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워준 아이들 이야기
살기가 빡빡했다. 회사 다닐 때는 점심 먹으며 숨 쉴 시간이 있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24시간 365일이 근무시간이었다. 근무뿐이면 다행이지. 잠 자는 시간도 근무의 연장이었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난 여자가 아니라 그냥 똥개같았다. 일 보는 중에도 아이들은 내 옆에서 과자를 먹고 장난을 치고 문을 닫으면 빽빽 울어댔다.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이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더 이상은 못버티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잠을 포기했다. 아이들이 자면 드라마 정주행을 했다. 본 거 또 보고 또 보고... 이것도 하다보니 밑천이 떨어졌다. 이제는 번역알바를 해봤다. 그래도 이건 통장에 얼마라도 찍히니 잠시 숨이 쉬어졌다. 아! 난 통장에 뭐가 찍혀야 숨이 쉬어지는구나!
알았다. 일을 해야겠다. 단 돈 만원이라도 내가 벌어야겠다. 그게 나를 똥개가 아닌 사람으로 느끼게 함을 깨달았다. 애들을 두고 나갈 수는 없다. 할 일을 찾아보자. 컴퓨터에 눈알이 빠지게 들여다봐도 답은 없다.
실망이다. 만원은 커녕 누가 천 원도 주지 않더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애들 동화책 읽고 도서관 가며 하루를 그냥저냥 보냈다. 너무 심심해 내 책도 빌려봤다. 밤에 한 장씩 읽던 책은 다음 날 열 장을 읽고 그 다음 날은 반 권을 읽었다. 점점 빠져드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잠은 좀 설쳐도 된다. 남편이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짜증내지 않고 조용히 출근해주었다. 난 아이들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아이들을 보고 어린이집에 간 때부터 도서관을 가거나 책을 읽었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으며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찾았다. 심봤다!
난 두 아이의 엄마이다. 우선 내 아이들을 봐야했다. 한 두팀만 있어도 된다. 내 통장에 만 원이 찍히면 된다. 그리고 행복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이라 우리 아이들도 잘 놀아주었다. 사전에 학부모님들께 양해를 구했다.
" 제 아이들이 어려요. 그래서 다소 소음이 있는 부분 그리고 아이들이 수업에 들어올 수 있는 부분이 양해가 되면 수업을 진행하구요. 불편하시면 다른 선생님 알아봐드릴께요"
나의 형편에 무리수를 두지 않고 진행했다. 통장에 만 원의 수익이 목표라 난 목표달성이 500%였다. 드디어 사람인거 같았다. 아니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도 쓸모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잠깐의 수업을 위해 준비하며 내 아이들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내 감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달라지니 아이들은 그 때부터 내가 돌봐야 할 상대가 아닌 보석으로 보였다. 내가 이런 보석들을 곁에 두고 있다니. 내가 24시간 365일 언제든 만지고 안고 눈을 마주칠 수 있다니. 이런 기적을 내 인생에서 맞보다니. 아니 왜 이걸 몰랐지?
내가 달라져야했다. 내 감정과 생각이 달라지니 내 인생이 달라졌다. 세상은 그대로다. 주변의 모든 것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나만 달라졌다. 정확히 말해서 내 생각이 달라졌다. 그러고나니 잿빛 하늘이 무지개빛으로 바뀌었다.
엄마의 자리가 부담스럽고 억울했다. 지금은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해준 아이들에게 고맙다.
아내라는 자리로 주저앉은 내 모습이 불쌍했다. 지금은 아내라는 자리로 남편을 갖게 되어 그의 곁에서 그와 눈을 맞추고 혼자가 아닌 둘의 삶을 맞춰나가는 것들이 신이 난다. 때론 어려운 시련이 닥쳐서 둘 다 눈물바다가 되기도 한다. 그 시련을 둘이 고개 숙이고 세상에 무릎을 꿇은 날도 허다하다. 그런데 혼자가 아닌 둘이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혼자라면 절벽이라고 느꼈을 일들이 둘이기 때문에 돛단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시도해보지 않았을 일들이다. 나만을 가꾸고 나만의 능력을 키우겠다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살았다면 난 결국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잘났다고 어깨에 힘주고 고개 숙일 줄 몰랐겠지. 그리고 일이 잘못되면 늘 세상에 삿대질하고 소리쳤겠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이만큼 했으면 저만큼 되는 거 맞잖아. 왜 이딴 결과를 주는데!!
나보다 못한 것들도 잘 먹고 잘 살든데 왜 나만 이러는데!!'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난 고개 숙일 일이 많았다. 사과할 일도 많았다. 내 이익을 위해 소리치기 보다 참아야 할 일들이 생겼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해야했다. 내 꿈을 잠시 접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했다. 더 부지런해야했다. 불평불만을 쏟을 시간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사고에 멘붕이 와도 애들 앞에서는 연기자가 되어야했다. 딸이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부모님 앞에서는 희극인이 되어야했다. 외벌이로 어깨가 점점 쳐지는 남편을 위해 난 뭐라도 도움이 될 일을 찾아야했다. 쉬는 날에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라고 아이들과 아파트 밖을 다니며 그를 돕고자 했다. 외벌이의 무게를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이다. 이해는 아니지만 동갑내기로 결혼해 그의 부담감도 얼마나 무거울지 그 무게감이 내 가슴을 눌렀다.
그 시간을 견디는 동안 난 괜찮은 사람이 되어갔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지낸 시간이 나를 점점 사람이 되게 했다. 괜찮은 너희들을 나에게 온 건 부족한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선물이었구나.
모두가 고맙다. 그 모든 시간을 나와 함께 해 준 너희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리고 더 귀한 만남들을 갖게 되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가며 오늘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 모든 만남의 기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세상에 괜찮은 사람들을 남기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