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점, 혹은 시작점으로 돌아오다

마지막날 2/2

by 유월의쥰

집에 돌아와 마지막 점검을 했다. 수십 년을 살아온 집을 남겨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별 수 없이 쓸쓸해졌다. 한 달이나 방치해 둘 수는 없지. 나는 법무사에게 내일 와달라는 문자를 남기고 책상 위에 짧은 메모를 남겼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을 테고, 부탁한 대로 집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처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여 쓰고는 한숨을 한 번 쉬고 펜을 내려놓았다.

“다 됐어요.” 그것에게 말했다. “그것은 말없이 테이블 앞에 앉아있다가 일어섰다.”

“좋아.” 그것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준비 됐어?”

“네.”

“내 손을 잡아.” 그것이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내 손을 놓지 마.”

“그럴게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그의 손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있다.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있다. 그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겠지. 아니라 한들 알 게 뭐란 말인가? 긴 꿈이라도 꾼 모양이지. 온통 안개에 가려진 듯 희미한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비로소 어떤 대화가 서서히 떠오른다. 선생님 이름이 무엇인가요? 나는 대답한다. 이곳에 왜 오게 되었죠? 나는 대답한다. 나는 병에 걸렸고,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존엄성을 잃기 전에 죽기로 결정했고, 당신들이 허가를 해주었다… 그보다 오래전… 나는 수의사였다. 수의사를 하던 중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었다. 이름은… 장군이. 노란 줄무늬에 흰 양말을 신은 사랑스러운 고양이… 내가 실수로 열어놓고 닫지 않은 창문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나의 사랑하는 장군이. 너를 잃고 몇 년 후에 나는 수의사를 그만두고 현실 도피를 하듯 공연만 보러 다녔지.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면서 동시에 입 속에 달콤함이 느껴졌다. 나는 혀를 놀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달콤한 스위스 초콜릿이 입 안에서 서서히 녹고 있다. 지난 며칠간 익숙해진 에델바이스의 향을 맡고서야 나는 눈을 떴다. 헬퍼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잠시 좋은 꿈을 꾸셨나 봐요.” 헬퍼가 영어로 말하는 소리가 처음에는 아득하게, 서서히 분명하게 귀에 들려왔다.

“서울의 집에 있었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이라도 중단할 수 있어요.” 헬퍼가 웃음기를 거두고 말했다. “선생님, 생각이 바뀌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아니요.” 헬퍼 뒤에서 나를 보고 있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요. 계속해주세요.”

헬퍼가 알약과 물컵을 주었고 나는 지체하지 않고 약과 물을 삼켰다. 그것이 그토록 카페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서서히 기분 좋은 잠에 빠져드실 거예요. 그것이 내 손을 잡았다. 아니, 그건 헬퍼의 손인가? 누구의 손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헬퍼 옆에 나란히 앉아있는 그것의 무릎 위에 노란색 줄무늬에 앞발이 하얀 아름다운 고양이가 보였다. 나의 장군이다. 이십 년 전에 내가 실수로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집을 나간 이후로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는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장군이를 보자 잊혔던 삶의 모든 순간이 시야에 펼쳐졌다. 장군이를 잃어버린 후의 끔찍했던 삶, 우울증에 걸린 나를 배신한 남편과의 이혼,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 후 안락사를 선택한 것과 스위스로 와서 보낸 짧은 시간. 이윽고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내가 유일하게 바란 단 하나의 기도 제목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가 있다면 제발 용서를 구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내 앞에 그것이 나타났고 나는 늙은 육신 위로 드리워진 그것의 손을 필사적으로 잡았다. 그로부터 모든 사건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나 자신의 실수로 죽은 고양이를 잊고 있던 나는 어리석은 그 시절의 나를 만났고, 장군이를 잃는 고통을 주는 것으로 나 자신을 벌했으며, 시간을 초월해 내 곁을 떠났던 장군이를 만났다. 그 모든 분기점에서 선택은 완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환상이었나요? 아니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나요? 그것에게 눈으로 물었다.

환상과 실제를 아직도 구분할 수 있다고 믿는 거야? 그것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제 모두 기억이 났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움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장군이가 침대 위에 뛰어올라 내 옆구리에 몸을 붙였다. 기억을 잃기 전, 꿈에도 잊어본 적이 없던 장군이를 쓰다듬었다. 내 사랑, 나의 장군이. 나의 죄를 대속한 나의 구원자. 네가 나의 죄 때문에 대신 힘들었구나. 잠시나마 너를 잊을 뻔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다시는 너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고마워요.” 나는 그것에게 말했다.

“평안히 잠드세요.” 헬퍼가 대답했다.

“고마워요.” 나는 헬퍼에게 말했다.

“뭐가?” 그것이 되물었다.

“내가 죗값을 치르게 해 줘서요.” 나는 마지막까지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내 손을 잡았다. “놓치지 말아.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꼭 잡은 그 손이 헬퍼의 손인지, 그것의 손인지, 장군이의 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의 말대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