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엔지니어링 매니지먼트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전에 최근 플랜트 산업의 어려운 현실과 원인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플랜트 산업은 한계에 부딪힌 우리나라의 조선이나 건설 사업에게는 분명 포기할 수 없는 시장입니다. 먼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분명히 새로운 기회가 올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기술과 경험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또한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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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은 “저유가가 지속되는 등 글로벌 경기침체로 힘든 한 해였다. 조선 부문의 반잠수식 시추선 계약이 취소되고, 해양 부문에서 잦은 설계 변경으로 공정이 지연돼 적자가 지속됐다”라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1월 정직원 2만 8000명의 5%가 넘는 과장급 이상 직원 1300명을 희망퇴직을 통해 내보냈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은 작년 11월 ‘전 계열사 긴축경영체제 돌입’을 선언했다. 흑자를 달성할 때까지 전 계열사 사장은 급여 전액, 임원들은 급여의 50%를 반납키로 했다. 사내 행사도 모두 중단했다.
현대중공업의 9분기 연속 적자는 해양플랜트 때문이다. 설계 미숙·저가 수주·공정 지연 등 해양플랜트에서 수조 원의 손실을 냈다...(2016년 2월 5일 자 조선일보)
수 조 적자, 경영 합리화, 수천 명 감원, 채권단 긴급 자금 지원, 해양플랜트 사업 철수 검토…
2014년 한 회사를 필두로 각 사별 수조 원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대형 조선 3사의 대규모 적자를 알리는 뉴스는 조선업계는 물론 국가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고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빅3로 불리는 국내 대형 조선 3사는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렸고, 이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각 사별로 자산이 될 만한 것들을 내다 파는 것은 물론, 명예퇴직 또는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수천 명씩 내 보내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빅3를 비롯한 비교적 규모가 큰 회사들은 그나마 호황기 때 보유한 자산 매각과 인원정리 등 구조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 숨을 돌리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지만, 조선벨트로 불리는 경남 해안을 따라 들어선 많은 중소 조선업체들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도산하거나 법정관리에 몰리면서, 이에 속한 수많은 인원 또한 실직을 당하는 현실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습니다.
한편 육상플랜트 사업을 영위하는 대형 건설회사들 역시 수 조원대에 이르는 중동 발 프로젝트 공사 미 청구 금액이 결산을 통해 손실로 반영되면서 대규모 적자로 이어졌고, 조선업계와 마찬가지로 역시 수많은 인력을 정리하면서도 회사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이것이 최근 수년간 신문을 장식하던, 아니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대한민국 조선과 플랜트 산업의 현실입니다.
뜨거운 사막의 나라 중동을 필두로 온갖 열악한 환경도 마다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세계 플랜트 시장의 강자로 인정받던 건설회사. 세계 조선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면서 명품 선박으로 발주처가 줄을 서도록 만들고, 한 때는 환율에 영향을 주는 바람에 달러 환전 시기까지 조절해야 할 정도로 수출의 선봉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던 대한민국의 조선산업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당시 언론 지상을 뒤덮은 수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에 의하면, 세계 경기 불황과 오일 가격 하락으로 인한 신규 프로젝트 발주 지연 등 외적인 변수와 함께 업체 간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저가 입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특히 해양플랜트의 경우 설계 능력 부족과 수행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대량 수주가 큰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원인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혹독한 원가절감 노력으로 오일 메이저 회사들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세계 경기의 회복과 유가상승과 맞물려 점차 신규 프로젝트 발주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17년도에 들어서면서 선박을 선두로 육상 및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의 계약이 성사되는가 하면 저유가로 몇 년 동안 미루어졌던 프로젝트의 입찰이 다시 재개되고 있는 것을 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지난 4년여 동안 극심했던 수주 가뭄을 이기고 우리 조선과 플랜트 산업을 회복할 기회가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규 발주가 증가한다고 해도 예전의 영화를 다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입니다. 플랜트 산업은 유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인 유가가 현재의 70달러 주변에서는 신규 발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미국의 원유 재고량 변화와 셰일 오일(가스) 채굴 광구 수 변동 만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가를 볼 때 전문가들의 전망이 크게 벗어 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때문에 플랜트 산업을 영위하는 건설회사와 조선회사들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간간히 나오는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경쟁사간 치열한 경쟁은 불 보듯 뻔한데, 예전처럼 적자를 감수한 적자 수주는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시장 가격을 넘어서는 비싼 가격에 수주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부 가격경쟁력 확보가 관건이지만 이 또한 이미 마른 수건을 짤 정도로 경비를 절감한 상태에서 더 이상 추가 절감은 결코 쉽지도 않지만 단순히 절감 만으로 경쟁력을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개의 해양플랜트 수주전에서 중국과 싱가포르 회사에 고배를 마신 것을 보면서 우리 조선업계가 받은 충격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필자가 직접 참여한 프로젝트도 있었기에 그 아픔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이나 품질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나 결국 비용에서 밀렸기 때문입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수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금액으로 계약이 체결된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가 입찰이 가능한 것은 대부분 동남아의 저임금 근로자를 사용해서 인건비를 대폭 줄였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과연 플랜트 산업이 저임금 근로자만으로 가능한 산업인지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합니다. 2~3년 뒤면 결과를 알 수 있겠지요. 