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의쥰 Sep 21. 2023

인간이 뭐, 돼?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 그러므로 22세기가 되면 사람들은 완벽한 외모와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면서도 겉모습은 지금과 비슷할 것이다. 원시인의 욕망과 소원이 아직도 우리 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생은 어떻게 되는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특정인의 뇌를 역설계로 재현하여 컴퓨터 안에 가둬놓으면 결국 정신병에 시달리게 되고, 외부세계와 연결해 놓으면 극도의 고독감에 시달리다가 기괴한 성격으로 변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역설계 두뇌를 인공외골격에 연결하는 것이다. 외골격이 서로게이트(대행자) 역할을 제대로 해준다면, 두뇌는 사람들에게 기괴한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시각과 촉각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결국 뇌와 외골격은 무선으로 연결될 것이다. 외골격을 사람하고 똑같이 만들면, 역설계 두뇌는 컴퓨터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누릴 수 있다.

(중략)

… 기술이 이 정도로 발전했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의 정체도 외골격을 조종하는 역설계 두뇌일 것이다. 이들의 의식은 완벽한 서로게이트 육체를 통해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실제 커넥톰은 슈퍼컴퓨터에 영원히 갇혀 있다.

물론 지금의 기술로는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현대과학의 진보속도로 볼 때, 금세기 말이 되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박병철 역, 김영사, 436~7


미치오 카쿠는 이제 끈 이론의 대가라든가 물리학자보다는 미래학자나 대중과학 작가로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무엇의 미래 시리즈 중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마음의 미래>가 중고로 나온 것을 보고, 아 저건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새로운 알 거리가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데도 이 양반이 이 책의 목록에 무엇을 채워 넣었을지 한편으로는 또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설탕과 밀가루 같은 작가 같으니.

카쿠 씨의 책이 주는 매력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과학을 대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그는 천진하고 낙천적인 태도로 과학을 대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이렇게 될 거야!’라고 신나서 떠들어대는 느낌이다. 물론 그도 (라고 쓰기에는 미안할 만큼 유명한 석학이긴 한데) 과학자인 만큼 낙관론이 아닌 의견-비관론까지는 아니더라도-을 함께 소개는 하되, 되도록이면 밝은 전망이 결론에 오게끔 배치하는 글쓰기도 일관성이 있다. 그건 카쿠 본인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카쿠 씨의 책이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것은 글도 쉽게 잘 쓰지만 실은 그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보고 있다. (사실 카쿠 씨의 책은 내용이 너무 가벼워서 다 읽고 나면 돈이 좀 아깝게 느껴질 정도다. 과학서적을 처음 읽기 시작할 무렵 제목에 낚여서 일본인이 쓴 책들을 몇 권 읽어봤는데 정말 화가 날 정도로 내용이 허접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카쿠의 책을 그런 것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카쿠 씨의 <미래의 ~> 시리즈는 그런 책들과 높은 수준의 과학서적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어쩌다 보니 쩜 부정적인 리뷰가 되어버렸는데, 만일 뇌과학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상태라면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매우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의식에 대한 연구의 역사와 물리학자로서 바라본 의식의 정체, 뇌의 잠재력과 과학기술로 뇌를 업그레이드하는 방법, 마인드컨트롤과 두뇌의 역설계, 그리고 외계인의 마음까지 다루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흥미진진하다.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이 마음에 관련된 것이 맞는지 가끔 헷갈릴 정도다. 특히 두뇌의 역설계를 통해 영생을 추구하는 내용은, 이를 처음 주창한 커즈와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는 척하면서도 실은 이에 대한 상당한 지지를 보내고 있음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미 <미래의 물리학>에서 눈치챈 바 있다.) 통 속의 뇌가 어떻게 즐겁게 영생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예상(위 인용)이 천진한 낙관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면, 의외로 외계인의 마음 부분에서는 꽤나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개미집 옆에 나 있는 8차선 고속도로 근방에서 인부들이 건물을 짓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개미들은 인부들 사이에 대화가 얼마나 자주 오가는지 알 수 있을까? 또는 8차선 고속도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까? 외계문명도 마찬가지다. 외계행성에서 우주를 가로질러 이곳까지 올 정도라면 과학 수준이 우리보다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 이상 앞섰을 것이고, 그들에게 우리는 길가의 개미떼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외계인이 오직 우리를 만나기 위해 수조*수조 km를 날아온다는 것은 지나치게 오만한 생각이다. -위의 책 470


… 그러나 나는 외계인이 폭력보다 평화를 사랑하며, 자비로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그들에게 제안할 것도 없고, 나눌 것도 없다. 그들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단순한 호기심이거나 정찰이 목적일 것이다. - 491


개인적으로는 이 뜬금없는 ‘외계인의 마음’ 편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도 이 자체를 목록에 끼워 넣은 자체가 재미있었고, 인간종의 자기 중심주의에서 최대한 벗어나 자기 객관화를 하려는 이 노학자의 성찰이 좋았다. (난 별 수 없는 비관론자 쓰레기인가, 한없이 낙관론을 펼칠 때는 어휴 왜 이래 이런 기분으로 읽다가 이런 건 또 이렇게 마음에 들다니.) 인문학이 불편해진 것은 그것이 인간중심주의를 전제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그 좁은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가끔 과학자들이 어설프게 인문학과의 통섭을 의도한답시고 다시 인간중심주의를 끌어들이는 것을 보면 김이 팍 새고 만다. 인간(개체) 중심주의에서 가장 멀리 나아갔던 선구자가 리처드 도킨스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과학자들이 대중을 대상으로 책을 쓸 때 좀 더 과감하게 인간중심주의적 시각에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이 책의 대미를 외계인의 마음으로 장식한 카쿠 씨의 선택은 매우 훌륭했다고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