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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데비 Feb 01. 2022

스웨덴 최북단, 키루나에 가다

6년 만에 결국 만나고야 만 오로라

이번 겨울에는 키루나에 가자.


요즘 자기소개를 MBTI로 한다던데. 나의 성격유형은 ENFJ, 고로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10월부터 부지런히 연말 계획을 세웠다. 작년 스웨덴에서의 연말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다. 매우 심각했던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연말 모임들이 취소되었고, 여행은 커녕 어디로 외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다행히, 올해는 유럽 내 이동이고,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면, 그렇게 제한이 심한 편은 아니라, 스웨덴 국내 여행지인, 최북단 도시 키루나에 가기로 했다.


룬드에서 키루나를 가는 방법은 크게 기차, 비행기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기차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가격이 좀 더 저렴하고, 비행기는 이동 시간이 짧은 대신 가격이 좀 더 비싸다. 이런 점 때문에 학생들은 기차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지만, 난 기어코 비행을 고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차로 간다면 00 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기차 안에서 보내야 한다. 교환학생 때라면 친구들과 추억도 쌓을 겸 기차로 갈만 했을 것 같지만, 이미 교환학생 때 비슷한 경험들을 몇 번 해 보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힘들게 석사 공부하다가 간만에 가는 여행인데, 기차에서까지 사서 고생하지 말자 싶었다.


안타깝게도 룬드에서 직항으로 키루나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항상 스톡홀름 공항을 경유해야 한다. 이번에 선택한 루트는 '덴마크 코펜하겐 - 스톡홀름(경유) - 키루나'였다. 룬드에서 코펜하겐 공항까지는 기차로 약 30 분 가량이 소요되는 가까운 거리이다. 물론 이 루트만 있는 것은 아니고 말뫼 공항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모두 스웨덴 국내선 이용이 되기 때문에 출입국 절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말뫼 공항보다 코펜하겐 공항이 크기 때문에, 코펜하겐에서 출발하는 편의 비행 스케줄이 더 자주 있다. 말뫼 공항에서 출발하는 게 모든 루트가 국내선이기 때문에 가격이 더 쌀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라서, 개인적으로는 비행 스케줄이 더 많은 코펜하겐 공항을 추천한다. 내가 이용한 비행 루트는 아래와 같다.


*키루나행

코펜하겐 11:45 - 12:55 스톡홀름

스톡홀름 14:15 - 15:55 키루나


*코펜하겐행

키루나 10:40 - 12:20 스톡홀름

스톡홀름 13:20 - 14:30 코펜하겐


친구들에게 말로는 아닌 척, 기대하지 않는 척했지만 키루나에 가는 목적은 단 하나,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였다. 여기엔 짧은 사연이 있다. 6년 전,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을 할 당시, 그래도 북유럽으로 교환학생을 왔는데 오로라를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 들어 친구들과 핀란드 라플란드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에, 일주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까지 들이며 라플란드에 머물렀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기분 탓인지, 하늘에 초록색의 뭔가가 있는 것 같았는데,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내일은 보이겠지, 내일은 볼 수 있겠지 하다가 일주일이 다 가고 그렇게 오로라 헌팅은 실패로 끝났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 여행은 2박 3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뭔가 감이 좋았다. 그래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첫째 날.


아침부터 안개가 짙은 날이었다. 그래서 과연 비행기가 제대로 뜰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을 했다. 북쪽은 분명 여기보다 날씨가 더 안 좋을 텐데, 키루나 날씨는 과연 괜찮을까. 그런 걱정으로 기차를 타고 외레순드 다리를 건너오는데 다행히 살짝 햇빛이 보이며, 안개가 겉이는 것 같았다. 코펜하겐 공항은 셀프 체크인 시스템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워낙 간편하게 잘 되어 있어서, 10분도 채 안 되어 수속을 끝마치고 출발 게이트로 향했다. 보안 검사하는 곳에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워낙 검사대가 많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발 게이트 앞에 일찌감치 앉아있는데, 걷혔다고 생각했던 안개가 유리창 너머로 아직 남아있는 게 보였다. 그 때문인지 출발이 조금 지연되었다. 스톡홀름에서 경유 대기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기 때문에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보통 이렇게 연결 편이 지연되는 경우는 이를 고려해서 그다음 비행편도 지연이 된다고 들어서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톡홀름 공항에 도착했는데도 다음 편 항공기 출발 시간이 지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이동을 서둘러야 했다. 출발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채 게이트 앞에 겨우 도착했고, 여전히 지연 알림은 없었지만, 탑승 시작을 조금 지연시켜서 결과적으로는 출발 역시 지연되게 되었다. 이럴 거면 좀 서두르지 않게 미리 알려줄 순 없었나 싶다가도, 비행기를 놓치지 않아서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키루나행 비행기에서 본 일몰 (Photo: Debbie)

