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남는 장사했다

- 고맙다, 애들아. 내 전재산이다

by 메아리

어릴 때 욕심도 많고 열등감도 많았다. 가진 게 없다보니 마냥 웃기만 했다.

할 말이 없다보니 남들 눈치를 잘 봤다. 이쁘다고 칭찬해도 할 말 없으니 빈말이라 생각했다.

남들이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질투가 들킬까봐 뒤로 숨었다.


대학 시절에 영문과를 다니며 아 열등병은 또 발병했다. 살다 온 애들 앞에서 기죽어 말 한 마디

못했다. 에세이를 수십 번 고쳐도, 내 거는 형편없다고 제일 마지막에 제출했다. 어학연수도 안갔는데,

잘한다고 들으면 그 또한 칭찬보다는 싸구려 위로로 들렸다.


직장 생활을 할 때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은 생존에 위협을 느껴야 바뀌나보다.

못해도 할 사람이 나뿐이면 어쩔 수 없다. 잘하는 척이라도 해서 마무리해야했다.

떄로는 우겼다. 내가 제일 잘했다고. 나 믿으라고!(마케팅부였으니깐)

닥치는 대로 통역도 했다. 하다보니 실력보다 배짱이 늘었다.

남들은 소질이 있다고 하지만 난 먹고 살아야해서 낯짝만 두꺼워졌다고 느꼈다.


결혼 후 하게 된 일은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다.

전공과 관련이 없어서 그 열등병은 또 발병했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뒤에 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공법! 앞에 미리 말한다.

전공이 이 분야는 아니다. 자격증을 땄지만 초보이다.

난 두 아이의 엄마이다.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그렇게 아이들을 만난 게 벌써 18년이 넘어간다.

올 해 또 다시 떠나는 아이들이 있다.

울면서 집 가고 싶다던 아이가 이제 어엿한 고등학생이다.

한 시간을 못버티던 아이가 제법 두 시간 이상 앉아있다.

말 한 마디 하려면 오래 걸리던 아이가 구운 계란을 내놓는다.

여자친구랑 헤어져 살기 실던 아이가 대학에 가며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공부하기 싫다던 아이가 쌤을 위해 백점을 맞았다고 몇 통의 전화를 건다.

자기가 가장 힘들다던 아이가 쳐진 아빠의 어깨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올 해도 쌤이랑 있어서 참 좋았다고 기말고사 후 문자를 주고 받는다.


어쩌면 나 어릴 적 갖던 열등감과 질투심이 쌓여 아이들의 공감대가 두터워진 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아파봤기 때문에, 내가 서러웠기 때문에, 내가 그 부러움을 온몸으로 느껴봤기 떄문에

아이들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안다.

기다리면

그 아이들도 그 시간을 견디며 더 강해지고 멋져질거란 걸.

그 아이들도 나처럼 그 세월을 오롯히 견디고나면

나보다 훨씬 멋진 아이들이 될 거란 확신이 있다

그래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소망이 생겼다.

그 아이들이 멋지게 성장하는 걸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지켜보고 응원하고 싶다.

어른이 되어도 그 어른도 쉼터가 필요한 걸 안다.

그 쉼터가 되어주고 싶다,

무조건 네 편이란 걸.

그러니

자빠져도 괜찮다고.

자빠지고 다쳐도 옆에서 다시 일어날 때까지 지지대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줄

영원한 네 편이 있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너희 덕분에 올 해도 잘 살았다

고맙다, 애들아.

세상에 나가 언제든 힘들면 돌아와 쉬어가

너희가 어디서 뭘 하든 영원히 네 편일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