나쁜 놈으로 보이니까요.
메데아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죽인 것이라고 설득하려는 작가의 의도도 여러 군데 드러나죠. 하지만 제 생각에 그건 이 이야기를 들은 관중들의 비난을 면해보고자 쓴 것 같아요. 메데아의 복수의 완성은 아들들을 죽인 것이었고, 작가 또한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 다른 모든 과정을 만들어낸 것이라고요. 저는 이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의 에우리피데스를 상상해보고는 해요. 문득 그런 이야기가 떠오른 거죠. 머릿속에. 그런 말도 안 되는, 금기의, 끔찍한 이야기를 떠올리다니, 스스로 전율하면서도 그 아이디어에 그 자신이 매혹되고 말지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생명력을 가진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을 거예요. 결국 어떤 비난을 얻을지 알면서도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을 수밖에 없었을 테죠. 왜냐하면 자신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매혹적이거든요. 당신이 지난번에 복수란 제 살을 깎는 일이라고 했잖아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이 이야기가 또다시 떠올랐죠. 자신의 모든 걸 내던져서 선택한 사랑에 복수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존재, 아니 말 그대로 자신의 일부를 파괴하는 여성의 이야기가요. 단지 여성의 이야기만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복수의 자기파괴적인 성격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것이니까요.”
“시간에 복수하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너처럼 말이지.” 그것이 손가락으로 나의 이마를 톡톡 두들겼다.
“그건 다른 얘기죠.” 나는 웃었다.
“너는 너 자신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거야, 그렇지?” 그것이 잠시의 침묵 뒤에 내게 물었다.
“없지는 않겠죠.”
“복수하고 싶은 이유가 뭐야?”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아서?
… 농담이에요. 모든 것을 앗아간 시간에 대한 복수, 그게 다예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끝.”
“알았어, 알았어.”
그것과 나는 카페를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손을 맞잡았다. 이상하게도 원래부터 그것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것을 애써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건 그것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의 본질은 이 맞닿은 손의 따뜻함에 가까울 것이다.
-마지막날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