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방문을 뚫고 들어오는 짙은 커피 향 때문에 아침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그것이 또 커피를 잔뜩 추출하고 있었다.
“일어났어? 커피콩이 더 필요해. 혹시 있어?”
창고에서 커피 봉지 새것을 꺼내서 건네니 그것이 활짝 웃었다.
“커피는 말이지, 인간들이 발견한 것들 중 가장 가치가 있어.”
“물론 인간들이 발견한 대부분의 것들이 무가치하기는 하죠.” 반쯤은 비꼬는 나의 대답에 그것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뭘 할 생각이야?” 그것이 물었다. 오늘도 하루종일 나와 붙어있을 모양이었다.
“딱히 할 일은 없어요.” 나는 망설이던 끝에 대답했다.
“좋아. 같이 커피나 마시자.” 그것의 목소리가 경쾌했다.
저기, 커피는 지금도 마시고 있잖아요? 내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카페 가자. 카페 가서 얘기해.” 그것은 굴하지 않았다.
“원래 이런 식인가요?”
“이런 식?”
“하루 종일 붙어있는 식?”
“아니, 일이 있는 애들한테는 붙어있지 않아. 직장을 다닌다던가 뭐 그런 애들한테는 못 그러지. 너는 일이 없다잖아.”
“… 그렇군요.”
“일이 없다고 무조건 붙어있는 건 아니야. 그렇게 티 나게 섭섭해하지 마. 넌 재미있어.”
내가 재미있나? 어리둥절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그것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넌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잖아. 어제 그런 얘기 아주 좋았어. 그런 거 또 들려줘.”
“소설이나 신화 뭐 그런 얘기요?”
“어, 뭐 그런 거. 그리고 네 생각. 네 생각을 듣고 싶어. 인간의 생각.”
말하는 그것의 눈에 광채가 돌았다. 그 눈빛이 그것의 얼굴을 마치 아이처럼 천진하게 만들었다. 전능한 존재라면서 어제 태어난 것 같군. 나는 생각했다.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무슨 생각해?” 그것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얘기를 들려드려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나는 시선을 거두고 어깨를 으쓱했다. 전능한 존재라면 내 생각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아하, 천천히 생각해. 급할 거 없어.
너의 시간은 충분해.” 그것이 히죽 웃었다.
그것과 나는 집을 나와 삼십 분 정도 걸어갔다. 그것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실은 어젯밤 그것과 걸어서 갈 만한 카페를 몇 개 골라놓았다. 카페를 고르고 나니 겨우 안심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안내해 산책길에서 살짝 벗어나있는 건물의 2층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나는 요기로 때울 만한 디저트와 검은 커피를 고르고, 그것은 메뉴를 한참 보더니 우유가 들어있는 커피를 골랐다.
“자, 무슨 얘기부터 시작할까? 오늘은 네가 고른 원한의 대상에 대해 얘기해 줄 거야?” 커피를 받아 든 그것이 높은 톤의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요. 아직 못 정했어요.”
“무엇을 못 정했다는 거야?”
“복수를 할 것인지 하지 말 것인지, 한다면 누구에게 할 것인지, 그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복수할지.”
‘한 마디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얘기지요. 어떤 카페에 가야 될지 고민하느라 복수에 대한 건 생각도 안 해봤어요.’ 나는 속으로 덧붙였다.
“시간이 많다고는 해도 무진장 많은 건 아닌데 너무 게으른 거 아니야? 생각을 하라고, 생각을.”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닐 거 아니에요?”
“너처럼 아무런 단서도 안 주는 경우는 처음이야.”
“생각보다 복수가 쉽지 않아요.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그야 그렇지.” 그것은 유순하게 수긍했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원수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거나 오히려 자신이 당하는 그런 장면들이 있거든요. 볼 때는 대체 왜 저렇게 답답하게 구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막상 기회가 오니 저도 좀 그런 기분이에요. 좀 두렵기도 하고.”
“복수 안 해도 돼. 꼭 해야 되는 건 아니야.” 그것의 대답이 다정하게 들렸다.
“이런 기회를 날리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얘기를 듣다 보니 한편으로는 내가 누군가의 복수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지에 대해 생각도 하게 되고.”
