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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sk Apr 23. 2019

진짜 알아야 할 것

[06] ‘엔지니어’, 그 빼앗긴 이름과 함께 내려놓은 자존심

이 글을 마무리하는 중에 인도 릴라이언스 FPSO를 삼성중공업에서 수주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좋은 소식으로 글을 마무리할 수 있어 기쁘며,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최근 플랜트 업계는 수년간 이어진 수주 가뭄을 벗어나기 위해 그야말로 회사의 사활을 건 수주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양플랜트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마잔(Marzan) 프로젝트, 인도 릴라이언스 FPSO, 호주 바로사(Barossa) FPSO, 나이지리아 봉가(Bonga) 사우스 웨스트 및 자바자바 FPSO, 영국 로즈뱅크 프로젝트(FPSO), 베트남 Block B 해양 가스 생산설비(CPP) 등에서, 그리고 육상플랜트는 해양플랜트와 동시에 진행하는 사우디 아람코 마잔 프로젝트와 알제리 소나트랙의 HM 정유공장 등 중동은 물론 동남아시아, 호주 그리고 중앙아시아 등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중 일부 프로젝트는 이미 입찰이 마감되어, 공식 혹은 비공식으로 최저 입찰자(Lowest Bidder)가 알려져 모두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업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수주가 절실한 때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물론 수주도 중요하겠지만 문제는 수주하더라도 어느 것 하나 만만한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이기고 수주했다는 말은, 발주처(Company) 입장에서는 그만큼 계약자(Contractor)에게 리스크를 넘겼다는 의미이며, 반대로 계약자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훨씬 커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수주가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 EPC 업체들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입찰에 뛰어들고 있을까요? 그리고 다행히도 수주한다면 프로젝트를 예전보다 더 잘할 수는 있는 것일까요? 지난 수년간의 쓰린 경험이 헛되지 않도록 준비는 잘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잠시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할 엔지니어들의 분위기가 어떤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프로젝트의 여건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유행어, '탈조선' 그리고 '탈건'

어느 순간부터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에 '탈 건'이네 '탈 조선'이네 하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이 되어버렸습니다.


2015년 이후 수주 급감과 그동안 수행하던 프로젝트의 적자를 이유로 우리나라 EPC 회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규모 인력 감축에 돌입했고, '비용 절감'이 첫 번째, 아니 유일한 생존 전략인 듯 가차 없이 휘두르는 칼날에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오던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모든 것이 '오직 비용'으로 환산되면서, 경험과 능력의 상징이던 '고 직급'은 곧바로 '고 비용 저 효율'을 의미하는 단어로 만들며 압박하는 가운데, 결국 '떠나야 하는 자'와 '남겨진 자'로 나뉘어 양쪽 모두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떠나는 자'와 함께 역사와 경험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고, '남은 자'역시 떠맡은 일에 힘겨워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필요할 때면 언제든 '보충'할 수 있다는 '보내는 자'의 충만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비용'이라는 잣대를 넘어서지 못하는 순간 자신도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아니 버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평생직장으로서의 기대를 접고 각자도생의 길에 들어서야 하는 '남겨진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마치 '홀로 벌거벗은 채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 바람에 맞서는 것 같았다'라는 어느 분의 표현이, 단지 그 분만의 아픔은 아니었을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설마 하며 애써 외면해 왔던 '회사는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라는 외국 엔지니어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 진리로 체화되면서, 그나마 이 분야를 지켜온 원동력의 하나인 '열정'은 일순간에 '엔지니어의 알량한 자존심'으로 퇴색되어 사전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2017년도 이후부터는 육상 플랜트에서나마 조금씩 수주가 늘면서 그동안 감축하기만 하던 인력을 조금씩 보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직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나마 몇몇 회사는 어느 정도 일감을 확보하며 숨 돌릴 겨를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유가상승에도 불구하고 해양플랜트 시장이 여전히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하면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그리고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 3 회사의 해양플랜트 부문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의 고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수주를 하더라도 이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EPC 프로젝트가 마치 첨단 산업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분야가 넓다 보니 첨단 분야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 엔지니어의 땀과 정성으로 이루어지는 산업입니다. 한번 더 살펴보는 정성, 문제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확연하게 차이 나는 것이 바로 이 분야입니다.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자신이 몸담은 회사와 일에 더는 희망을 품지 않는, 낮을 대로 낮아져 버린 마음으로 '과연 얼마나 일을 잘할 것이며, 그 결과가 얼마나 좋을 것일까?'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약속한 날짜를 지키기 위해 때론 밤을 지새워가며 지키려 했던 엔지니어의 자존심, 회사의 이익을 위해 발주처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는 모습을 더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잃어버린 일에 '열정'을 기대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혹여라도, 사막에 부는 모래바람처럼 영혼 없는 구호 한 마디로 무너져버린 엔지니어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화려한 착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EPC 산업을 지탱해 온 엔지니어의 '열정'이 사라진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한들 얼마나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여라도 '오직 비용'에 '월급 루팡'으로 맞서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면 지나친 기우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대기업과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이 있던데, 이런 마음이 정말 오지랖 넓은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병의 원인을 알아야만 치료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알았다면 다음은 누구의 몫일까요?



'비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비용으로만 환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로젝트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재산'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다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절실한 이유입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 oksk (박성규)

                  (현장, 프로젝트, EPC, 엔지니어링, Site, 해외현장, 사우디, 육상플랜트, 해양플랜트,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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