그리고 스톡홀름에서 키루나로 향하는 비행기 창 밖 너머로 끝없이 이어진 일몰을 보았다. 키루나에 도착하면 아름다운 것들이 더 많을 텐데, 이 하늘은 왜 비행기에서부터 날 설레게 하고 그러나 생각했다. 그렇게 1시간 40분을 날아 키루나에 도착했다. 건물 색이 빨간색인 키루나 공항은 멀리서부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빨간색뿐이었고, 생각보다 정말 작았다. 내리자마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수하물을 찾을 수 있었고, 공항 건물을 나서자마자 공항버스가 한 대 기다리고 있었다. 연착된 시간만큼 공항버스 스케줄도 자동으로 딜레이가 되어서 편했다. 공항버스 스케줄은 비행 스케줄에 따라, 웹사이트에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키루나 공항버스: https://www.horvalls.se/airport-transfer.html


버스로 20분 정도 이동을 해,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렸다. 시간은 4시 반쯤 되어있는데, 해가 완전히 뜨지도 않는 지역이라 도시는 완전히 캄캄한 어둠 그 자체였다. MBTI 'J'답게 몇 번이나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숙소로 가는 길을 미리 찾아본 덕분에 헤매지 않고 15분 정도 걷자, 숙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캠프 리판 전경 (Photo: Debbie)

Camp Ripan: https://ripan.se/en/

Campingvägen 5, 981 35 Kiruna


키루나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걸어서 10-15분)에 있는, 꽤 좋은 퀄리티의 리조트이다. 간혹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시내와 최대한 먼 곳에 숙소를 잡는 사람들도 있는데, 키루나는 작은 도시이기도 하고 워낙 북쪽에 있어서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다. 키루나에 오로라가 보인다고 하면 키루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과 같이 친구끼리도 많이 오지만, 가족 단위로도 많이 찾는 리조트이다. 레스토랑, 스파, 헬스장(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 기념품 샵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고, 겨울에는 스노우모빌, 빙벽 등반, 오로라 헌팅 등의 자체 액티비티도 운영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따뜻한 옷을 대여할 수도 있다.




리셉션 동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자마자, 일단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키루나에서의 첫 식사를 맛있게 먹기 위해, 친구가 미리 키루나 맛집을 찾아서 예약까지 해 두었다. 이런 작은 도시에 이런 분위기 좋은 펍이 있다니 조금 놀라며, 피자와 함께 맥주를 한 잔 했다. 직원들이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뭔가 이탈리아 식의 피자를 맛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실제로는 룬드에서 먹을 수 있는 스타일의 피자와는 아주 조금 다른, 또 다른 스웨덴 스타일의 피자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Pub Edenhttps://www.hotelarcticeden.se/

Föraregatan, 981 39 Kiruna


키루나 맛집 펍 이든 (Photo: Debbie)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거의 뛰어왔다. 이렇게까지 서두른 이유는 예약한 스파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 숙소에 머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것 중, 첫 번째가 오로라라고 한다면, 두 번째는 바로 이곳의 스파를 즐기는 것이었다. 정말 운이 좋다면 스파를 하면서도 오로라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욕심인 걸 알지만 그 환상적인 경험을 나도 하고 싶었다.