“가능성이 있지. 그러니 착하게 살았어야지.” 그것이 정색을 하고 말해서 나는 잠시 당황했다.
“어쨌든… 복수가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기회가 오기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복수일 줄 알았는데. 정말 기회만 오면 당장 해치울 줄 알았어요.”
“흠. 비교하자면 너 같은 인간들이 좀 더 정상이야. 복수라는 게 누군가를 해치는 일인데 그게 너무 쉬워도 곤란하지 않겠어?”
“그럴까요? 이제 와서 보니 햄릿이 그렇게 고민을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내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그것이 즐겁다는 듯 소리쳤다.
“햄릿? 아, 햄릿! 오늘도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 그것의 들뜬 목소리가 너무 커서 목을 움츠리고 카페 사장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우리 쪽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안심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라는 소설가가 쓴 이야기 속 주인공이에요. … 그것이 햄릿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햄릿의 아버지인 덴마크의 왕이 죽은 후 왕비 즉 햄릿의 어머니는 죽은 왕의 동생, 즉 햄릿의 숙부와 결혼을 하게 되죠. 햄릿은 크게 실망하고 분노해요. 아버지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가 바로 재혼을 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그 대상이 자신의 숙부인 것도 몹시 화가 나는 일이었거든요.”
“그게 왜? 옛날에는 다들 그랬어. 그게 금기가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라고.” 그것이 말했다.
“그렇죠. 그래도 재혼을 좀 천천히 하거나 뭐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어쨌든 말씀하신 것처럼 옛날 유럽에서는 친척간 결혼이라든가 죽은 형의 부인을 아내로 취하는 일이 금기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삼촌과 어머니가 재혼했다는 사실 자체로 햄릿이 화가 난 건 아니었을 거라는 사실이에요. 잘 보면 이 복수극의 발단은 햄릿의 절망이나 분노가 아니에요.”
“그럼?”
“햄릿의 아버지인 죽은 왕의 유령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된 거죠. 밤마다 성에 죽은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얘기를 들은 햄릿이 직접 확인하겠다고 기다리다가 진짜로 그 유령을 만나는 거예요. 유령은 햄릿에게 자신이 동생, 즉 햄릿의 숙부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말하죠. 안 그래도 불편했던 햄릿의 마음에 유령이 불을 지른 거예요.”
“동생이 진짜로 자신의 형을 독살한 거야?”
“그걸 알아보려고 햄릿이 자신의 숙부인 새로운 왕과 어머니 왕비 앞에서 연극을 하나 올려요. 곤자고의 암살이라는 제목의 연극인데, 왕을 그의 조카가 독살한다는 내용이죠. 그걸 보고 왕의 안색이 변해서 자리를 떠나는 것을 본 햄릿은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확신을 갖게 되지요.”
“그건 역시 추정일 뿐이고. 그래서 그 숙부가 왕을 ‘진짜로’ 독살한 거냐고?” 그것이 집요하게, 혹은 약간 짜증스럽게 물고 늘어져서 나는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진짜라는 게… 글쎄요? 우선 죽은 아버지의 유령이 그렇다고 말했고, 왕을 암살하는 내용의 연극을 본 왕이 안색이 변했고… 그런 식으로 추측이 확신이 되어가는 거죠.”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이 그저 추측일 뿐 아니야? 인간은 없는 것도 얼마든지 만들어내잖아! 귀신, 유령 그런 걸 다 믿어?” 그것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는 바람에 놀라 주위를 살폈지만 카페의 손님은 그것과 나 둘 뿐이었고 카페 사장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게…이 이야기에서 ‘진짜’냐고 묻는 건 의미 없어요. 햄릿은 최소한 그렇다고 믿으니까요. 그래서 복수를 결심해요.”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인간은 정말 알 수가 없어. 그게 무슨 단서가 된다는 거지?”
‘그러는 당신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설명조차 못하지 않나요? 당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유령이나 귀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은데요?’ 나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그것은 계속해서 스스로의 존재를 무시한 채 투덜댔다.
