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관계는 무논리가 답이었다.
"저....저희 아이는 경계선상의 아이인데요...수업이 가능할까요?"
그 통화를 하기까지 엄마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번호를 눌렀을까.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가고, 경계선상이라 장애학교에 입학은 불가했다.
일반학교를 다니며 친구를 사귀기는 어려웠다.
아이는 하나에 꽂히면 그걸 다 해야만 이동한다.
아침에 우연히 신문에서 같은 글자를 찾기 시작하면 그 날 정상등교는 불가했다.
처음 만난 그 날.
아이는 건너편 아파트 창문의 개수를 세고 있었다.
"선생님 오셨어. 인사해야지"
수차례 엄마가 외쳤지만 아이는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나는 이 쪽의 전문가도 아니고 경험도 없다.
굳이 경험이 있다고 우겨본다면 책에서 본 등장인물 정도? 아님 영화의 한 인물 정도..
부모님께 내 사전 지식을 설명하고 그래도 혹여 도움이 될 지 모르니 방문을 원하시면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죄송은요, 뭐. 그럼 저 커피 주세요. 우리 이야기하구 있죠, 뭐"
커피를 기다리며 아이가 세고 있는 아파트를 보니, 얼추 20층은 되어보였다. 저 건물만 창문을 세는지 아니면
건물 전체를 세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편안하게 어머님과 수다를 떨던 중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안녕! 반가워. 나 책 수업하려고 왔는데, 나랑 할래?"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는 눈을 책으로 돌렸다.
그렇게 시작한 수업에 아이는 종종 집중할 무언가가 있으면 내가 와도 몰랐다.
대화가 필요한 아이였다. 그리고 친구가 고팠던 아이였다. 기꺼이 내가 할 수 있었다.
나는 수준이 높은 어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과 수준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웃기면 나도 재미있고, 아이들이 신 나는 일이 곧 내가 재미있는 일이었다.
장난치는 게 너무 재미있고, 아이들이 말하는 일상에 같이 분노하고 뒤로 넘어가던 때였다.
책을 읽고 하는 쓴 다양한 글에 아이의 색깔이 묻어났다. 절대 첨삭을 하지 않는다. 그 모든 글은 아이의 역사이니깐 내가 거기에 오점을 남길 수 없다. 그대로 읽고 생각을 물으면 된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요청한 부분만 도와주면 되었다.
수업하다보니 아이는 친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친구와 수업을 같이 할 아이가, 아니지 이 아이와 수업을 같이 해도 된다는 동의를 받을 수 있는 부모님이 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밀고 나가기로 했다. 또래 남자 아이 하나, 여자 아이 하나. 운이 좋았다. 부모님들께서 전적으로 믿고 그 수업을 응원하신다고 하셨다.
더 운이 좋은 건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서 이미 아는 사이였다. 단지 서로 말을 해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수업하며 큰 문제는 없었다. 새로운 친구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표정이 풀렸고, 서로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대인배같은 모습을 배웠다.
어느 날, 비가 많이 와 아이들의 등원을 걱정하던 중, 한 아이만 지각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수업을 하는 데
아이가 비를 다 맞고 몸의 한 면이 길에 갈린듯 다쳐서 도착했다.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거니? 사고났니?"
"바보야, 이러면 병원을 가야지, 여길 왜 와?"
" 헐....피봐....이거 장난 아닌데..."
모두가 정신 없이 아이를 바라보고 수건으로 흙을 닦아주고 머리를 닦는데 다친 아이의 얼굴에는 의외로 미소가 번져있었다.
"수업인데, 자전거 타고 오다가 살짝 졸았어요. 죄송해요. 그런데 병원보다 여기 먼저 오는 거라..."
"........."
나중에 들었지만, 부모님의 꾸중에도 아이는 수업을 다하고 간다고 떼를 썼다고 한다.
뭐가 아이를 그렇게 오고 싶게 만들었을까. 그렇지, 친구지. 그런데 서로 대화도 없는데 저렇게 좋을 수 있을까? 내 머리와 가슴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 아이에게 물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책이 좋은 건 이럴 때다. 책 속 인물의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마음을 물어보기가 자연스러웠다.
" ㅇㅇ야, 근데 너는 저 친구들이 진짜 음....친구라고 생각해?"