오로라 스파 입구 (Photo: Debbie)

오로라 스파라고 불리는 이곳의 스파는 한 번에 2시간씩 이용할 수 있고, 수영복만 가져가면 된다. 성인 한 명 당 요금은 395 SEK이다.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마지막 입장 오후 8시)까지 운영한다. 이 리조트에서 머물지 않는 사람들도 스파만 이용할 수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금액이 조금 더 비싸다. 그렇게 큰 규모의 스파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하니 이런저런 시설을 다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 최고의 분위기를 자랑한다. 사우나에 입장한 후, 직원에게 스크럽 재료를 달라고 말하면 작은 바구니에 여러 가지 스크럽 재료들을 담아 준다. 친절한 직원의 설명에 따라 재료들을 가지고 얼굴, 발, 바디 스크럽 등을 취향껏 즐길 수 있다. 스크럽 재료들은 스파 이용권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사우나는 각각 다른 테마로 세 곳이 있으며, 각 사우나 방마다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본인에게 알맞은 곳을 선택에서 들어가면 된다. 물론, 잠깐씩이라도 세 곳 모두를 즐겨보는 걸 가장 추천한다. 탕은 실내에 한 곳, 실 외에 한 곳이 있다. 실내탕에서 몸을 조금 데우고, 실외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실외에 있는 노천탕의 물이 정말 따뜻해서 막상 들어가면 전혀 추운 것을 느낄 수 없지만, 야외로 이동하는 그 잠깐의 순간이 너무나도 춥기 때문이다. 난 야외로 나가는 문 한쪽에 모자가 쌓여있어서 처음에는 이게 뭔가 했는데, 그 필요를 나가서야 깨달았다. 노천탕에 잠깐 들어가 있으니 머리카락이 얼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파에서 모자를 빌려주고 있던 것이었다. 또한, 휴게 공간에서 따뜻한 차를 준비해 가지고 나가는 것도 추천한다. 물론 가지고 나가는 순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차가 급속도로 식기 시작하겠지만.




둘째 날.


여행까지 가서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체크인할 때 가장 늦은 시간으로 조식을 예약해 두었다. 이곳의 조식이 기대되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사슴과 무스 고기로 된 음식이 나온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입구에서 방 번호를 말하니 레스토랑의 가장 안 쪽, 눈으로 덮인 하얀 길을 볼 수 있는 창가 자리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창가 자리에서 먹었던 조식 (Photo: Debbie)

본격적으로 키루나의 조식을 탐구해보자, 생각하고 접시에 이것저것 담아와 자리에 앉았다. 연어도 여러 종류가 있었고, 무려 사슴의 심장과 무스 소시지가 있었다. 평소에도 연어를 정말 좋아했는데, 스웨덴에서 먹어본 연어 중에 이곳에서 조식으로 먹은 게 가장 맛있었다. 그리고 사슴의 심장과 무스 소시지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사실 살짝 맛이 걱정되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육포 느낌의 식감과 맛이라 괜찮았다. 그리고 마무리로 마신 따뜻한 생강차가 추운 겨울, 추운 키루나에서 마시기에 정말 최적이었다.


조식을 먹고 시내로 나갔다. 오전 10시쯤이 지나니 살짝 날이 밝아지는 느낌은 있었다. 날씨 어플에 '오늘 일출은 없습니다.'라고 뜨는 것으로 보아 해가 완전히 뜬 것은 아니겠지만, 사방에 쌓여있는 눈 덕분인지 예상했던 것보다는 좀 더 도시가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이게 키루나 겨울의 최대치 밝음이겠구나 알 수 있었다.


키루나의 모습 (Photo: Debbie)


키루나의 모습 (Photo: Debbie)

그리고 점심으로 사슴과 무스 고기를 먹으러 갔다. 조식으로 맛본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본격적인 '고기'를 먹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본 곳은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한 푸드트럭이라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푸드트럭이라 테이크아웃도 가능하고, 푸드트럭 앞에 큰 텐트가 있어서 안에 들어가서 먹고 가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처음에 테이크아웃을 해서 가려고 하다가, 추운 날씨 때문에 가는 길에 음식이 다 식을 것 같아 먹고 가기로 했다. 나는 무스와 사슴 고기가 섞여 들어간 핫도그 (Reindeer & Moose Mix Subs)와 따뜻한 링건베리 주스를 주문했다.


