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시련은 나에게 행복을 낯설게 만들었다
사는 동안 행복한 일보다 불행한 일이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이 가치가 있다고들 한다.
나만 생각했다면 시련을 견딜 이유가 없다.
학창시절엔 나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이 계셔서.
결혼 후에는 내가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는 그들이 기댈 벽이 되어야해서
지금은 노후한 부모님의 평안을 위해서
나는 시련을 견디고 있다.
늘 예기치 않게 오고, 나를 무너뜨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거 같다.
그러다보니 행복이 낯설다
행복이 찾아올 때 급하고 자꾸 뒤를 바라본다.
행복 뒤에 불행이 따라오고 있을 거 같다서 행복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아니 누릴 줄 모른다.
그 내면에 뭐가 있을까
그래, 나는 오랜 시간 행복과 불행을 이분법으로 생각했다.
시련이 닥쳐도 그 안에서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두부 반모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삼남매가 나눠 먹어야 할 때도 웃으며 밥상에 온가족이 있었다
남편이 좌절해 도망쳤을 때에도 아이들은 옆에서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데려온 순간 빼고는 자주 웃고 지냈다.)
회사에서 짤려서 울고 오는 남편 옆에서 나는 일을 하며 우울할 틈이 없었다
다행스럽게 내 직업은 웃음을 가득 머금어야 하는 일이었다.
부모님이 응급실 간다고 연락이 왔을 때 대성통곡했지만, 좋은 의사를 만나
힘들지 않는 치료로 지금은 더 건강하게 지내신다.
매번 나에게 시련은 오고 간다. 톱니바퀴처럼 번갈아가며 오기도 하고
동시에 오기도 한다. 행복한 순간과 시련의 순간이 공존한다
내가 착각했다.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이 완전히 나뉘어있다고 생각했으니
행복이 왔을 떄 그걸 만끽하지 못했다
시련의 모습이 다양하듯 행복의 모습도 기대 이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 오는 그 시련의 떨림과 두려움이 나를 잠식하려한다.
기억하자. 그 와중에 난 아들과 스쿼트를 하며 부둥켜 안고 웃었다.
파도 가운데에 있어야 중심을 잡아야하는 이유를 찾는다고 한다.
오래 산 건 아니지만 그 동안의 아픔과 슬픔이 나를 인간답게 만들었다.
성장은 모르겠지만 이십대보다 지금이 인간답다.
오늘도 각자의 아픔을 겪었을 누군가도 기억하기를.
공존하고 있을 축복의 시간을 부디 외면하지 말고
부둥켜 안고 두 팔 벌려 환영하기를.....시련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