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돌 사이 물을 끌어당겨 집마당으로 사시사철 물이 흐르도록 남편이 만들어놓은 샘물이 있다.
정확하게, 퐁퐁 솟아나는 샘은 아니지만 우리끼리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키위나무 그늘 아래 만들어 놓은 샘은 요즘 같은 더위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돌 사이 물이라 그런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여 그 속에 발 담그고 바람맞이 하여 누워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다행히도 이곳은 돌도 많고 물도 많은 지형이라 그것을 백 프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조카들이 아기를 데리고 놀러 온다고 하면 반드시 여벌의 옷을 가지고 오라고 당부한다.
보나 마나 샘물에서 물장구치고 놀게 뻔하기 때문이다.
새들도 물 먹으러 와선 목욕까지 하고 가는 진귀한 광경을 몰래 숨 죽이며 보기도 하고 개구리 한 마리는 아예 이곳이 제 집인 양 눈만 물 밖으로 똥그르르 내어 놓고 내 눈치만 보고 있다가 후다다닥 도망간다.
그래서 나는 저 샘물을 개구리 오줌물이라고 농담으로 얘기하곤 한다.
흐르는 물이다 보니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절대로 얼지 않는다.
개들 물 먹기 딱 좋을 뿐 아니라 시골집 운치 있는 마당을 만들어 주는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그렇게 잘 흘러나오던 물이 갑자기 쫄쫄 흐르길래 올라가 보니 막힌 곳은 없는데 물 흡입통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흘러나오는 물이 더 많다.
한 번씩 들어 올려 공기를 제거해 주고 나면 꼬르륵거리며 또 물이 콸콸 잘 나오곤 했어서 누구라도 보는 사람이 쫓아가서 물줄기를 터트려 놓곤 했다.
그러다 또 쫄쫄 나오던 어느 날, 그 날은 더 급한 일이 있어서 미루어 놓았더니 나중에 저절로 뚫렸는지 물이 또 콸콸 잘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 자세히 보니 공기가 들어갔을 땐 쫄쫄 나오다가 공기가 빠지면 콸콸 나오다가 저절로 해결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과학적인 부분으로 접근만 했어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산골에 살면서 과학이라니 생뚱맞지만 자연 속에 살면서 과학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 부분에서 참 많이 느낀다.
여기저기 자잘하게 고장 나는 것들은 그때마다 사람을 부를 수가 없어 부닥치며 직접 고치고 하다 보니 요소요소 과학이 필요한 부분이 참 많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사 온 첫 해부터 마당 한쪽에 자리 잡게 된 샘물은 오는 사람마다 물이 많은 동네에 딱 맞는 샘이라며 감탄을 늘어놓곤 한다.
산이 있고 물이 있는 이곳의 샘물은 11년의 산골생활을 지탱해 준 사치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동네 집들이 점점 산 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서고 있어 우리도 언제 이 샘물과의 이별을 해야 할지 모른다.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다.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그동안 누리며 즐겼던 것들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샘물 없는 키위나무 그늘이라도 만족하며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