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데비 Jul 31. 2022

스웨덴 유학생은 문송할 수 없다.

스웨덴 미디어 석사생의 취업 준비 이야기

스웨덴을 떠나 한국에 온 지 이제 한 달, 그리고 새롭게 일을 시작한 지도 한 달 반이 되었다. 졸업식 열흘 전 오퍼 레터를 받고, 졸업식이 지나 딱 일주일 후에 일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 중 일부는 나에게 휴식의 시간이 없어서 힘들지 않겠냐고 했지만, 휴식기는 석사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병행했던 우리 전공 프로그램의 몇 친구들을 제외하면 함께 졸업한 다른 친구들은 아직 PhD 지원을 하거나 인턴을 하면서 취직 준비를 하는 단계라, 오히려 난 꽤 운이 좋은 케이스인지도 모른다. (물론 시기상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이 졸업한 친구들 모두가 결국엔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에게는 아주 짧은 해외영업, 그리고 정확히 마케팅은 아닌 것이, 그 언저리 어딘가 (돌이켜보니 커뮤니케이션)에 해당하는 업무 경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업무 경험일 뿐 경력이 될 사항들은 아니었고, 따라서 소위 말하는 중고 신입으로서 나의 커리어를 처음부터 찬찬히 쌓아나가야 하는 상태였다. 그것도 스웨덴과 한국 모두에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의 막막함과 설렘이 공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다 해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과 스웨덴 취업을 동시에 준비했다. 덕분에 마지막 학기에는 논문 쓰랴, 인턴 하랴, 파트타임 하랴, 취업 준비하랴 너무 바빴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코리안 몬스터라고 했다. 딱 한 가지씩만 집중할 수 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진 조건은 똑같았다. 그래서 딱히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은 없었고, 불만을 가지기에도 뭐 했다.


하지만 분명 그 과정에서 충분히 예상한, 때로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있었고,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분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스웨덴 유학생활 동안 어떻게 취업 준비를 했는지, 그리고 현재 근무 중인 회사에서 취업하게 된 짧은 스토리를 담아보고자 한다. 이게 과거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계시거나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실 분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길 바라며.




1. 일찍 일어난 새가 포지션을 얻는다.

(Photo: Ron Lach/https://www.pexels.com)

솔직히 말하자면, 취업 희망 지역 1순위는 스웨덴이었으나, 사실 그렇게 지역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했다. 희망지역과 그 순위를 정해놓는 것이 나를 도리어 좁은 범위에 가두는 것 같았고 그게 취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있고 싶은 곳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갈 것이다!" 이게 일종의 나의 취업관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넓게 보려고 했고, 지역보다는 회사, 회사보다는 내가 관심 있는 직무에 더 큰 비중을 두려고 했다. 본격적인 취업 활동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1학년이 시작하면서부터 이것저것 찾아보며 나름의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뉴스레터를 발송해주는데, 그곳에 취업과 관련된 행사 내용이 있으면 놓치지 않고 스케줄러에 적어두었다가 꼭 참석했다. 룬드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 덴마크, 독일 등에 취업한 선배들의 취업 스토리를 들을 기회도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좀 더 매력적인 CV를 작성할 수 있을지에 관한 세미나도 들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이용한 플랫폼이나 사이트는 링크드인, 룬드대학교 마이커리어(https://mycareer.lu.se/)였다. 링크드인으로 관심 있는 지역과 직무를 설정해서 새롭게 열리는 포지션을 매일 알람으로 받아보았다. 그리고 룬드대학교 마이커리어 사이트를 통해서도 새롭게 열리는 포지션을 확인했는데, 대부분의 채용 공고들은 링크드인과 동일하게 올라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렇게 유용하게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기적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간혹 링크드인보다 룬드대학교 마이커리어에 먼저 공고가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룬드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채용 관련 박람회나 세미나 행사 등이 리스트로 정리되어서 올라왔기 때문에 한눈에 채용 관련 스케줄을 챙기기 좋았다.


1학년 동안은 특히 링크드인 네트워크 넓히기에 주력했다. 아무래도 학교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고, 또한 내 전공 분야를 위주로, 비슷한 직무 경험이 있거나 관심 분야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넓히는 것은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한편, 한국의 채용 프로세스는 이전에 경험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 지역을 위주로 채용의 흐름이 어떠한 지 파악하려고 했다.


2. 모로 가도 인턴.

(Photo: Pixabay/https://www.pexels.com)

스웨덴에 가기 전부터 석사 생활을 하면서 인턴 포지션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포지션이 가장 많이 열리는 지역은 스톡홀름이었으나, 나는 그와는 멀리 떨어진 룬드에서 거주하니 말이다. 물론, 인턴으로 학점 인정을 받을 수 있어서 한 학기 이상을 스톡홀름으로 이사를 가서 인턴 근무를 하는 방법도 있으나 일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었다. 스웨덴에서의 인턴은 대부분이 무급 인턴이라, 무급으로 일하면서 그 비싼 스톡홀름의 렌트비를 감당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기준을 세웠다. 최소한 룬드에서 대중교통(기차 포함)으로 1시간 이내로 통근할 수 있거나 재택을 하는 곳일 것. 나의 전공을 어떤 방법으로든 활용할 수 있는 직무일 것. 그러다 보니 내가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인턴 포지션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면서 여러 군데에 인턴 지원을 했지만, 대부분 답변이 오지 않았다.


