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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sk Dec 05. 2018

프로젝트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

[02] 우리는 EPC 프로젝트를 수행할 자세가 되어 있을까?

사례 1

인프라가 눈부신 활약을 하기보다는 무겁게 제자리를 지켜주기를 기대한다. 이는 인프라가 절대 망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와 고장에 대비해서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는 경험 많은 사람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출처 : 기술의 무거움에 대하여)


지난 11월 24일 일어난 KT 아현 국사 화재 사고 이후 한겨레 신문 칼럼으로, 통신망은 한 나라의 핏줄과도 같은 중요한 인프라임에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입니다.


한순간 끊어진 통신망으로 인해 많은 가입자들이 피해를 입었고, 일부는 완전하게 복구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소방시설만 제대로 갖추었다면 그나마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거나 또한 중요한 통신망임에도 백업설비를 갖추지 않아서 많은 통신 가입자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전문가의 입을 빌린 언론의 지적입니다. 게다가 복구 작업에 투입된 인력도 전원 외주업체 직원이며 KT에는 투입할 정직원이 없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2년 민영화 이후 꾸준히 인력 감축을 진행한 결과라고 합니다.



사례 2

건설 현장은 안전 책임자까지도 비정규직 직원으로 채우는 현실이다. 포스코건설에서만 올해 상반기 5건의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7월 해당 건설사 본사와 시공 현장 24곳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한 결과, 안전관리자 315명 중 259명(82.2%)이 비정규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100대 건설사의 정규직 안전관리자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출처:서울신문)


지난 10월 초, 고양시 저유소 화재 사건이 일어나 후 언론에 실린 기사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풍등 하나로 인해 국가 기간시설인 저유소에 불이 나서 440만 리터를 태운 사고입니다. 당시 근무자는 4명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화재 감지 센서와 소화장치 고장 등 기본적인 시설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불이 난 것조차 즉시 감지하지 못한 것은 물론 초기부터 진화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한 송유관 공사가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880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했지만 2001년 민영화되면서 투자 금액이 반 토막이 났다고 합니다.




위 두 사례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사실 KT나 저유소 모두 법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에서 규정에도 없는 소방시설을 갖추기 위해 수억 원씩 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불이 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를 지적할 수도 없었을 테고요.


단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설투자와 기술 인력을 줄였을 뿐입니다. 설비투자는 간신히 법이나 규정을 지키는 정도만 유지하고, 외주화로 마치 장비가 고장 나면 부품을 사서 교체하듯 인력 또한 외주로 운영하면 고정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수원 원 아끼려다가 수십 아니 수백 배의 손해를 입게 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즉, 두 사건 모두 비용이 가장 우선이었기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비용이 우선인 환경에서 '안전에 지나침은 없다'라는 슬로건은, 매일 아침 외치는 힘찬 구호와 건물 외벽을 치장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뿐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것입니다. 시설의 안전성이나 사용자의 편의성이 기업의 이익보다 우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효율성과 수익성, 다시 말해 '돈'이 '선'의 기준이 된 시대입니다.



이 글을 작성한 뒤에 곧바로 고양시 온수관 파열사건과 강릉선 KTX 탈선 사고가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역시 '외주화'에서 비롯된 '인재(人災)'라는 공통된 지적입니다. 모든 것이 비용으로 대체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러다가 엔지니어 정신까지 잃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염려되는 요즘입니다.




 


이제 플랜트 EPC 프로젝트를 보겠습니다.

EPC 프로젝트는 최소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사업입니다. 즉, 발주처 입장에서는 최소 20년 이상을 가동하며 투입한 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중요한 자산인 것입니다.


물론 발주처 또한 비용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경제성'을 중요시하는 것이 그들의 정서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돈'과 함께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생산된 가스를 발전소의 원료로 사용하여 시민들의 밤을 밝혀주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하면, 원유를 판매한 돈으로 국민의 가난을 해결하거나 국가 산업의 발전을 이루는데 요긴하게 사용해야 하는 절박한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또한 완공된 플랜트는, 누군가에게는 바다 한가운데 혹은 사막 한가운데 거주하며 가정의 행복을 유지해가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할 수 없기에 단지 경제성으로만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설비를 대하는 Contractor인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우리는, 실제로 플랜트를 설계하고 장비를 사서 설치와 시운전까지 직접 수행하는 Contractor인 우리는, 발주처만큼 프로젝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들을 파트너로 여기고 협력하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나요? 아니면 나와는 상관없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어려움에 대한 원인은 이미 많은 전문가와 언론들이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들은 엄연히 외부인일 뿐이며, 바깥에서 보는 플랜트 산업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그 지적이 맞다 그렇지 않다를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각이 아닌 실제 이 업계에 종사하는 우리의 눈으로 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들이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스스로 변해야만 미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주처가 진정으로 바라는 Contractor의 모습으로 프로젝트에 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발주처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프로젝트를 잘 수행해서 발주처가 만족하는 플랜트를 완성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든 수주하고 보겠다는 신념으로 가득한 입찰 과정.