" 네 "
" 친구는 서로를 위해주기도 하고 고민도 들어주고 음...내 편도 되주는 거 아닌가...이 책에서처럼"
" ....그러던데요. "
"......? "
" 학교에서 같은 반인데요, 지난 주에 ** 이가 저 지나가는 데 발로 찼어요. 저 잘못한 게 없거든요.
그런데 A가 와서 소리쳐줬어요. 다시 하면 가만 안놔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가 그냥 갔어요"
A는 여자아이였다.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어린이 드라마인가. 아니면 공익광고에 나오는 장면을 착각했나. 내가 뭘 잘못 들었을까. 나의 색안경은 그렇게 진실을 그대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수업에 A를 편의점에서 우연히 만났다. 배가 고파 삼각김밥에 라면을 먹으려던 차에 아이를 만난 것이다. 아이도 같이 먹고 싶다해서 둘이 편의점에 앉아 라면을 먹으며 그 때 그 말이 생각나 물어봤다. 그 일이 기억나냐고. 무슨 일이었냐구.
" 아~ 그거요. **이가 이상한 애예요, 샘. 개 미친거죠. 이유 없이 애들 치고 다녀요. 그 날도 괜히 시비 털고 다니더라구요. 때마침 ㅇㅇ이가 지나가는데 발로 차더라구요. 미친.... 그래서 확 째려보니깐 .. 가던데요 "
"아.. 근데 나 궁금한 거 있는데... 학교에서 ㅇㅇ이를 애들이 놀리거나 같이 안놀아주고 그러잖아. 그래서 너가 ㅇㅇ이 편들면 너도 음....애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아? "
" 상관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보는 애들이 이상한 거죠. 지네들은 얼마나 똑똑해서. 영어 수학 좀 잘한다고 디게 잘난 척하기는. 그래봐야 초등인데. ㅇㅇ이도 공부하면 잘 할걸요. 개가 저보다 책 잘 읽어오잖아요. "
아이의 말에 난 고개를 숙였다.
" 아, 그리고 쌤, 제가요 그런 애들 싫어해요. 한 대 맞으면 지도 아플거면서 그렇게 약해보이는 애들만 괴롭혀요. 지도 공부 못하면서 웃겨요 주제 파악을 못해요. 그리고 제가 남동생이 있잖아요. 그 놈도 공부 못해서 애들이 종종 노리거든요! 아니 등치만 크지, 애들이 놀리면 한 대도 못 때리고 울구 왔요. 으이구, 바보. 그래서 전 더 그런 애들 싫어해요. 지네도 다 큰 것도 아니면서 미래를 어찌 알고 그렇게 한대요? "
그 날 내가 먹은 라면과 삼각김밥은 맛이 하나도 기억에 안난다. 내가 누구랑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아닌 스승이었다. 아이에게 인생을 배웠다. 인간관계를 배웠다. 아이들은 역시 스승이었다. 나는 여태 무슨 공부를 하고 어떤 인간관계를 하며 지냈나 아무 생각이 안났다. 색안경도 없고 고정관념으로 누구를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대로 받아드리는 아이에게서 난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사며 그 수업료를 대신했다.
그 때의 ㅇㅇ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게 되었고, A는 심한 사춘기를 앓다가 고등학교를 전교 꼴찌에 가깝게 들어가더니, 졸업할 때는 전교생 앞에서 공부비법을 발표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울고 웃던 시간이 꿈만 같다. 내 품을 떠난 지금도 그 아이들은 분명 너무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거란 확신이 있다. 무슨 시련이 와도 그 아이들은 자기 역할을 잘 해내고, 그 향기를 여기 저기 뿜으며 다닐 것이다. 아이들은 모르지만, 내가 하는 것이 있다. 대학을 가며 헤어진 그 아이들을 언제나 믿는다. 그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며 난 매번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한다.
' 나와 함께 그 시간을 보내줘서 고마워. 나를 믿어주고 그 마음을 다 열어줘서 고마워.
가르쳐준 건 하나도 없어. 내가 배우는 시간이었어. 나눌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너라는 존재를 이 지구에서 만난 건 별을 딴 것만큼 큰 행운이었어.
언제까지나 어디에 있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