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딸

둘째 날 2/2

by 유월의쥰



그 집은 아주 넓었는데 젊은 여자 한 명만 살고 있었다. 그것이 들어갔을 때 여자는 홀로 저녁식사 중이었는데, 놀랄 것도 없다는 듯 그것을 덤덤하게 맞이했다. 여자는 식사를 계속하고 그것은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여자는 밥을 먹다 말다 하며 자신의 얘기를 시작했고 그것은 성의껏 얘기를 들었다. 그 집에는 얼마 전까지 여자와 그의 가족들-다정한 부모와 대학을 다니는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었다고 했다. 단란했던 가족에게 들이닥친 비극은 동생이 대학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다. 동생은 함께 술을 마시던 남자동기 세 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들을 고소했지만 모두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퇴학도 당하지 않았다. 법적으로도 처벌을 면한 사안이니만큼 두 학기 유급처분을 받은 정도로 결론이 났다. 동생과 가족들은 화가 났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던 중 범죄자들이 동생이 성폭행당하는 동영상을 찍어 몇몇 동기들과 공유한 사실을 알게 됐다. 동생과 가족들은 이들을 다시 고소했다. 그들이 그 문제로 입건된 후에, 여동생의 동영상이 누구나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급 처분을 받은 것에 앙심을 품고 그중 한 명이 올린 것이었다.


“여자의 동생은 결국 자살을 했어.” 그것이 손을 깍지 끼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동생의 성폭행 사건 이후 간신히 버티고 있던 부모는 둘 다 몸져누웠고, 분노와 우울증에 힘겨워하던 엄마도 결국 자살했지.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절에 들어가 버렸어. 그렇게 언니 혼자 집에 남아 판결을 지켜봤는데 피해자가 죽어버린 마당이라 소송도 지지부진했다더군. 몇몇 언론에서 이 사건을 다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동생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았어. 심지어 판결도 역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로 끝나버렸지.” 그것이 잠시 말을 끊고 커피를 들이켰다.

“내가 방문 목적을 말했을 때 여자는 환영은커녕 기뻐하는 표정을 짓지도 않았지만 여자의 끓어오르는 듯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어. 그 여자는 작은 기쁨조차도 꾹꾹 눌러 참고 표현하지 않더군. 내면의 아주 작은 것만 새어나가도 폭발할 것만 같은 상태였어.”

나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제안을 들은 여자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 하루가 지나고 나서 바로 얘기하더군. 세 명의 강간범에게 집행유예라는 첫 판결을 내렸던 판사의 딸을 판사 눈앞에서 강간한 다음 죽여달라고 했지.”


그 말을 들은 그것은 펄쩍 뛰며 반대했다. 그건 판사의 딸에게 너무 부당한 처사로 느껴졌다. 그것이 판단하기에 죄가 있는 세 명의 범인은 처벌받아 마땅했다. 원래 한 번에 한 명씩에게만 원한을 갚아줬지만 여자가 부탁하면 세 놈 모두를 대상으로 삼아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판사, 그것도 판사 본인이 아닌 판사의 딸을 강간 후 살해라는 가장 고통스럽고 야만스러운 방법으로 죽여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건 얘기가 달랐다.


“물론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지. 내게 불가능한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누구를 데려다 판사의 딸에게 그 짓을 시킬 거야? 그 짓을 시키려면 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니 그것 역시 곤란했어.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자 여자가 ‘법치주의의 공리주의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

나는 뭘 원 하는 것인지 대충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고개를 끄덕인 후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여자는 동생을 강간했던 세 놈 이상으로 첫 판결을 내린 판사를 증오했어. 맨 처음에 판결만 제대로 받았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라는 거지. 놈들에게 면죄부를 내린 것이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주요 원인이라는 거야. 공무원이었던 여자는 동생과 엄마가 자살을 하고 아버지마저 떠난 후에 일도 그만둔 상태였어. 여자는 밤낮으로 오직 하나의 생각에 매달리고 있었는데 그건 동생의 죽음이 이대로 잊혀서는 안 된다고 것이었어. 여자는 동생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러기 위해서는 강간범 세 놈 죽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거지.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일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고, 판사들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여자의 주장이었거든. 즉 판사도 같은 일을 겪어봐야 강간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었지.”


“판사를 강간하면 되잖아요?” 나는 여자를 이해하면서도 반박했다.

“나도 그런 얘기를 해봤지만 그 정도의 고통을 주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는 것이 여자의 감춰진 진심이었겠지. 어떻게든 대의명분을 찾았지만 여자가 진짜 원하는 것은 가장 소중한 것을 눈앞에서 잃은 슬픔을 판사 또한 느끼게 하는 것이었을 거야. 여자의 동생과 엄마가 고통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원인을 제공한 판사의 딸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여자에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던 거지.”


여자와 그것은 5일간 내내 이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다투고, 토론했다. 여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동안 모은 자료들을 그것에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판사가 판결한 모든 사건들을 수집해 온 것이다. 판사에게 결혼을 앞둔 딸이 있다는 것도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판사의 사생활과 가족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며 알게 된 것이었다. 여자는 판사들이 범죄자들에게 관대한 이유는 피해자의 입장이 될 기회가 너무 적기 때문이라며 그것을 설득했다. 자료를 검토해 보니 확실히 그 판사는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대해 매우 관대한 판결을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범죄에 실형을 내린 적이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이다.


