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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lawinter Jul 10. 2023

우물쭈물하다 아일랜드 2

(내 이럴 줄 몰랐지 2)

산소(02) 학번으로 입학한 1학년

월드컵을 온전히 즐기기엔 전공을 잘못 택했다.

시험은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 경기 다음 날로 연이어 잡혔고, 마침내 시험이 끝나 포효하며 즐길 수 있는 경기에선 탈락했다.


법조문 사이로 축구공이 넘나들었으며,

어느 문제가 나와도 성실히 써내려 갈 수 있는

민법 2조 신의 성실의 원칙 사례만 주야장천 반복했다.


민법 제2조 1항 -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

난 학생의 본분으로 시험공부를 성실히 하지 않았지만 높은 학점을 받을 권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결과는 세상이 내가 생각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다 희미해졌지만 그나마 1학년 1학기 기억에 남는 건 공통필수로 들어야 했던 영어과목이다.






교수님께선 Abraham Lincoln(링컨)의 그 유명한

Gettysburg address(게티즈버그) 연설을

외워서 쓰는 게 기말고사 1번 문제라 말씀하셨다.

놀랍게도 사실이다.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골자로 한 연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지금으로부터 87년 전…)

Eighty seven years ago 하면 될 것을

4 X 20 + 7 = 87을 만드는 숫자 계산이 놀라웠다.


자유의 프랑스를 꿈꾸며  학원을 등록하고,

1년 종합반 동영상 수강 신청을 한 내가

처음 만난 실질적 어려움은 바로 숫자였다.


프랑스어는 1부터~16까진 고유 숫자가 있고,

10진법과 20진법을 혼용해서 사용한다.

예를 들면, 80이 우리한텐 그냥 팔십내지 여든이지만, 불어로는 80이 quatre(4) 곱하기 vingts(20s)가 되는 것이다. 90이면 여기에 10(dix)을 더해야 한다.


하기 싫어졌다.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포르투갈전을 앞두고 길거리에서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외우고 있던 그때의 어린

내 모습이 빠르게 교차되어 지나갔다.


발음에 대한 공포는 처음부터 있었지만,

기타 다른 장벽이 높아짐을 실감했다.

보통의 어려움은 조금 지나서 첫 고비가 오기 마련인데

불어는 처음부터 높았고 프랑스의 자유보단 사당역의 복잡함이 내겐 더 알맞다고 생각했다.






가기 싫은 마음을 추슬러 해외영업 관리부에

신청서를 내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담당자는 ‘하늘 씨, 못 갈 수도 있어요.’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게 전해주었다.

다른 지원자가 있을 수도 있으며, 연차 높은 상사가 지원하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못 갈 수도 있는데, 이 어려운 프랑스어를 공부하기엔 이미 내가 마흔이 넘어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으며,

세상은 재미있는 걸로 가득 차 있었다.

프랑스 여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머리를 쥐어짜도 불어를 공부할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았다.


“형, 지원한 하면 무조건 갈 수 있어. 나랑 함께 가자!”라던 동료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1년 가까이 준비했고,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아는 동료가 한 말이었기에 전후사정을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신속한 결단과 빠른 추진력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동력이지만, 신중하지 못한 결정은 쓰라린 아픔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확실성이 불확실성으로 변했다.



지사 내에선 내가 프랑스를 간다는 소문이 조금씩 퍼지고 있었기에 직속상관을 찾아가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며 내 패를 다 보였다.


이미 프랑스와 영국에서 근무하셨던 친절한 부장님은 나에게 무조건 영어권을 추천했다.

나중에 한국에 왔을 때 불어를 사용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니 가서 영어 하나만이라도 잘 잡고 오라는 취지의 말씀이셨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내 빠른 결단력은 어느새 학원으로 향했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안내데스크에서 환불신청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인터넷 강의였다.

기초반만 클릭하면 되었을 것을, 발음반도 클릭하고, 샹송반도 클릭하고 여행불어도 호기심으로 클릭했다.

이미 여러 번의 환불신청 경험을 가진 학원은 다양한 방법으로 환불이 되는 것을 방지해 놓았다.


클릭이 의미하는 건 수업을 안 들었어도 이미 들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항목이 약관 37페이지 밑에서 5번째 줄에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신림동 생활을 정리했던 20대의 우울한 그 어떤 날이 교차해서 지나갔다.


칼은 칼집에 꽂혀져 있어야 무서운데,

이미 가겠다고 말을 하는 동시에 칼을 뽑은 나로서는

무라도 썰어야 했다.






복장을 단정히 하고 본사 해외영업 관리부에

문을 다시 두드렸다.

미국본토는 7년 차 이상만이 신청 가능했고,

4년 차인 나로서 남아있는 대안은

파견직으로 Alaska(알래스카) 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본사 관할이 아닌 다른 회사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존경하는 박찬욱 감독님의 가훈인

‘아니면 말고…’가

나의 정신적 건강함을 유지시키는 자양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면 안 되었고,

그래서 난 다시 가능성에  문을 두드렸다.

정말 감사하게도 아일랜드 어학연수 1년을 포함해서 알래스카 지부로 5년 파견이 확정되었다.

어두웠던 하늘이 다시 맑게 개켜지려 했으나

이번엔 아일랜드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연락을 해도,

어학원에서 답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등록을 하고 예산 신청을 하려 메일도 보내고

전화 시도도 해 보았지만,

답이 오지 않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미 아일랜드행 비행기표를 한차례 연기했고,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안으로 Vancouver(밴쿠버)도 검토되고 있었다.





이렇게 아일랜드 출국 2주 전 새로운 불확실성을 안고, 난 마지막으로 예정되어 있던, 이스라엘 Tel Aviv(텔아비브)로 출장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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