이번 여름방학은 정말 푹 쉬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 스터디인스웨덴을 통해서 스웨덴에서 유학 중인 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는 인턴 포지션들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스웨덴 기업에서 일을 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고, 심지어 내가 지원한 곳은 평소에도 관심 있게 지켜보던 기업이었다. 공고가 오픈했을 때 팀 프로젝트로 정말 정신이 없던 시기였는데, 잠을 줄여가면서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한국으로 가는 티켓부터 구매했다. 당시 해외 입국자는 2주간 철저한 자가격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한국행을 더욱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지원한 곳으로부터 면접 제안을 받았고, 자가격리를 시작하며 면접을 보고 오퍼를 받아,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 전공을 활용해 커뮤니케이션 컨텐츠를 제작하는 업무를 메인으로 수행하였고, 내가 평소 고민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부분을 실무로 옮겨볼 수 있는, 문과생으로서는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여름방학 동안의 인턴 생활을 마친 후, 다시 스웨덴에 돌아왔다. 이전 인턴 경험이 정말 좋았기 때문에, 스웨덴에서도 업무 경험을 쌓으면 졸업 후 진로에 확실히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학년이 시작할 무렵부터 다시 정말 많은 곳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인턴과 신입 포지션 모두에 지원했다. 1학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꽤 많은 곳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CV를 업데이트하려고 노력한 보답을 받는 느낌이었다. 특히, 바로 직전에 인턴을 했던 스웨덴 기업에서의 업무 경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서 그곳에서 인턴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많은 면접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재택으로 인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스타트업이다 보니 함께 일하는 동료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또래였고, 그래서 초반에는 대화가 정말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서비스도 제대로 런칭하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업무량이 상당히 적어서, 인턴으로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이렇게 석사 생활 동안 총 두 번의 인턴 경험을 쌓았다. 1학년이 끝나고 방학 동안 한국에 있는 스웨덴 회사에서 한 번, 2학년 마지막 학기에 스웨덴에 있는 스웨덴 회사에서 한 번. 이 인턴경험을 더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싶으나, 글이 너무 장황해질 것 같아서 그것은 차후 다른 글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내가 나의 인턴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취업에 대한 나의 생각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인턴 생활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직무가 나와 정말 잘 맞았던 경험이었고, 두 번째 인턴 생활을 통해선 내가 꿈꿔왔던 직무가 나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방향이던 이런 배움은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스웨덴에서의 유학 생활을 통해 커리어 패스를 아예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거나 나처럼 중고 신입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은 경우에는 "경험해보는 것"의 중요성이 정말 크다. 따라서 이전에 경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석사 생활을 하면서 꼭 한 번은 인턴 경험을 쌓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3. 고생 끝에 낙(落)이 아닌 낙(樂)이 온다.

(Photo: Oleksandr Pidvalnyi/https://www.pexels.com)

앞서 인턴 생활을 강조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졸업이 다가오고, 두 번째 인턴도 마무리가 될 때 즈음, 다시 제대로 신입 포지션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특히 논문 막바지에는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채용 공고를 확인하는 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맞게, 첫 번째 인턴을 했던 한국에 있는 스웨덴 기업에 나에게 딱 맞는 포지션이 오픈되었다. 나는 부리나케 지원서를 작성했고, 면접 과정을 거쳐 정말 감사하게도 오퍼를 받아 현재 그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졸업을 하면서 거의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분간 스웨덴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 있게 되었다고 알리자, 스웨덴에서 일하고 싶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굳이 스웨덴까지 와서 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냐고. 답은 너무 간단했다. 내 취업관에 따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이 스웨덴 기업이라 더욱 좋았다. 나의 삶의 방향성과 굉장히 닮아있는 스위디시함이 듬뿍 묻어있는 곳이니까. 그래서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지만, 즐겁게 일하고 있고 앞으로도 만족도가 높을 예정이다.




스웨덴 유학을 가기 전,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한 후 취업까지의 기간은 1년 남짓이 걸렸었다. 그래서 그 기간이 얼마나 힘든 지 알고 있었고, 그 기간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스웨덴 유학생으로서 문송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전의 취업 준비보다 더욱 절실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취업 준비에 매달렸다. 사실 나는 스웨덴에서 더 치열하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 그 결과에 더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 이 글이 오랜 경력과 다양한 경험을 쌓아오신 분들께는 사회 초년생의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의 이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Cover image 커버 이미지 (Photo: Melker Dahlstrand/imagebank.sweden.se)

매거진의 이전글 스웨덴, 너 변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