“확실하게 말해두지만, 나는 그런 애매한 단서만으로 복수해 달라는 말에는 응할 수가 없어.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야. 아버지가 독살당하지 않았을 확률, 혹은 다른 이에 의해 독살당했을 확률이 너무 많단 말이지. 그런 변수를 생각하지 않고 복수를 결심하는 건 말이지…”
“맞아요, 위험하죠.” 나는 강하게 수긍하며 그것의 말을 가로챘다. “그뿐 아니에요. 햄릿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며 미친 척을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해요. 그런데 막상 숙부를 죽여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는 온갖 이유를 대며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게 돼요. 숙부 클로디어스가 홀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햄릿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거든요. 신에게 기도할 때 죽이면 저 영혼이 천국에 가지 않을까 어쩌고 하면서요. 그러면서 얘를 죽일까 말까, 내가 살까 말까, 온갖 망설임 끝에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죠.
깔끔하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는 망설이다가 날려놓고 감정적으로 날뛰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를 죽이게 돼요.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알게 된 여자는 미쳐서 자살하고, 여자의 오빠는 아버지와 동생의 복수를 하겠다며 햄릿과 결투하다가 결국 죽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햄릿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인 왕비도 죽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아버지의 원수인 숙부도 마지막에 가서는 죽는다는 것 정도가 되려나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햄릿의 아버지 즉 선왕 한 명만 죽는 것이 더 나았을 정도예요. 선왕의 유령이 복수해 달라고 하는 바람에 몇 명이 죽어갔는지.”
“어제 들려준 얘기랑 비슷하지 않아? 조씨집안의 복수 이야기 그거랑 비슷하네. 복수 좀 하겠다고 주변인물들이 죄다 죽어가잖아.”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것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부수적인 죽음이 너무 많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죠. 조씨고아에서는 영문도 모른 채 죽은 남의 집 갓난아기를 제외하면 조씨집안을 위해 주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죽는 거고, 햄릿의 이야기에서는 햄릿이 직간접적으로 죽이는 거니까요.”
“하아… 인간들은 이런 이야기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거야?” 그것이 미간을 찌푸렸다.
“애초에 인간이 이 정도로 이상하지 않았다면 당신도 인간들의 복수전에 뛰어들지 않았겠죠?” 나는 슬쩍 그의 첫 복수대행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기껏 복수를 해달라고 하고, 그 복수가 이루어지는 순간 자신도 죽어버리는 것도 이상하고, 뭐, 다 이상하죠.”
“그렇지. 너네는 이상해.” 그것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따라 커피맛도 이상하게 느껴져.”
“그건 그냥 커피가 아니에요. 우유가 들어간 커피라서 이상한 거 아닐까요?” 그것이 놀랐다는 듯 커피잔을 들고 들여다보았다. “어쩐지 이상했어.” 그것이 심각한 표정으로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잔에 담긴 액체가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좀 낫군.” 그것이 다행이라는 듯 커피를 다시 홀짝이기 시작했다.
“우유만 제거한 거예요?”
“아니, 네 것과 바꿨어.” 내쪽의 커피잔을 들여다보니 검은색의 커피가 연한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 저런.”
“앞으로는 조심해 줘. 나는 검은 커피만 마셔.” 그것이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저기요, 주문은 직접 하셨습니다만?’ 그것이 입을 댔던 커피를 마셔도 되는 것인지를 고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그것이 직접 주문하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세계에 몇 년을 있었다면서 아직 카페라테도 모르다니. 오늘따라 이상했던 그것의 격한 반응이 우유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차라리 편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애초에 햄릿의 이야기를 해줄 때 햄릿이 숙부를 죽이는 일을 두고 고민했다고 하지 않았어? 한 명 죽이는 걸 고민한 것 치고는 너무 많이 죽이는데?”
“숙부를 죽일까 말까 고민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많이 죽게 된 것이 이 작품의 아이러니예요. 애초에 한 사람만 죽였으면 되었던 것인데 말이죠.”
“아이러니! 난 그 말이 너무 좋아. 커피와 어울리는 단어야. 아이러니만큼 인간을 잘 설명해 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그것이 커피를 바꾼 후로 기분이 다시 좋아졌는지 흠흠거리며 대충 맞장구를 쳤다.
