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시간이 약일지도 몰라

by 냄도

감기는 몸살과 혼동되기 쉬운데, 감기는 엄연한 감염성 질병이다. 감기는 주로 위쪽 기도에 생기는 바이러스성 감염으로, 리노바이러스, 계절성 코로나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등 여러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한다. 면역세포는 우리 몸의 다른 세포들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이토카인’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사이토카인이 전신에 작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몸살이라고 하는 여러 증상이 유발된다. 근육과 관절의 통증, 오한과 두통, 전신적인 피로감, 콧물과 기침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은 꼭 감기에 걸리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자주 발생할 수 있다. 과로나 수면 부족,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우리 몸은 염증 반응과 유사한 생리적 변화를 보이며 피로감이나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리한 운동 이후 하루이틀이 지나 뒤늦게 전신적인 근육통이 생기는 것 역시 감염과는 무관하지만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그중 가장 흔한 상황은 추운 환경에 오래 노출되는 것이다. 추우면 우리 몸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근육을 떨게 하거나 긴장시켜 열을 만들어내는데, 지속적인 근육의 수축은 근육통을 유발한다. 근육을 무의식적으로 떨고 윗니와 아랫니가 계속 부딪히는 것은 감기에 걸렸을 때 느끼는 오한과 유사한 증상이기도 하다. 또한, 차고 건조한 공기가 코 점막을 자극하면 코는 들이마신 공기를 따뜻하고 촉촉하게 만들기 위해 수분 분비를 늘린다. 이에 따라 맑은 콧물이 흐를 수 있다. 기침 역시 찬 공기가 기관지를 자극하면서 나타나는 반사 작용인 경우가 많으며, 기관지 주변 근육의 일시적인 수축이 이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감기약은 각각의 증상들을 완화하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열제는 뇌의 체온 조절 중추에 작용하여 우리 몸의 기준 체온을 낮춤으로써 우리 몸이 과하게 열을 발하지 않도록 한다. 진통제는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의 생성을 억제하거나 그 물질의 수용체를 억제하여 통증 신호가 뇌에 전달되지 못하도록 한다. 기침 억제제는 기침 반사 작용에 관여하는 신경 중추의 흥분성을 낮춰 동일한 자극에도 뇌가 기침을 명령하지 않도록 한다. 항히스타민제는 콧물 생산 신호를 전달하는 히스타민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억제하여 콧물 생산을 줄인다.


그래서 감기약은 감기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해당 증상이 있을 때 먹으면 된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 어떤 감기약도 감기를 낫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저 우리 몸이 덜 힘들게 하여 스스로 이겨낼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꽤 많이 들어봤다. 사실 그 말은 의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이, 실제로 감기가 나으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온갖 약을 먹어도 그 원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살다 보면 여러 문제를 마주하고, 여러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마다 그것들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곧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것을 파헤쳐 손에 움켜쥐고 뽑아 없애려 한다. 그런데 그럴수록 더 힘들 때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정작 그것의 원인이 사라지는 일도 거의 없다. 문득 그것을 없애는 것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과는 다른 차원의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감기약을 꼬박 챙겨 먹는 것이 아닐까. 그것들이 분명 우리 안에 있지만, 그것에 함락되지 않고 기운을 내어 할 일을 할 수 있게 하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 감기는 낫는다. 사실 진짜 약은 시간이고, 감기약은 그 시간을 덜 고통스럽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무엇이 감기약이 될 수 있을까. 내 곁의 누군가일 수도 있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 잠시 그것을 내려놓고 푹 쉬는 것일 수도, 정신이 없을 만큼 바쁘게 사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그 증상과 원인이 다른 것처럼, 어떤 것이 각자의 감기약인지도 다 다른 듯하다.


살면서 감기로 병원에 가 처방받은 감기약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조금 괜찮다 싶으면 다 나았다 싶어 그만 먹곤 했다. 귀찮아서 먹지 않았던 적도 있고, 깜빡해서 미처 못 먹은 적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앞으로는 감기약을 남기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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