“그 판사는 대부분의 강간이나 성추행 사건에 아주 관대한 처분을 내려왔더라고. 여자는 그 판사가 강간이 어떤 것인지 그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어. 그것도 그가 가장 사랑하는 딸을 통해서 말이지. 난 어느 정도 설득당하고 말았어. 하지만 문제는 방법이었지. 대체 누구를 통해 판사의 딸을 강간할 것인가? 여자는 강간하고 죽이는 이들로 동생을 강간한 세 놈을 이용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인간에게 복수하게 되는 거지. 나는 그게 형평성에 맞지 않으니 다시 한번 강간범 세 놈인지 판사의 딸인지 대상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어. 강간범 세 놈은 얼마든지 고통스럽게 죽여줄 수 있다고 나름대로 설득하면서 말이야.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세 놈을 이용해 판사의 딸을 강간하도록 하면 그놈들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나 또한 꽤나 궁금했어. 그렇다고 죄 없는 판사의 딸을 실제로 강간을 하고 죽이는 건 선을 넘어선 일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여자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더군. 여자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데다가 어찌 되었든 나는 복수를 대신해준다고 찾아온 입장 아니야? 그래서 대충 둘러댄 것이었지.”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여자는 고민 끝에 가상의 존재들을 이용한다거나 판사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식으로는 안 되겠냐고 물었지. 물론 가능했어. 결국 우리는 판사의 딸의 목숨을 빼앗되 실제 강간이 아닌 강간당하는 환상을 판사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타협했지.”


약속된 마지막 날 밤, 그것은 여자와 함께 판사의 집으로 갔다. 판사를 결박한 후 그의 딸이 강간당하고 죽는 환상을 보게끔 했다. 강간은 환상이었지만 딸의 죽음은 실제였다. 조용히 목숨을 잃고 쓰러지는 딸을 보며 판사는 결박당한 채 버둥거렸다. 재갈을 물린 입에서 눈물과 침이 섞여 흘러내렸다. 여자는 커튼 뒤에서 그 장면들을 빠짐없이 지켜봤다. 판사는 자신의 딸이 강간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환상을 보며 발버둥 쳤고, 모든 환상이 사라지고 난 뒤 덩그러니 남은 딸의 시신 앞에서 정신을 잃었다.


“뭐… 딸은 평화롭게 목숨만 빼앗겼지. 고통 없이 죽었어.” 그것은 갑자기 지쳐 보였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중얼거렸다. 그게 진짜 제대로 된 복수일까? 죄지은 자를 두고 죄 없는 사람이 죽이는 것이? 하지만 동시에 여자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동생이 죽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의 분기점을 판사의 판결로 본 것이다. 판사만 제대로 판결을 내렸어도 동생과 엄마가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나라도 증오심으로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커피 한 잔을 더 받아온 그것이 다시 입을 열었다.

“판사가 울부짖는 것을 여자가 보며 눈물을 흘리더군. 분명 입은 웃고 있었는데 말이지. 판사는 지금도 범인을 잡겠다고 온갖 곳을 다 들쑤시고 다니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건 그저 환상이었을 뿐인데.”

“그런 식이라면 환상만으로도 복수가 될 수 있겠어요. 실제 일어난 사건은 아니어도 충분히 마음에 고통이 가해질 수만 있다면.”

“너도 그런 식으로 복수하고 싶어?” 그것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그게 가능하려면 복수의 대상에게 자기 자신 못지않게 사랑하는 대상이 있어야 되잖아요? 판사에게 딸이 있었듯이. 제가 생각한 사람에게 그런 대상이 있는지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야.” 그것이 씩 웃었다. “그 여자는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어떻게든 자신이 직접 복수할 방법을 찾았을 거야. 그 일로 자신이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해도 판사에 대한 복수를 행했을 사람이야. 다시 말하자면 이 복수는 내게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어. 난 어쨌든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셈이니까.”

“만약 판사의 딸이 자신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복수의 대상을 정해야 된다면 누구일까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은 대학생의 언니? 아니면 부당한 판결로 결국 자신을 복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자신의 아버지? 아니면 이 모든 비극의 근본적인 이유를 만들었던 가해자 세 명?” 나는 문득 생각나는 질문을 그것과 나 자신에게 던졌다.

“아까 너는 이름 모를 아이의 원수가 죄 없는 자신을 복수의 희생양으로 만든 정영과 공손저구라고 했으니 그 논리에 의하면 희생자의 언니 아니겠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좀 다르지 않아요? 희생당한 이름 모를 아이는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잖아요. 죽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었어요. 정영과 공손저구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희생된 것이죠. 하지만 판사는 부당한 판결이라는 죄가 있어요. 그리고 그 복수는 판사의 딸이라는 조건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고, 결국 자신의 핏줄인 아버지의 죄 때문에 희생당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두 개의 경우는 꼭 같지만은 않아요. 판사의 딸은 오히려 조씨고아에 가깝겠네요.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할 운명에 처한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딸은 자신의 아버지인 판사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 걸까? 자신을 죽이도록 시킨 피해자의 언니가 아니라? 여자와 판사 중 하나를 고른다면 누구야?” 그것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끙끙거리며 고민했지만 결국 난 둘 중 하나를 고르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며 그것이 어깨를 으쓱하고 팔을 휘저으며 흥흥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