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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sk Aug 10. 2018

03.  뼈 아픈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실수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합니다.

앞서 전문가들이 지적한 ‘수행능력을 넘어선 무리한 수주’라는 비판에 대해 플랜트 산업계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다소 억울하면서도 상당 부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수행능력 부족’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를 고민해봅니다.



수행능력 부족...

플랜트 산업은 개별 프로젝트 발주 금액이 적게는 수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매우 큰 사업입니다.

또한, 프로젝트를 수주하더라도 모든 것을 한 회사가 독단으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관련 업체들이 참여하게 되고 자연히 이해관계가 매우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업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적정한 이윤의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수주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소위 말하는 ‘대박’은커녕 엄청난 적자가 발생하기 쉬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정 가격의 수주도 매우 중요하지만, 수주 후에도 수행 전략을 철저히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것 또한 두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수행전략이란, 간략히 말해서 프로젝트 특성에 따라 진행 방향을 정하고 자원(Resource)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투입함으로써 프로젝트를 주어진 예산(Cost) 내에서, 안전(Safety)하고 일정(Schedule)에 맞추어 품질(Quality)이 보장된, 다시 말해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계획(Plan)을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원은 크게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인적자원은 프로젝트를 수행할 사람, 즉 인력을 의미하고 물적 자원은 인력을 도울 시설과 장비 등을 의미합니다. 시설이나 장비의 경우, 우리나라 회사들의 경우 대부분의 대형 크레인과 독 등 시설과 장비를 직접 운영하고 있고, 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언제든 투입할 수 있는 산업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분명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 특히 플랜트 산업에서의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이 중요한 ‘사람’, 즉 ‘인력’을 제대로 투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사람'에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엔지니어의 부족, 엔지니어링 자립 실패

플랜트 프로젝트는 앞서 언급한 대로 매우 까다로운 특성으로 인해 일반 건설이나 제조업에 비해 더욱 숙련된 인력들이 요구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숙련된 인력’이라 함은 단순히 기술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플랜트 프로젝트를 수행해본 경험이 있는 자’를 말하는데, 쉽게 말해 학교에서 배운 이론 위에 실무경험을 더한 이론과 실기를 갖춘 ‘전문가’를 의미합니다. 발주처 특성, 국가와 지역 특성, 각종 까다로운 프로젝트 요구사항 등 프로젝트마다 다른 수많은 변수들과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실무를 통해 직접 부딪히며 얻은 경험은 엔지니어 개인의 기술을 향상하여 전문가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특히 ‘사람’과 ‘프로젝트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은 그야말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무형의 자산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플랜트 산업 현장에는 ‘전문가’, 특히 엔지니어링 분야에 전문가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1970년대 중동 공사를 시작으로 40여 년 이상 다양한 플랜트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지만, 하드웨어적인 시공에 치중한 결과로 시공 전문가는 비교적 많이 확보하였으나, 설계, 자재구매 등 소프트웨어인 엔지니어링 경험을 축적할 기회나 시간이 시공에 비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육상플랜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일괄도급방식(EPC, Turn-key)에 도전하였고, 비록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이를 바탕으로 이제는 엔지니어링을 직접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해양플랜트는 EPC 프로젝트에 뛰어든 지 불과 1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를 양성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플랜트 산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난 2010년경부터 우리나라 회사들이 프로젝트를 대량으로 수주를 하게 되면서 전문가는 물론 일반 엔지니어조차 부족하게 되자 육상플랜트를 수행하는 건설회사와 엔지니어링 회사는 물론 해양플랜트를 주로 수행하는 조선-중공업회사 간에 치열한 인력 쟁탈전을 벌이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모 엔지니어링 회사는 경력자 엔지니어들을 대규모로 채용하면서 업계 내에서 ‘엔지니어 블랙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전문가는 고사하고 기술이 부족한 인력을 대거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 마저도 엔지니어 한 명이 두세 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당연시될 정도로 절대 인력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필자가 다니던 회사는 '엔지니어링 자립 없이 플랜트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엔지니어들의 능력 향상을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이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인력 부족 문제는 당장 눈앞에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기도 급급한 상태에서 '엔지니어링 자립'은 공허한 슬로건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엔지니어의 부족은 엔지니어링 공정 지연과 함께 품질 저하를 가져왔고 후속 공정인 자재구매와 시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시공 등 후속 공정에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으나 후속 공정 또한 ‘전문가’와 적정 인력 부족으로 만회는커녕 자신들 고유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여력조차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리스크 관리의 부재, 매니지먼트 실패

전문가 즉 엔지니어의 부족이 기술적인 문제였다면, 매니지먼트의 부족은 더욱 중요한 관리 부재로 이어져 프로젝트 사전관리의 핵심인 리스크 관리를 놓쳐버렸습니다.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이고 이를 이끌어 가는 것이 매니지먼트인데 역시 이 분야에도 전문가가 없다 보니 아무 경험도 없는 관리자를 단순히 직급이 높다는 이유 만으로 리스크 매니저라는 이름만 붙여 임무를 맡겼으니 솔직히 리스크 예측이나 사전 대응은커녕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도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매니지먼트 실패는 결국 프로젝트마다 손실을 가져왔고, 각각의 손실들이 모여 결국 오늘의 사태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능력 부족’의 주요 원인은 사람, 즉 ‘전문가’와 ‘적정인력’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눈 앞에 보이는 대량 수주로 인해 불과 수년 후에  벌어질 일들을 보지 못하고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새로운 먹거리 산업이라는 화려함에 취해서 우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만일 조금만 생각이 있었다면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수행능력 부족’을 단지 인력부족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계 시황 변화나 발주처 사정 등 많은 외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적인 변수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력과 리스크 관리능력 부족 문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재 정비하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해양플랜트 구조물 설치작업 (미얀마 해상)


매니지먼트 양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

인력 양성과 관리 능력 향상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상당 부분 보완이 가능한 분야입니다. 이제라도 각 분야별 전문가를 제대로 양성해야만 합니다. 특히 프로젝트 매니저나 엔지니어링 매니저와 같이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리딩 할 수 있는 매니지먼트가 필요합니다. 기술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양성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대학 졸업 후 몇 년간의 실무를 통해 비교적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매니지먼트는 기술력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수십 년 경험으로 무장된 쟁쟁한 발주처 매니지먼트를 상대하려면 기술력과 함께 실무를 통해 얻은 경험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오일메이저나 선진 엔지니어링 회사들은 매니지먼트에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합니다. 게다가 본사의 지원도 아끼지 않습니다. 매니지먼트의 능력에 따라 프로젝트 진행방향이 결정되고 비용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매니지먼트 조직이나 방식을 보면 부럽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수행능력 부족’을 단지 인력부족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계 시황 변화나 발주처 사정 등 많은 외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적인 변수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력과 리스크 관리능력 부족 문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재 정비하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인력 문제는 결국 장기적인 안목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의 확보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 만큼 회사의 미래를 내다보고 최소 10여 년 이상 장기적으로 투자해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 수십 년을 함께하다 자리를 떠난 경험자들의 빈자리를 보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이제 세계적인 회사들의 매니지먼트를 통해서 매니지먼트가 왜 중요한지,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매니지먼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알아보겠습니다.


인식의 변화만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 o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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