수익성은 모르겠고, 다른 회사의 목에 넘어가는 프로젝트까지 기어이 빼내서 내 일감으로 만들어야만 자존심이 세워지고 능력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 업체들의 뜨거운 열정.

적절한 조직과 적정한 인원으로 프로젝트를 원가에 맞추어 수행하기보다는, 적자라는 이유로 늘 최소한의 투입으로 버티다가 결국 막판에야 인력과 물량을 대거 투입하면서 회사의 저력이라고 여기는 자부심.

외주 작업에서 발생한 문제를 직영 인원들이 뒤처리 해주면서  비용  절감이라는 투철한 봉사 정신    

야근과 주말 근무로 피곤이 일상인 엔지니어들에게, 프로젝트를 위해서 그리고 어려운 회사를 위해서라는 한마디로 넘기는 충성심.

입찰 당시 제출된 Key Personnel의 CV(Curriculum Vitae)를 보고 기대했던, 탁월한 능력의 매니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롭게 등장하는 슈퍼맨.

계약서 이해는 엔지니어의 몫이고, 결정은 경영자의 몫이기에 대화가 필요없는 우편배달부 매니저.

문제를 지적하면 계약서를 읽어보지 않고도 Change Order라고 설명부터 해주는 친절함...


한편 우리 내부의 목소리도 상상해 보겠습니다.


기술력 향상을 위한 창의성, 최적 설계를 통한 원가 절감, 시공성을 고려한 설계, 협력과 단합을 넘어서 즐겁고 행복한 회사 생활까지, 이 모든 것을 '훈시' 한 마디로 이루어내는 탁월한 경영 회의.

기술력 부족, 일정 지연, 문제점, 부서 간의 벽, 비협조 등으로 스트레스 충만한 프로젝트 구성원을 '우리가 남이가' 열정 가득한 구호 한 마디로 평정하는 리더.

저임금을 무기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과 싱가포르 업체를 이기기 위해서 오직 인력 감축 한 길에만 몰두하는 놀라운 집중력.

눈에 보이는 시스템 투자 비용은 엔지니어의 시간으로 대체하는 순발력.

부족한 인력은 개인 능력의 120%를 부여하고 엔지니어 간 고과 경쟁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창의력 충만한 관리능력.

업체의 설계와 제작 능력을 '금액' 이라는 한 단어로 평준화시켜, 초 저가 업체(Lowest Vendor)를 선정함으로써 비용 절감을 달성하는 협상 능력.

프로젝트마다 반복되는 악성 문제도 보고서 한 장으로 누구도 책임질 필요 없도록 마무리하는 보고 능력.

도면 이해 없이도 시공 하는 용감함과 문제만 생기면 엔지어를 불러대는 담대함

그리고 마지막 신의 한 수, 모든 것은 설계로 시작해서 설계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모든 프로젝트 수행자의 신실한 믿음까지 더해진 우리나라 플랜트 업계의 인식.

 


상상이 조금 지나친 것일까요?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고 과연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10년 전이나 5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매년 시무식 때마다 환골탈태의 각오를 다졌지만 미래의 승자가 될 준비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중장기 전략은 실체가 희미합니다. 상상력이 미치지 않는, 저 너머까지 꿈을 꾸려하지 않습니다.  그 꿈을 실행할 계획은 디테일하지 않습니다. ‘Next me’ 없이 미래는 없다고 그렇게 외쳐도 메아리가 없습니다.

얼마 전 시중에 화제가 되었던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퇴임사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회장께서 퇴임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물론 본인이 20년만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10년 전이나 5년 전이나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과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플랜트 업계의 모습은 어떤가요? 

10년 전이나 5년 전과 여전히 변함없는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역사에서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만일 우리가 앞서 돌아본 모습과 반대로 움직였다면 과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 oksk (박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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