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부대

[03] 외국인 근로자의 하루

by oksk
인도, 필리핀, 파키스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태국 …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국적입니다. 대략 10여 개 나라의 근로자들이 엔지니어로, 현장 작업자로 그리고 운전기사 등으로 다양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발주처(Client)와 계약자(Contractor) 그룹에 속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 우리는 그들을 '삼국인'으로 퉁쳐서 부릅니다. 때로는 Global Staff 혹은 IE(International Employee)로, 어느 현장이든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하지만, 자신들의 국적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그때그때 다르게 불리는 외인부대의 하루에 들어가 봅니다.




5시 정각.


부릉... 부릉... 부르르르릉…

아직 캄캄한 새벽이지만 수백 명의 근로자들을 태우기 위해 줄지어 대기 중인 수십 대의 버스에서 나오는 우렁찬 엔진소리가 새벽을 깨웁니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서둘러 버스에 오르지만, 현장으로 이동하는 10여 분 간의 짧은 시간은 또다시 꿀 맛 같은 단잠을 제공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5시 반.


‘국민체조~ 시~작. 하나 둘 셋 넷… ’.

체조를 알리는 우렁찬 목소리의 스피커 소리가 울리면 한국인이나 외국인 근로자 할 것 없이 모두 어우러져 체조를 시작합니다. 평소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던 체조지만, 스피커 구령 소리만 들으면 자동으로 몸이 따라가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분명 한국어 구령임에도 외국인들 모두 자연스럽게 따라 한다는 것입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동작이지만…


힘찬 구령에 |따라 신세계 체조~


체조를 마치면 팀별로 모여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업무와 주요 공지사항들을 공유하는 툴박스 미팅(Tool Box Meeting)을 한 후 본격적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하루 업무를 시작하기 전 툴박스 미팅



멀리 탱크 너머로 아침 해가 둥실 떠오르며 현장에 빛을 선사합니다.


떠오르는 태양




근로자들이 하루 업무를 위한 연장을 챙겨서 바쁘게 각자의 자리로 움직이면서 아침 햇살과 함께 현장이 점차 활기를 찾아갑니다.


아침을 맞는 현장



'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케이블 연결작업을 위해 모듈 위에 올라온 근로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어 조심스레 물었더니 선뜻 좋다고 합니다. 포즈를 취하라고 하니 '옛썰~' 하면서 얼른 자세를 취합니다. 마치 모델처럼 살짝 웃으며 자세를 잡는 순수함이 좋습니다.


근로자의 미소



일과는 오후 6시에 마치는 것이 기본이지만 밀린 작업을 만회하기 위해 8시까지 잔업을 경우가 많습니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해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면 10시가 넘다 보니 잠시 쉴 틈도 없이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게 됩니다.

하루 종일 땀에 젖은 몸을 따뜻한 물로 씻으며 잠시나마 피로를 풀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이렇게 하루가 넘어갑니다.





야간 근무가 없는 날은 일찍 저녁을 마치고 각자 휴식을 취하는데,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마치 어렸을 적이 생각납니다. 어른들은 동네 큰 바위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주변에서 술래잡기하며 뛰어놀던 시절. 그때 그 모습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케이... 굿... 굿... 노~프라블럼’

한 편에서 화상통화를 하는 얼굴은 저마다 웃음이 가득합니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사랑하는 부인이나 자녀 아니면 부모님이겠지요.


손까지 흔들어가며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 현장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 소리 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멀리 사우디까지 와서 돈을 버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것일 텐데, 그 가족에게 힘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라고 할까 아니면 무게라고 할까...


예전에 비하면 메신저도 있고 화상통화라는 신 기술이 있어 참 좋습니다. 모든 기술이 이렇게 생활을 이롭게하는데 사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농구 한게임


한 편에서는 비교적 젊은 층들이 모여 농구시합을 하기도 합 니다.

야간에도 경기할 수있도록 조명 시설이 되어있는데 조금 어둡긴 하지만 무리 없이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온종일 고된 일을 하고도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합니다. 휴일인 금요일에는 가끔 국가별로 시합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어느 편이 이기는지는 잘 모르지만 역시 필리핀이 잘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발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뱅크 트립(Bank Trip)

이 현장에는 '뱅크 트립'이라는 조금 특이한 행사가 있습니다.

한 달간 땀 흘려서 받은 급여를 각자 고향으로, 가족에게로 보내기 위해 은행으로 향하는 날입니다. 은행이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아예 날을 잡아 회사에서 버스를 제공하는데, 은행으로 향하는 그들의 얼굴에 묻어난 미소를 보면 가슴이 찡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이 돈으로 행복하게 살 것을 생각하며, 누군가에게는 가장으로서 누군가에게는 자식이나 형제로서 가슴 뿌듯함을 안고 은행으로 향할 것이 분명할 테니까요.




1970년대 말.

중동 건설붐이 한창일때 돈 벌겠다며 중동으로 나갔던 선배님들이 생각납니다.

워크맨이나 일제 TV 등 양손이 부족할 정도로 선물 꾸러미를 가득 들고 돌아오던 친구 형님이 그당시 얼마나 부러웠던지…


답장을 받으려면 두어 달씩 걸리지만, 그나마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편지를 손으로 꾹꾹 눌러쓰던 시절.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을 것이 분명한 현장에서 휴가라는 개념조차 없이 거의 일 년 내내 일만 하던 시간. '삼국인'으로 불리는 이 근로자들의 모습이 바로 그때 우리 선배님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가볍게 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는 '삼국인'에서 'Contractor'가 되어있습니다. 불과 3~4십 년만에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저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외국인 근로자 모두 파이팅입니다.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 oksk (박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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