Stjek Street Foodhttps://www.stejk.se/

Konduktörsgatan 22, 981 34 Kiruna


예전에 핀란드에서 사슴고기 버거와, 사슴고기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좀 고기에 그 특유의 향을 느꼈었다. 그런데 이곳은 그 특유의 비린내가 없어서, 어떠한 거부감도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가게 주인아저씨가 서빙을 해 주면서, 텐트 안에 있던 무스 해골(?)을 가리키며 예전에 딸이 데리고 놀았던 친구 같았던 무스였고, 지금 우리가 그걸 먹는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위생법 위반이지 않을까. 특이하게 이 가게는 키루나의 역사와 전설을 이야기해주는 테마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생각해보니, 아저씨가 우리한테 영업 비슷한 걸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레스토랑에 걸려있던 무스 해골 (Photo: Debbie)

그렇게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와 친구들은 잠시 낮잠을 잤다. 나는 평소에 낮잠을 자고 나면 머리가 아파지기 때문에, 낮잠은 자지 않고 그냥 휴식을 취했다. 날이 다시 살짝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전 날의 스파 경험이 너무 좋아서, 저녁을 먹기 전 스파를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전 날처럼 노천탕에 들어가서 밤하늘을 보는데 여전히 오로라의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래도 오로라 보러 온 건데. 살짝 불안했다. 그렇게 스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려는데, 헤어드라이어는 왜 또 고장 난 건지. 조금 기다렸다가 멀쩡한 헤어 드라이어기를 쓰고 나가려고 친구들을 기다리게 했다는 마음에 좀 속상했다.


그렇게 키루나에서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스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하늘에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이상했다. 분명 구름이랑은 달랐다. 일단 급한 대로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그 순간 핸드폰 스크린이 초록색으로 가득 찼다. 오로라였다. 오로라를 먼저 본 주변 사람들이, 실제로 보는 것보다 카메라로 보면 더 잘 보일 수도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오로라와의 첫 인증샷 (Photo: Debbie)

오로라를 보면 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눈물을 흘릴 감정을 잡을 틈도 없이, 모두 돌아가면서 바쁘게 인증샷을 남겼다. 이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여러 개의 사진을 돌려보니, 사진마다 오로라의 형태가 살짝씩 달라지는 게 보였다. 당장 리조트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 예약이 있었는데, 저녁 식사를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다. 그런데 마침 오로라가 살짝 흐려지는 것 같아, 일단 식사를 하기로 했다.


레스토랑은 오전에는 조식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는 장소와 동일한 곳이었는데, 저녁에는 조명도 조금 달리 쓰고 테이블 세팅도 조금 다르게 해서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직전에 오로라를 봐서인지, 식사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직원 분의 친절한 음식 설명도 좋았고, 중간중간 음식의 맛과 필요한 것이 있는지 체크해 주는 것도 딱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그 직원이 너무 좋았던 나는, 신나서 오로라를 봤다고 자랑을 했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던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아까와 달리 하늘이 너무 깨끗했다. 설마 그게 끝이었나, 그냥 저녁을 취소하고 좀 더 봤어야 했나 생각이 들었는데, 오로라 예측 어플을 체크해보니 확률은 새벽에 더 높아진다고 나와있었다. 그래, 희망을 갖자. 친구들과 숙소에서 카드 게임을 하고,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서, 알람을 맞춰 30분마다 한 번씩 밖에 나가 오로라가 다시 보이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오로라 댄싱 (Photo: Debbie)

"뭐 있는 것 같아!"


친구의 한 마디에 우왕좌왕 겉옷을 걸쳐 입고 나갔다. 처음 본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오로라였다. 신이 나서 또 서로의 인증샷을 찍어주고, 이 각도에서, 저 각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다. 그러다가 사진을 찍기 좀 불편해 장갑을 벗고 맨 손으로 오로라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점점 손이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오로라를 보고 있다는 그 자체로 너무 신나서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는데, 점점 그 추위가 느껴지며 그냥 차갑고 추운 것이 아닌 아플 정도의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살짝 눈치를 보다가, 친구들도 좀 추워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슬슬 들어가자고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오로라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뭐가 화아악 하고 눈앞에서 움직였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오로라의 모습. 오로라 댄싱이었다. 이때까지 본 오로라의 모습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밝은 모습이었다. 어느새 눈은 핸드폰 스크린이 아닌 실제 오로라에게 향해 있었고, 그렇게 불타듯이 춤을 추는 오로라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이 날, 그렇게 보기 힘들다던 오로라를 이제 봤으니 여한이 없을 것 같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정말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이제는 주황색, 보라색, 그리고 아주 가끔 나타난다는 다른 색의 오로라들도 봐야겠다는 또 다른 플랜이 생겨버렸다. 맞아, 난 여기서 만족할 수 없어.




