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원수는 누구인가

둘째 날 1/2

by 유월의쥰


주방에서 나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방문을 열고 나와 보니 그것이 커피기계를 능숙하게 만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다고 했는데 시끄러웠지? 미안해. 커피 한 잔 줄까?” 그것이 날 보고는 반가워하며 말을 걸었다.

“커피 말고 다른 음식은 필요하지 않아요?” 그것이 내미는 커피잔을 들어 향을 맡고 맛을 보니 놀라울 정도로 내 취향에 맞는 농도였다.

“커피면 충분해.”

“그럼 먹이고 재워주는 것에서 ‘먹이고’는 커피로 충분한 건가요?”

“다만 좀 많이 마실지도 몰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것이 기뻐했다.


“오늘은 뭐 해?” 그것이 물었다. 나는 산책을 하다가 머물기에 적절해 보이는 카페에 들를 예정이라고 답해주었다.

“좋아. 산책을 함께 가도록 하지.”

“그러시죠. 그런데 남들 눈에는 당신이 어떻게 보이나요?”

그것이 무슨 뜻인 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더니 손으로 얼굴부터 다리까지 몇 번 쓸어내렸다. 쓸어내릴수록 모호하던 윤곽이나 경계가 분명해지고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 되어갔다. 너무 평범해서 평범하다는 것의 본질을 구현하면 저런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평범한가?”

“아주 좋아요.”


그것은 나의 걸음에 적당히 맞춰서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이 없었고 나도 말없이 걸었다. 모퉁이에 작은 카페가 보여서 들어갔다. 출근 시간의 혼잡이 끝난 오전의 카페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돌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것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잔을 들여다보았다.

“넌 그래서 생각해 봤어? 누구에게 원한을 갚을지?”

“생각은 해봤는데 고르기는 아직 힘들어요.”

“너무 많아서?”

‘아니요. 사실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복수를 할지, 안 할지, 한다면 누군가에게 할지, 어떤 방식으로 할지 등등. 하지만 막연하게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요.’ 나는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말을 돌렸다.

“그렇다기보다… 실은 복수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어떤… 오래된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어떤?” 그것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조씨고아>라는 중국의 고전 작품이에요.”

“좋아. 계속해봐”


“옛날 중국의 명문가였던 조 씨 일가가 도안고라는 장군의 모함을 받아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돼요. 도안고는 조 씨 가문의 남자들은 죽이고 황제의 딸인 조 씨의 아내만 살려둔 채로 감금하는데 그녀는 임신한 상태였죠. 공주가 낳은 아이가 사내아이면 죽이라고 해요. 자신에게 복수할 가능성을 없애려는 것이죠. 이때 죽은 조 씨의 친구였던 정영이라는 사람과 조 씨 집안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던 공손저구라는 이가 태어날 조 씨의 아이를 살리자고 뜻을 모아요. 조 씨의 마지막 후손을 살려 도안고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끊고 잠시 숨을 고르자 그것이 계속하라고 채근했다.


“공주가 낳은 것은 아들이었어요. 죽을 운명에 처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공손저구가 ‘남의 집 아이’를 비단에 싸서 품에 안은 채 어딘가에 숨고, 그걸 정영이 고발하는 식으로 도안고를 속이는 데 성공하죠. 결국 공손저구는 ‘남의 집 아이’와 함께 죽음을 당해요. 밀고한 정영을 저주하면서 죽는데, 진짜 저주는 아니고 도안고를 속이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 한 셈이죠. 그렇게 진짜 조 씨의 핏줄은 살아남고 결국 복수에 성공한다는 이야기예요.”

“이상한 이야기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왜 생각이 났어?”

“조 씨의 핏줄 대신 죽은 ‘남의 집 아이’ 때문에요. 항상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그것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가 기록된 사기에도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어쩌다 이들에게 끌려와 죽임을 당했는지 어떤 정보도 남아있지 않아요. 그냥 남의 집 아이라고만 해놨지요. 그러니까 그 아이의 존재는 철저하게 복수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에요. ‘더 중요하다고 가치판단된 다른 아기’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희생되었지만 정작 이름 모를 아이의 희생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감을 갖지 않아요. 아이를 비단에 싸서 그럴듯하게 숨은 공손저구와 이 모든 것을 함께 모의하고 공손저구를 밀고한 정영, 이야기 속에서 이 둘은 그 갓난아기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죄책감을 갖지 않죠. 저는 희생된 아이가 분명 가난한 집의 아이겠구나 생각했어요. 돈 몇 푼에 팔아넘긴 어느 가난한 집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아니었을까 추측한 것이죠. “


내가 잠시 입을 다물었고 그것도 더 이상 채근하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그것이 보고 있는 것이 나인지 확실치 않았다. 초점을 알 수 없는 눈동자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이 유명한 옛이야기를 현대인들이 각색을 하기를, 그 희생당한 아이가 이름 모를 아이가 아닌 정영의 친아이라는 설정을 새롭게 만들어요. 정영이 조 씨의 핏줄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희생시키는 이야기가 되고 말지요. “

”거의 종교적이군. 그것이 고개를 저었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과 다를 바가 없는 이야기야. 정영이 조 씨에게 뭘 빚졌길래 그런 짓을 하게 만들지? “

”저는 한편으로 그런 각색이 나온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이름 없는 아이에게 이름을 준 거죠. 정영의 아들이라는 존재감을 주고, 사람들이 그 죽음에 대해 슬퍼하게 만들고. 그렇게 아이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 일을 도모한 정영에게 죄책감이라는 짐을 안겨준 것이죠. 아무래도 그쪽이 좀 더 현대적인 감성이니까요.”

“그런데 왜 그 이야기가 생각났어?” 그것이 다시 물었다.

“만일 그 이름 없는 아이가 단 한 사람에게만 복수를 할 수 있다면 과연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 넌 누구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잠깐 뜸을 들인 후에 되물었다.

“그 아이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을 꼽아보자면 우선 도안고, 공손저구, 정영이 있겠지요. 그 셋은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이니까요. 어쩌면 부모가 그 어린 아기를 빼앗긴 것일 수도 있고 혹은 팔아넘긴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는 직접적으로 나와있지 않으니 억측을 할 이유는 없을 테고요. 도안고와 공손저구, 정영 중에 그 아이는 누구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할까요?”

“도안고 아니겠어? 아이를 죽였잖아.”

“도안고는 그 아이가 조 씨 집안의 핏줄인 줄 알고 죽였어요. 그 아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정영과 공손저구였죠. 그 아이가 조씨집 안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도안고는 오히려 죽이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렇지.”

“제가 그 아이라면 정영과 공손저구 중 한 명을 지목할 거예요.”

“뭐, 일리 있네.”

“이 이야기에서 조 씨 집안의 아이 대신 죽은 것이 이름 없는 아이이든, 혹 정영의 아이이든 상관없이 복수를 위한 큰 그림의 배경 정도에 불과해요. 사람들은 대의를 위한 약자의 희생이 불편하다는 의견을 오히려 불편해하지요. 작품의 본질을 흐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요. 대의를 위한 위대한 희생을 먹칠을 하지 말라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해요. 복수를 하기 위해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제삼자의 희생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네 의견에 대체로 동의해. 그것이 잠시 뜸을 들이다 덧붙였다. 하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그래야 될 때도 있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었어요?”

“실은 그래. 그것이 말을 하며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공공의 선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는 어떤 여자에게 설득당했거든.”


-이야기는 3편에서 계속됩니다.



이전 01화그것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