“햄릿이 애초에 고민하지 않고 기회가 왔을 때 복수를 했다면 부수적인 죽음은 막을 수 있었겠죠?”
“이봐, 너 그 햄릿이라는 놈을 아주 싫어하는구나?” 그것이 킬킬댔다. “아주 뼛속까지 싫어하는 게 느껴져.”
“꼭 그렇지는 않아요. 이 작품이 유명해진 것은 햄릿의 그 망설임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제삼자가 보면 햄릿의 행동이 답답하고 이해 안 되는 행동처럼 보이겠지만 인간은 생각이 많은 존재니까요. 복수를 하고 싶다고 누군가를 가차 없이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유부단해 보이는 햄릿의 모습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공감과 동질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도 싶어요.”
“복수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는 너처럼?”
글쎄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얼버무렸다.
“첫날은 복수해 준다고 하니까 그렇게 좋아하더니.”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거든요. 막상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좀 무섭기도 하고. 예를 들어 복수의 대상을 괴롭히는 일을 하려면 부수적인 희생이 따를 수 있잖아요.”
“깔끔하게 직접적인 대상에게만 복수하면 되잖아?”
그렇죠.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난 너 같은, 아니 햄릿 같은 인간을 이미 만났어. 복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얘를 죽일 것인가, 쟤를 죽일 것인가를 두고 고민만 하다가 포기한 인간. 그는 결국 복수에 실패했지. 아니, 실패한 줄 알았지. 하지만 이 몸께서 그를 위해 근사한 복수를 완성시켰어.” 그것이 으스대듯 말했다.
내가 듣고 싶다고 말하자 그것이 눈을 크게 뜨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얘기를 시작했다.
그 남자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으로 사랑했던 존재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그 고양이는 일 년 전 병을 앓다가 죽었다. 남자의 말에 의하면 고양이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고양이를 담당했던 동물병원의 수의사가 오진을 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수의사는 고양이의 병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심각한 병은 아니라고 반복해서 말하며 남자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고양이는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나빠졌고, 결국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고서야 수의사는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다고 실토했다. 고양이의 병명을 알아내기 위해 병원을 옮긴 그날 고양이는 세상을 떠났다. 새로 옮긴 병원의 의사는 고양이의 병명을 알려주며 치료만 제때 받았으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고양이를 방치하다가 죽음으로 내몬 수의사는 자신의 오진을 인정하면서도 책임 회피를 위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치료를 받았어도 고양이가 약한 상태라 어차피 죽었을 거라고 주장해서 고양이를 잃고 절망에 빠진 남자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남자가 수의사에게 책임을 묻거나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남자의 집을 찾아갔을 때 남자는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그것을 보고도 그는 놀라지도 않았고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남자는 이미 반쯤은 죽은 상태였고, 그것이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 상태로 죽음에 이르기를 기다렸을 것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얘기하자 남자는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앉아 고양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의 말미에 남자는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를 잃었고, 살아갈 유일한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복수를 했나요? 아니, 실패했다고 했죠? 대체 왜?”
“남자는 수의사 역시 고양이를 키우고, 그 고양이를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어. 그가 그러더군. 그 수의사의 고양이를 죽여달라고. 그게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거야. 수의사의 고양이가 죽고 수의사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남자는 후련하게 죽어 자신의 고양이에게 가겠다고 했어. 난 이미 판사의 죄 없는 딸을 죽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논쟁에 내가 또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어. 남자의 죽기 전 소원인 복수를 하기 위해 우리는 수의사의 집으로 갔어. 수의사와 고양이가 한 침대에서 평화롭게 자고 있더군. 고양이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순간 갑자기 남자가 말을 바꾸는 거야. 고양이가 아닌 수의사를 죽이라고.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수의사를 죽이려는데 남자가 다시 붙잡더군. 아니, 그냥 고양이를 죽이라고. 그런 식으로 몇 번을 뒤집었는지 몰라. 결국 그는 둘 중 누구도 고르지 못했어. 결국 둘 다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지.”