마지막 날.


오로라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 새벽 4시쯤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이 날 오전 비행기로 다시 돌아가는 일정이라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조식은 먹어야 한다고, 잠은 덜 깬 상태로 조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당분간은 먹을 일이 없을, 무스와 사슴고기를 다시 맛보고 싶었다. 이 날은 조금 아쉽게 창가 자리가 아닌, 어제 저녁을 먹었던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버스 안에서 본 키루나의 일출 아닌 일출 (Photo: Debbie)


그렇게 식사 후 바로 체크아웃을 했고 리조트를 나섰다. 시간에 딱 맞춰 정류장에 공항버스가 도착했고, 공항버스 안에서 키루나의 핑크빛 일출을 보았다. 물론, 해가 완전히 뜨는 것은 아니라 일출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해가 없는 일출 아닌 일출이, 해가 쨍한 진짜 일출보다 더 아름다울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버스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일출을 보다 보니, 6년 전 느꼈던 핀란드 라플란드 하늘의 초록색 뭔가가 오로라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지금보다 많이 떨어져서, 카메라가 못 잡아 낸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결국 내 눈으로 확실히 오로라를 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의 오로라를 내 인생 첫 오로라로 하기로 했다. 오로라, 널 만나는 데 참 오래도 걸렸다.


키루나 공항은 공항 규모가 작은만큼 수속을 위한 줄도 그렇게 길지 않았고, 덕분에 공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탑승을 위한 대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좀 일찍 와서 다행이다 싶었던 건, 대기 공간도 협소한 편이라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앉을만한 자리가 많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할 게 없어서 잠깐 구경이나 할까 기념품 샵에 잠깐 들렸다가, 기념품 컵을 하나 충동구매하고 말았다. 그래도 컵은 실용적이니까, 핑계를 대면서.




여행 그 후,


2021년 12월, 새해를 눈앞에 두고, 나는 누구에게는 버킷리스트이기까지 한 오로라 관측을 어쩌다 보니 하고야 말았다. 혹자는 오로라를 보고, 이런 자연 앞에서 나는 정말 작은 존재임을 느낀다던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정반대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로라까지 봤는데, 이제 뭘 못해낼까. 갑자기 무한한 자신감이 솟았다. 일단 눈앞에 놓인 마지막 학기와 논문부터 그렇다. 무한한 걱정이 앞섰다가도, 누가 여행 때 찍었던 오로라 사진을 내 눈앞에 들이미는 순간 무한한 자신감이 되어 버린다. 언젠가 효과가 떨어지는 날이 오겠지만, 다행히 아직은 유효하다.


난 여행이 이래서 좋다. 계획을 하고 간 걸 그대로 실천하고 이루고 와도 뿌듯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가 전혀 계획하고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날 행복하게 한다. 이번에 만약 오로라를 보고 오지 못했더라도, 이번 키루나 여행도 분명 다른 방향으로 행복한 여행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정말 좋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다. 그 시간만으로 행복한데, 이번엔 거기에 오로라 감성 한 스푼 더 얹은 거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망한' 여행은 없다. 여행에 정답은 없으니까. 그래도 굳이 흥망을 따지자면, 이번 여행은 꽤나 성공적이었던 여행이다.


또 그런 생각도 든다. 최근에 스톡홀름 도심에서 오로라가 보였다고 하던데, 만약 내가 사는 곳에서 오로라를 봤다면 이 여행 때 봤던 기분과 다르지 않았을까? 여행을 가서 본 오로라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게 아닐까 하고.


자, 그럼 다음엔 어디를 갈까?


커버 이미지 Cover Image (Photo: Debb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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