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인간의 본능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 생각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내 학창 시절과 연애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나는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때 그 사람은 어떤 기억에 묶여 있길래 나한테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지금 떼쓰며 울고 있는 저 아이는 대체 어떤 결핍을 채워 달라는 것일까?'
부부간에 어이없는 싸움을 계속 이어갈 때나 아이들이 계속 울며 떼를 쓸 때, 나는 답답함과 동시에 명치언저리가 꽉 막힌 듯 답답함을 느끼며 목구멍이 조여든다. 대부분의 일들이 누구의 잘못이 아닌, 너와 나의 입장 차이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나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수도 없고, 나 또한 상대방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 가지의 명확한 감정이 아닌, 꼬리에 꼬리를 물은 기억이 또 기억에 기억이 묻어 이제는 누구의 것인지 조차도 알수 없기에 나는 화 낼 대상을 찾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침묵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결국은 나에게 되돌아온다. 나는 이 감정의 뿌리를 짐작해 보려 기억을 뒤진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기억들은 때때로 잦은 오류를 일으키지만,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 기억을 진실처럼 가슴에 품고 있다. 그리고 옛 기억은 초석이 되어 그 위에 새로운 나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즐거웠던 일, 배꼽 빠지게 웃었던 일, 무서웠던 일,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그런데 그 기억이라는 것이 즐거웠던 것보다는 슬프고, 아프고 무서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자라면서 더 자주 외로움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고,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차곡차곡 쌓이던 그 기억들 속에는 텅텅 빈 구멍들이 생겼다. 채워지지 않은 헛헛한 마음, 아무도 몰라주던 서러운 마음, 오해로 빚어진 억울한 마음... 그렇게 너와 나의 마음속에는 숭덩숭덩 구멍이 생겨났다.
젠가.'.
규칙이 단순하고, 여럿이 함께 할 수 있어 한때 유행하던 보드게임이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나무 블록을 하나씩 하나씩 빼내어 무너뜨리지 않으면 이기는 게임이다. 빼곡하게 규칙적으로 쌓은 나무블록이지만, 살살 건드려보면 어떤 곳은 아주 작은 틈이 있어- 손톱으로 톡톡 건드리면 쏙 하고 부드럽게 빠져나온다.
그런데 보기와 다르게 꿈쩍도 안 하는 단단한 나무 블록도 있다. 한번 손을 대면 그 블록을 빼내야 하고, 그것을 빼내는 순간, 나무 탑은 보나 마나 무너지게 된다. 나무 블록이 비어도 무게 중심이 맞는다면 무너지지 않고 단단히 서 있지만, 어떤 곳은 딱 하나만 비어도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곳이 있다.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감정을 흘려보내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내 마음도 젠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의 구멍은 어디일까?', '어떤 단어에서 무너질까?', '조금 비어도 괜찮은... 무너지지 않는 자리는 어디일까?' 조용히 있을 때 내 마음을 수시로 들여다본다. 빈 곳은 없는지... 텅 비어서 곧 무너져버릴 곳은 없는지 말이다.
엄마이기에, 나는
내 마음의 구멍뿐만 아니라- 내 아이의 구멍까지도 수시로 둘러봐야 한다. 아이들은 아직 부모의 영향 아래에 있기에 부모가 대신 그 몫을 해주어야 한다. 내 아이의 마음에 빠진 블록은 없는지... 채워지지 않은 구멍은 없는지, 혹시나 흔들흔들거리며 무너질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심통이 잔뜩 난 막내딸의 얼굴을 보고 있다. 무언가 자기의 생각대로 안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다. 옳고 그름에 따라 가르치려고 애썼을 뿐인데... 아이가 보기엔 자신보다 엄마가 앞서서 문제를 해결해 버린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더 놀고 싶은 놀이가 엄마로 인해 중단되어 버린 것인지 나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네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너의 마음에 구멍을 살펴보지 못해 미안하다. 엄마에게도 그런 구멍이 참 많아 삶이 때로 버거울 때가 있단다.
하지만 너 만큼은!
엄마보다 단단한 블록 탑이 되기를 바란다. 블록을 쏙쏙 빼내려고 해도 빠지지 않는, 혹은 이미 빠져버렸지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블록 탑으로 자라나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