“… 수의사를 죽이지 못한 이유가 뭘까요?” 고양이를 죽이지 못한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 죽고 나면 남은 고양이가 어떻게 되는지 대충 알잖아? 고양이만 남겨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뭐. "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고양이를 죽인 것은 그 병원을 선택한 자신이라며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복수에 실패한 자신에 대한 분노로 남자는 스스로에 대한 복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남자를 죽이지 않았다. 그것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복수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복수의 대상에 자기 자신이 속하지 않는 게 저는 오히려 불합리하게 느껴지는데요? 게다가 남자는 이미 실의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다면서요.” 내가 반론을 제기하자 그것이 고개를 저었다.
“너 그걸 알아야 해. 우선, 아직 이 복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내가 멋진 반전을 만들어냈다고 했잖아. 두 번째,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본인을 죽여달라고 요구했어. 이유도 다양했지. 듣고 있다 보면 대체 왜 그들 자신이 죽어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어. 게다가 내가 무슨 자살 기계도 아니고 그런 식의 요청을 함부로 받아줄 수는 없어.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다 거절하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다짜고짜 자신이 죽어버린다고 해서 그게 진짜 자신에 대한 복수가 맞기는 할까?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죗값을 치르는 것이 맞느냐는 말이야.”
그것이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뒷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그것을 채근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것대로 커피를 마시면서 꾸벅꾸벅 졸거나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기도 했고, 나는 그런 그것을 구경하거나 카페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 그러고 있자니 그것이 갑자기 깨어난 듯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황급히 잔을 반납하고 그것과 함께 카페를 나섰다.
그것과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늦가을의 오후, 산책로에는 마른 잎 사이로 도토리 껍질이 나뒹굴고 가끔은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는 고양이를 잃은 남자의 뒷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것의 갑작스러운 침묵의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것에게 그것들을 물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양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 어딘가 욱신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작고 소중한 존재는 까닭 없이 사람을 슬프게 할 때가 있다. 어쩌면 내 인생에도 그런 존재가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아니, 그건 진짜 안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기억되는 나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안개가 시각화되어 나타난 것일 뿐이다.
“고양이의 복수에 실패한 이야기의 반전은 뭔가요?” 부질없는 상념을 몰아내기 위해 그것에게 슬쩍 물었다.
“아, 실은 내가 남자 몰래 한 게 있어.” 조용하게 걷던 그것이 갑자기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그것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마음이 너무 약하더라고. 처음 나를 보자마자 이미 그 수의사에게 복수할 생각을 들려줄 정도로 의지가 확고해 보였거든? 마지막까지 그 생각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수의사의 고양이를 보자마자 마음이 흔들려 버렸지. 도저히 죄 없고 귀여운 고양이는 죽일 수가 없고, 그렇다고 수의사가 죽으면 그 고양이는 살아갈 수가 없을 거라는 게 이유라니, 그게 말이 돼? 나는 수의사가 죽어 없어진다 해도 고양이를 끝내주게 돌봐줄 사람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일단 그를 재워놓고 수의사에게 갔지.
수의사는 자고 있었어. 옆에 고양이가 함께 자고 있더군. 나는 수의사의 고양이를 데리고 남자의 집으로 돌아왔지. 그는 고양이를 바로 알아봤어. 고양이를 내려놓자 침대 밑으로 몸을 숨기는 모습을 함께 바라봤지. 내가 눈으로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딱 한 마디 하더군.
‘고마워요.’
그 말이면 충분했어. 나는 그가 죽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고 그 집에서 나왔어. 이후에 궁금해서 잠깐 들러봤는데 고양이는 그가 주는 밥을 잘 먹고 있었어. 아직 그 집에 익숙해지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그 고양이는 나이가 많아서 오래 살지는 못할 거야.”
“수의사는 어떻게 됐나요?”
“자신의 실수 때문에 고양이를 잃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지. 고양이를 데리고 나오던 그 밤, 내가 살짝 창문을 열어놨거든. 수의사는 그리로 고양이가 나간 줄 알지. 죄책감에 사로잡혀 미친 사람처럼 동네를 찾아다니고 있어. 고양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그의 죄책감이 이번에는 수의사에게로 간 거지.”
“자신이 벌을 받았다는 것을 수의사는 알까요?”
“글쎄,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군.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든가.” 그것이 히죽거렸다.
*사진: 극단 뛰다의 <노래하듯이 햄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