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럴 줄 몰랐지 1)
영국 런던에서 북쪽을 향해 1시간(약 41km) 남짓 운전하다 보면, Hertfordshire(하트퍼드셔)에 도착하게 된다. 물론 나도 가보진 않았다.
그저 구글맵을 통해 방금 알게 된 사실이다.
이곳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묘비명의 주인공인 아일랜드 극작가 George Bernard Shaw(버나드쇼)의 무덤이 있다.
묘비명의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오역으론 “내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이지만, 원문에 충실하게 접근하면 ”내가 오래 머물다 보면 이런 일(죽음)이 생길지 알고 있었지 “의 느낌이다.
안타깝게도 버나드쇼의 명언은 이제 곧 마흔이 된 내 인생에 울림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럴 줄 몰랐지”의 연속이 더 맞는 것 같다.
인생은 늘 안타까움의 연속이지만,
또는 내가 “진득히 오래 머물지 못해서” 그렇겠지만,
지금 아일랜드에서 이렇게 내가 브런치를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은 특별히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연한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내 앞에서 닫히거나 지하철이 바로 내 앞에서 떠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은 일도 없었던 어느 평범한 날 저녁 9시, 같은 직장에 다니며 싱글인 직장동료 둘이 집으로 찾아왔다.
다시 버나드쇼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불행한 결혼 생활을 보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라 했지만,
이날만큼은 결혼하지 않은 나 자신을 후회했다
와이프 핑계 삼아 거절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거절 못할 것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료들과 함께 우린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공통의 이야기 분모를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술은 술을 부르고, 와인이 위스키로 넘어가자 난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 늦은 시간에 둘이 여기까지 올리가 없기 때문이다.
요지는 서울 본사를 떠나, 한 친구는 콜롬비아로 다른 친구는 프랑스로 전근신청을 하는데, 프랑스 자리가 비어있으니 함께 가자는 이야기였다.
나는 당연히 빠르게 거절했다.
차이는 있겠지만 거절은 빠르고 신속할수록 상대방의 오해를 없애며, 내 마음의 괴로움도 줄여주기 때문이다
순댓국을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게 첫째, 언어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둘째 이유이자 명백한 이유였다.
거절을 한 이후에는 그만큼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숨겨놓은 좋은 술을 꺼냈고, 방금 전 이야기는 서서히 지워지면서 자연스레 자리는 무르익어 갔다.
새벽 3시가 되자 한 친구가 떠나갔고, 함께 프랑스로 가자는 친구는 자고 다음날 떠났다.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고 같은 요일 밤 11시,
다시 둘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명분이 없었다.
후회했다.
지난번 일이 있은 후 몇 가지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준비해 놓았어야 했는데, 설마 같은 일이 이렇게 빨리 다시 일어날지 몰랐던 것이다.
이미 후회하기에는 냉정한 현실이 내 눈앞에 있었다.
시간이 늦었기에 우리들은 독한 술로 시작을 했고,
병이 숫자를 더해지자 이야기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요지는 친구가 나와 함께 프랑스로 가면 좋겠다는 취지의 지난번과 같은 이야기였다.
친구들이 가져온 위스키 피트향에 취했는지,
아니면 지난번 거절이 미안했던지 눈앞에 서서히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유비는 삼고초려를 했다지만 이렇게 밤늦은 시간 두 번이나 와서 진실한 마음을 전하는 동기의 눈빛을 계속 외면하기엔 내 마음이 흔들렸다
첫 번째 제안에 거절은 했지만 그 이후 계속 프랑스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Go’를 외쳤다.
앞으로 내 인생에 순댓국이 멀어지고 평양냉면이 사라지는 결정이었다. 내 결정에 친구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자리는 무르익어갔다.
이번에도 한 친구는 새벽에 떠나고, 함께 프랑스로 가자는 친구는 자고 갔다.
이렇게 내 인생 그래프에선
시간의 Y축과 장소의 X축이 변경되어
새로운 도화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숙취가 남아있던 다음 날 평범한 일상에 기적이 일어났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사당역이 느리게 보였고 그동안 보아오던 서울 하늘은 같은 하늘이 아니게 다가왔다.
서울에서의 시간이 유한성을 가지게 되자,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보이는 시야가 새로워졌다.
강남에 있는 프랑스 어학원을 등록하고 온라인 수업도 할인 폭이 가장 큰 일 년 치로 구매했으며 여러 불어 카페에도 가입했다.
난 그렇게 2023년 3월 샤를드골 공항에 내리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노력해도 불가능한 프랑스어 발음을 붙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