세계의 플랜트 산업이 모두 주시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선과 플랜트 산업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선박의 경우 유가의 영향이 크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세계 경기와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경기가 어느 정도만 회복된다면 자연스레 발주가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아직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기술력을 앞세워 빠른 기간 내에 옛 실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봐도 크게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2017년도에 들어서면서 선박 발주량이 크게 늘었고 최근까지 우리나라 조선회사들의 수주 실적이 가파르게 오르는 것을 볼 때 회복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플랜트 산업은 사정이 매우 다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최근 유가 회복에 따라 일부 발주가 재개되고 있지만, 조선사업처럼 세계 일류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중동이나 북해 등 플랜트가 설치되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까다로운 요구사항과 설계부터 시공, 설치 및 시운전까지 각 공정의 복잡성 그리고 모든 과정을 일일이 발주처의 승인을 받아야만 진행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복잡한 업무 절차는 프로젝트 진행을 매우 어렵게 만듭니다. 여담이지만 우리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서는 이토록 번거로운 과정을 지키는 것 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현장이 대부분 해외에 위치하는데, 육상플랜트의 경우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이고, 해양플랜트 또한 중동이나 동남아 바다 한가운데로 아주 덥거나 아주 추운, 매우 열악한 환경이어서 인적-물적 동원이나 관리하는 것 또한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을 감안하면 신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수주를 하더라도 수익을 내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은 결코 만만하게 볼 문제가 아님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시각을 넓혀보면, 이 어려움은 단지 우리나라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어느 회사나 동일하게 당면하는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경쟁사들도 우리와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까지 제가 입찰에 참여한 동남아 프로젝트를 보면, 발주처에서 입찰자격을 단지 몇 개의 회사로 제한하였는데, 조건이 엔지니어링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 엔지니어링 회사에 용역을 주고 함께 수행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회사의 엔지니어링 실력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프로젝트의 엔지니어링 업무를 수주하기 위해 전 세계의 유명 엔지니어링 회사가 총출동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협업을 요청하였습니다. 세계적인 회사이다 보니 업무 수행 능력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우리의 요구 사항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프로젝트 비용 또한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제시하였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수익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사정상 깊은 내용은 여기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회사라 할 지라도 그만큼 이 시장이 어렵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즉, 지금의 어려움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플랜트 업계 누구나 동일하게 겪는 어려움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세계 경기회복과 맞물려 플랜트 산업 또한 조만간 기회가 올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부족만 탓하며 주저앉아 있기보다는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지금부터라도 미래를 잘 준비한다면 앞으로 반드시 기회가 올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지난 20여 년 동안 플랜트 프로젝트를 수행한 소중한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가까운 동남아시아를 넘어 중동, 아프리카는 물론 중남미와 북해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쌓아온 수많은 프로젝트 수행 경험이 있고, 플랜트 산업에 뛰어든 초기부터 그야말로 미천한 실력이지만 열정 하나로 도전하며 몸으로 체득한 산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 어느 나라든 우리가 들어가지 않은 지역이 없을 정도로 전 세계를 누비며 경험한 지역 특수성에 대한 감각은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자신들의 지역에서만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다른 나라의 경쟁사들이 결코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우리만의 귀중한 자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귀중한 자산을 발판 삼아 우리의 역량을 재정비하고 힘을 모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플랜트 산업 역시 회복은 물론 한 단계 도약하는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새롭게 다가올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또한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회'는 그 누구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 ok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