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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엠 Mar 12. 2020

(8) 클래식 음악, 처음엔 기술이었다?

이번에는 “기술과 예술”이라는 주제를 이어 받아 재미있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클래식 음악 하면 빼도 박도 못하는 고급 예술의 최고봉 아니겠습니까. 멋진 정장을 빼입고 커다랗고 근사한 콘서트홀에 들어가 평생을 예술을 위한 테크닉을 닦아 온 사람들이 연주하는, 수 백 년 전 완성된 최고의 선율을 오로지 소리만을 위해 조성된 환경에서 듣는다...... 이보다 더 고상한 예술 활동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처럼 차 한 대 값의 오디오를 집 안에 마련해서 최상의 환경에서 녹음된 레코드를 우아하게 듣는 사람들도 있죠. 이 취미에 소비되는 연주가는 예술가 그 자체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예술가라 부르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예술가라 불러야할까요. 





클래식 연주가의 첫 번째 사명은 곡의 재현과 표현입니다. 작곡가가 의도한 음과 지시를 정확히 표현하는 동시에 음의 강도, 빠르기, 강약의 조절 등을 통해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이죠. 그러기에 연주가는 이러한 자신만의 표현을 해내기 위해 평생을 바쳐 테크닉, 즉 연주 기술을 갈고 닦습니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생각한 표현이 좋다고 해도 그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좋은 연주란, 연주자가 생각한 표현이 기술을 매개로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그 표현에 많은 관객이 공감을 하고 감동을 받은 연주를 일컫는 말일 겁니다. 결국 좋은 연주가에게는 예술과 기술 양쪽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나 연주가가 이렇게 자신의 기술을 오로지 예술을 위해 쓰는 문화는 음악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입니다. 멘델스존과 리스트를 시작으로 음악을 향유하는 계층이 넓어지고 콘서트나 음악 페스티벌처럼 본격적으로 음악을 위한 사업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죠. 특히 리스트의 관종력(?)은 클래식의 문화를 뒤집어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전까지의 연주자는 그저 음악을 표현하는 기술자에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연주를 보여주는 일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리스트는 연주를 보여주는 것 자체를 음악의 일부로 소화하였습니다. 관객에게 건반과 건반을 연주하는 손가락과 음악을 표현하는 자신을 한꺼번에 보여주기 위해 무대의 사선 방향으로 피아노를 배치한 최초의 연주가가 바로 리스트이니까요. 



Liszt in concert 1842, by Theodor Hosemann


그렇다면 리스트 이전의 연주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방금 리스트의 예를 들며 얘기했듯이, 연주가는 음악을 연주하는 기술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예술을 하는 연주가도 있었지만, 이 경우 대다수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전시대 이전의 클래식 작곡가들이 자신이 예술가라 생각했다 물어본다면 글쎄요, 우리가 예술이라 판단하는 조건들을 고려하면서 음악을 만들었다 장담할 수는 없겠습니다. 모차르트나 바흐처럼 교회나 궁정에 소속된 장인으로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결과물이 너무나도 훌륭한 나머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경우가 대다수였지 않을까요. 





이와 같이 기술이었다 예술이 되는 예는 건축 뿐 만이 아닌 우리가 현재 예술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영역에 해당됩니다. 미술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우리가 예술 이외의 쓸모를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여겼던 음악조차도 그러하고요. 인간의 상상력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분야라면 무엇이든지 예술이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예술의 영역엔 한계가 없다 말하는 것이고요. 르네상스 시대엔 미술, 낭만주의 시대엔 음악, 근현대 시대엔 건축이 기술에서 예술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분야가 기술에서 예술로 가는 과도기에 있을까요? 의외로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분야가 한 20년 후엔 예술이 되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예술이 되는 이유는? 그 과정은? 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현재로선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호기심에 머릿속은 이미 앨빈 토플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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