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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냄도 Oct 09. 2024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2)

결코 잊지 않으려

  기억 하나. 

  나는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당시에 나는 몸이 무척 왜소하였는데, 외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데리고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곤 하셨다. 때로는 내 손을 잡고, 때로는 당신의 등에 나를 업고 방방곡곡을 누비셨다. 집 바로 앞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일을 보실 때면 나를 가장 푹신한 손님 자리에 앉게 하시고는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주곤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하루는 외할아버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까지 다녀왔다. 위험하며 극구 만류하시던 외할아버지는 내가 울며 조르자 옷가지로 당신과 나를 꽁꽁 묶으시고는 내가 뒷자리에 타는 것을 허락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시동을 걸고 가능한 한 가장 느린 속도로 운전하셨다. 나는 무척 무서워하면서도 얼굴을 힘껏 때리는 바람을 만끽했다. 외할아버지 등 너머로 삐죽 튀어나온 저녁놀이 아직도 선명하다. 외할아버지의 등은 무척 넓어서, 저무는 태양을 거의 가리고도 남았다. 


  기억 하나. 

  나는 혼자 시외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을 무렵부터 일 년에 두세 번은 꼭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외할아버지는 늘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식당으로 늘 나를 데려가 늘 삼겹살을 주문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늘 젓가락을 거의 들지 않으셨고, 허겁지겁 먹는 나를 보며 부족하면 더 먹으라고 늘 말씀하셨다.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면 식당 사장님에게 늘 내 자랑을 하셨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늘 집 앞 시장에 들러 나더러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으셨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하면 내가 입맛이 없는 줄 아시고 서운해하셔서, 늘 무어라도 사서 집에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집에 돌아가려 일어나면 늘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늘 나를 밖까지 바래다주셨고, 늘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를 주름진 손으로 내게 쥐여주시며 집 가는 차비로 하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다음번에도 고기를 먹고 싶거든 언제든 외할아버지를 찾아오라고 늘 말씀하셨다. 나는 늘 외할아버지를 꼭 안으며 다음에도 또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왜일까, 안을 때마다 외할아버지의 힘이 약해지는 것만 같았다. 


  다시 지금.

  얼마 전, 사촌 형의 결혼식이 있어 다녀왔는데, 모처럼 외할아버지를 뵈었다. 반듯한 양복에 다소 어색한 나비넥타이를 하고 계셨다. 여름에 당신을 뒤덮었던 붉은 반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이전보다도 더 기력이 쇠하신 듯했다. 듣기로는 아예 약물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더랬다.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온전히 누리시길 원하는 것 같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는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친지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외할아버지를 꼭 안았다. 그동안 안았던 그 어떤 당신의 모습보다도 작고 약했다. 나는 도망치듯 자리를 나섰다. 

  나는 당신과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당신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다. 결코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못하고 얽매이기만 한다면, 나는 당신과의 작별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이 글은 내 사랑하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위해 적혔다. 결코 잊지 않으려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동시에 잊으려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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