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이 땅의 주인.

by 거북이

오늘 저는 약간 늦게 [덕혜옹주]를 관람하러 갔습니다. 원래는 지난 광복절을 맞이해서 보러 갈 계획이었지만 약간 늦춰졌습니다. 그리고 [덕혜옹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은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20C초반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에 지배를 받던 시기는 이미 황실의 권위가 많이 약해진 시기였습니다. 그 결과 황제는 일본이 시키는 대로 하고, 황제의 자식들은 일본에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인질이 되어있었습니다.

이렇게 황제의 권위가 약해진 시기에 조선의 마지막 황제 덕혜옹주는 일본으로 끌려가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나름의 저항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일본군이 제공하는 기모노를 입지 않는다거나, 한글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 처럼, 일본 정권에 의해서 강제로 혼인을 당하고,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사건에도 조선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다루기도 했습니다. 덕혜옹주 어머니의 위독한 건강상태를 빌미로, 일본군은 옹주에게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을 강요합니다. 옹주를 꼭두각시처럼 부리려는 일본군의 더러운 행동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어머니에 대한 마음에 연설을 하기로 한 옹주지만, 그 노동자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손을, 그들의 눈을, 직접 본 순간, 그들의 꼭두각시가 아닌, 조선인들의 희망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들에게 힘없는 조선 황실의 나약함을 사죄하고, 언젠가 그리운 고국의 땅을 밞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줍니다. 이 때 옹주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이 말이 너무나 와닿았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안좋을 지라도, 그 시기는 곧 지나가고 따스한 햇살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슬펐던 부분은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옹주의 모습이었습니다. 해방이 되었으나, 해방된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옹주의 절규는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옹주는 원해서 일본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참하고, 한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우리 정부는 그녀를 거부했습니다. 희망이 되어주지 못한 죄로. 또한 이와 동시에 나라를 더러운 왜놈들에게 팔아넘긴 매국노들을 우리 땅으로 맞이했습니다. 이 땅을 밞으며, 이 땅의 바람을 맞이해야 할 사람들의 외침을 외면한채, 우리는 우리를 팔아넘긴 사람들을 맞이했습니다. 그 장면에서의 옹주의 외침, 아니 절규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올해는 광복 71주년입니다. 비록, 8/15는 지났지만, 달력을 보면서 한 번만...다시 한 번 그 날을 상기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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