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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Oct 27. 2023

쟤나 너나 나나 죽어도 볼 수 없는 것

더글라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 루카스 논증의 부정확성을 이해하는 재미있는 방법은 그것을 남녀 간의 다툼으로 번역해 보는 것이다……. 사색가 루커스는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미지의 대상 즉, 한 여자와 마주쳤다. 그때까지 여자라고는 본 적이 없었던 그는 일단 그 여자가 자신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에 야릇한 전율을 느꼈다. 그러나 또한 그 여자를 약간 두려워하면서, 주변의 모든 남자들에게 외친다. “이것 봐! 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어. 그런데 이것은 그녀는 할 수 없는 일이야. 따라서 여자들은 결코 나와 같을 수 없어!” 이렇게 해서 천만다행히도 루커스는 남자가 여자들보다 우월하다는 점과 그의 남자 동료들의 우월함도 입증한다. 그건 그렇고, 이 동일한 논거는 루커스가 다른 모든 남자들보다 우월하다는 점도 마찬가지로 입증한다-그러나 그는 그것을 그들에게 지적하지 않는다. 여자가 받아친다 : “그래, 당신은 내 얼굴을 볼 수 있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나는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것은 당신이 하지 못하는 일이지! 그러니 피장파장이야.” 그러나 루커스가 뜻밖의 반격을 가한다. : “미안하자민, 당신이 내 얼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야. 당신네 여자들이 하는 일은 우리 남자들이 하는 일과 같지 않아. 내가 앞서 지적했듯이, 그건 품질이 떨어져. 그래서 같은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없어. 당신이 그것을 ‘여보기(woman-seeing)’라고 하는 건 괜찮아. 이제 당신이 내 얼굴을 ‘여볼 수 있다’는 것은 하찮은 일이야. 상황이 대칭적이지 않기 때문이야. 알겠어?  이에 여자는 “여알겠어!” 라고 여대꾸하고는 여걸어가버린다…….


이것은 모래-속에- 머리를 -처박는 일종의 “외면 논법”인데, 당신이 이 지능적인 다툼에서 컴퓨터를 능가하는 남자와 여자를 보는 데에 열중하고 있다면 기꺼이 참을 것임이 틀림없다.


​- 더글라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박여성 안병서 역, 까치, 653


호프스태터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주 잘 만들어진 우화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거북이와 아킬레스가 등장하는 우화를 읽다 보면 이 우화가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게 될 정도다. 하지만 누가 호프스태터처럼 쓸 수 있단 말인가? (일전에 혹평했던 줄리오 토노니의 <파이>의 형식이 이 책에서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위에 인용한 부분은 정식으로 등장하는 우화는 아니고, 루카스라는 인물이 기계 즉 컴퓨터가 결코 인간의 마음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다른 무엇도 아닌 ‘괴델의 정리’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을 살짝 조롱하는 글이다. 괴델의 정리는 ‘체계 안에서 증명 불가능한 논리식이 존재한다’는 말로 대충 요약이 가능한데, 루카스는 이를 이용해 체계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기계에 비해 기계를 지배하는 체계 바깥에 존재하는 인간의 마음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호프스태터는 루카스의 주장을 ‘인간중심적인 영광의 짧은 순간’이라 소개한 뒤, 우리 역시 같은 부분에서 취약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인용문은 이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해 쓴 글이다. 즉 ‘루카스가 세계를 자신의 뇌 구조 안에 반영하는 방식 때문에, 루카스는 “무모순임”과 참인 그 문장을 주장하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없다. 그러나 루카스가 우리들 중 누구보다도 더 취약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정교한 형식체계와 동등하다’(652)


기계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우리 자신의 사고라는 형식체계의 바깥에 존재하지 못한다. (‘프로그램이 스스로에게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프로그램은 자기 안에 내재된 규칙들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할 수 없듯이, 프로그램 또한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 없다. 물리학은 최우선체계이고, 그것으로부터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654)) 이 이야기를 호프스태터는 ‘눈과 뇌가 육체에 붙박이로 달려있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인간의 감각이라는 형식체계’에 빗대어 재미있게 설명한다. 난 널 볼 수 있지만 넌 널 볼 수 없다는 남자의 주장을 나 또한 마찬가지고 너 또한 마찬가지라고 받아치는 여자에게 남자는 ‘품질’을 운운하며 끝까지 무시한다. 이 바보 같은 남자의 우화가 비단 기계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입증한 루카스만을 빗댄 것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속한 성별, 국적, 인종, 학벌 등의 인식의 틀에 갇혀 기계뿐만 아니라 여성, 다른 인종, 다른 학벌 등이 자신과 결코 같지 않다고 (자신보다 질적으로 떨어진다고 마구잡이로 주장하는 인간들도 이 이야기를 보며 기가 차다는 듯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은 상태에서야 뭔들 못하겠느냐만.

아직 다 읽지는 못했는데 인상적인, 그래서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을 소개해가며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진즉 고민했던 것이지만 솔직이 귀찮아서 미적거리다가 반 이상 읽어버렸다. 최소한 반 이상은 이해 못 했을 책인데도 분량이나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그 와중에 기록해두고 싶은 부분들이 적지 않다. (빌어먹을 유머감각은 또 어찌나 뛰어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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