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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 앞에 죽음이 보일 때

by 거북이

이 세상 그 누구도 탄생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란 존재가 '나'의 탄생에 관여할 권리는 없다는 말이다. 반면, '나'는 '나'의 죽음에 관여할 권리가 있다. 어둡고 음험하게 들리겠지만, 죽음에 관한 권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상 죽음이라는 존재가 우리 눈 앞에 온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여기 죽음을 눈 앞에 둔 남자 아담에 대한 영화, [50:50]이 있다.


등이 아파서 병원에 간 아담은 갑자기 척추암(원래는 병명이 되게 긴 데 편의상 척추암이라고 부르겠다.)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은 변화를 맞이하게 됬다. 사랑하는 여자친구는 바람났고, 친한 친구는 여자를 꼬시는 데 혈안이 되있고,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간섭은 귀찮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치료사는 아직 박사과정을 밞는 학생이었다. 암이라는 병 앞에 아담은 다양한 심리적 변화를 격게 된다. 그리고 이 변화가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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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아담에게 갑작스런 암의 선고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암에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도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담이 암에 걸린 이후 그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변해있었다. 치료사가 괜찮냐고 거듭 묻고, 아담은 거듭 괜찮다고 말하지만, 대답의 뉘앙스는 이미 짜증 가득이다. 아마 짜증과 차분함이 공존해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암에 걸리고 나름 마음을 추스렸지만, 두려움이란 쉽사리 우리 곁을 떠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이 아담은 같이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과 친해진다. 그러나, 그 친구 중 한명의 갑작스런 죽음은 아담을 다시 두려움의 구덩이로 밀어넣는다. 이 때 아담의 기분이 어땠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작은 사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른데, 죽는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감정을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저 두렵고, 숨고싶고,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포기하고 싶어졌을 것 같다.



영화에서 화가 나는 장면도, 왠지 미소가 지어진 장면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병걸린 남자를 두고 바람핀 여자친구의 뻔뻔함은 정말 화가 났다. 차라리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만나던가. 힘들어 하는 사람의 등에서 칼을 꽂는 듯한 그녀의 행동은 그저 짜증만 났다. 반대로 그런 그녀의 그림에 계란을 던지고 칼을 던지고 불로 태우는 행동은 아주 통쾌했다. 통쾌하다라는 단어 정도로는 표현에 부족함이 있을 정도이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내 뒤통수를 친다면 나도 그가 남긴 물건에 저런 행동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것과는 다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장면도 있었다. 아담이 수술 전날 그의 치료사 캐서린에게 전화하는 장면이 너무 멋있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그가 전화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게 한 없이 부러워서 인지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본 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죽음이, 아니 정확히는 두려움이 사람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키는지 느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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