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럴 줄 몰랐지 3)
2023년 4월 12일, 이스라엘 Tel Aviv(텔아비브)로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본사와 지점을 오가다
해외파견받기 전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는 출장이다.
다행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 유혈사태가
벌어지지 않았기에 다행이라 여기며,
비행기에 몸을 실어본다.
하지만 천근만금 무거운 마음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마음 한편엔 아일랜드를
가게 될지 말지의 여부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귀와 어깨가 멀어지게 노력하는 마음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걱정을 덜어낸다.
도착한 텔아비브는 날 아주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엄청난 크기의 우박이 버스 천장을 향해 내리는데
흡사 승리를 고취하는 북소리를 연상케 했다.
결국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를 멈추게 만들었다.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향해 출항 준비를 마친 배에서
사기를 북돋는 캡틴의 한 말씀을 이미 들었고,
이제 정작 떠나야 하는데 막상 갈 곳이 없는
내 모습이 겹쳐져 우울한 상황의 연속됨이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Jerusalem(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결정되었다.
학교에서 입학 허가가 드디어 확정되었고,
난 귀국 후 이틀 만에 다시 출국해야만 했다.
내 머리는 그 이틀 동안,
평양냉면 지도 동선을 그리고 있었다.
Jerico(예리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지금이 رمضان(라마단) 기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슬람 아홉째 달로 ‘코란’이 내려진 기간을 기념하여 일출에서 일몰까지 단식하는 기간이다.
라마단 기간 عيد الفطر(마지막 날)
예루살렘의 모든 무슬림들이 황금사원을 향하는데,
길치인 난 올드타운에서
영영 존재가 사라질 뻔했다.
그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지금 제가 있습니다!
아일랜드 가기 전 시간이 있어서
드론을 조금 만지작 거렸다.
당연히 이스라엘에도 가지고 오고 싶었다.
하. 지. 만
민감한 현지 정세와 법규는 엄격했다.
원하지 않는 곳에 억류되어
기약 없는 기다림을 체험하길 원한다면,
가져오라는 현지 관계자의 조언이 있었다.
이 조언을 귀 담아 듣고
드론을 조용히 서랍에 넣어두었다.
안타깝게 이스라엘 촬영은 못했지만,
아일랜드는 계속 담아서 인스타 릴스로 업로드합니다.
인천으로 무사히 귀국한 직후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바로 의정부!
왜 갔는지를 아신다면 여러분은 정말 마니아이십니다!
면발 하나에 이 맛을 잊지 않으려
순간을 담는 정성 어린 마음으로 먹었다.
이틀 만에 떠나는 여정인만큼,
시차적응 하지 않고 버티다
다시 출국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2009년 친구와 함께 떠난 이후, 14년 만의 더블린행.
영문학 시 전공이었던 친구와 갔었던 곳은
Sligo(슬라이고), DrumCliff(드럼클리프)이다.
William Butler Yeats(예이츠)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그 무덤 묘비명은 숙연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Cast a cold eye on life or death
Horseman passby
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자여 지나가라.
인생의 희로애락에서 초연해질 수 있다면,
상황에 압도되지 않고,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면
보다 삶이 평화롭고 온유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A회사 화장품 브랜드로 유명한 Innisfree가
실제 존재하는 섬인지도 그때 알았다.
다음 사진의 저 작은 섬이 바로 이니스프리 섬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난 아일랜드 도착하기 전,
이미 두바이에서 충분히 지쳤다.
아일랜드로 향하는 비행기 노선은
직항이 없기에 유럽을 경유하거나,
좀 더 저렴한 티켓은 중동을 경유한다.
10시간 걸려 도착한 두바이에서,
또다시 10시간 비행하는 일정은
날 충분히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다.
3일 동안 비행기 안에서 약 30시간 넘게 있는다는 건
나의 인내심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며,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도착한 아일랜드.
내가 24년 2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머무를 곳은
아일랜드 Maynooth(메이누스)이다.
이곳은 공립대인 Maynooth University가 있고,
로마교황청에서 인준한 Pontifical university로서
신학대학인 St.Patrick College가 있다.
그것밖에 없다. 오직 공부만 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수도 Dublin(더블린)이
50분 걸리는 위치여서
쉽게 오고 갈 수 있다는 게 위안거리였다.
학교 첫날 이루어진 반편성 Test.
테스트는 문법과 어휘 객관식 100문항,
작문 30분, Dictation(받아쓰기)로 이루어졌다.
다음 날 같은 반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몰도바, 중국 등 각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여기 학생들은 대부분 Ielts를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사실 난 미국으로 향하기에 이 자격증이 필요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숙연해진다.
자격증이 필요 없다는 것에서
또 하나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알래스카에서 혼자 살기 위해 배워 둔
강남 H학원의 양식 조리사 자격증반 경험이다.
요린이인 나로선 자격증이 필요 없고,
기본 요리방법만 배우려 했었다.
근데 왜 자격증반을 등록했냐면
순전히 경제성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격증반에선
아무도 자기가 만든 요리를 먹지 않았고,
난 그게 지금도 의아하다.
어떻게든 처음 해보는 칼질과 레시피에 대한 적응은
나중에 혼자 먹고사는데 도움이 될 스킬이었다.
이젠 영어가 도마 위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날 배운 표현들을 현지인과 대화하며 복습한다는
미명 아래, Pup(펍)에서 다른 펍으로 옮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