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 도시락에 반찬은 4가지, 심지어 도시락 주인공 격인 계란과 햄을 동시에 넣는 정성 가득 도시락 ⓒ 이현희
엄마의 도시락 하면 보통 유년 시절, 최대 초등학교 시절까지 쌌던 소풍용 도시락이 떠오른다. 김밥이나 주먹밥, 유부초밥 등 어린아이도 한입에 먹기 편하고, 흘리지 않을 수 있는. 대체로 식사라기보다는 핑거 푸드의 느낌에 가깝다.
엄마의 도시락은 늘 양이 많다. '밥이 모자랄까?' '반찬이 모자랄까?' 하다가 둘 다 많아진다. ⓒ 이현희
나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 우리 엄마 도시락은 가득 찬 흰밥과 반찬 서너 가지, 아주 정직한 백반 차림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소풍 가는 초등학생한테 백반을 들려 보낸 건 아니다. 나도 그땐 김밥 먹었다.
엄마표 백반 도시락의 단골 손님이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다. 우리 지역은 뺑뺑이가 아니라 성적에 맞는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했다. 나는 나름대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였다는 곳에서도, 전교권에서 노는 아이들과 친구가 됐다. 제일 친한 친구는 차석 입학생이었다.
그 학교의 1학년들은 대대로 별관을 썼고, 별관부터 급식실은 왕복 10분이나 걸렸다. 게다가 1학년의 배식 순서는 마지막, 식사 시간 시작 후 30분부터였다. 그러니 늘 석식 먹고 나면 소화도 못 시킨 채로 바로 야간자율학습을 시작해야 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조금이나마 숨을 돌리는 시간. 그 식사 시간 몇 분이 아쉬워 친구들은 학기 초부터 석식을 신청하지 말고, 도시락을 싸 오자고 약속했다. 그때는 다들 단단하지 못하다. 친구들이 하는 건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나만 빠지면 꼭 따돌림 비슷한 것이라도 되는 느낌. 나는 친구에게 정을 많이 주는 아이라 특히 더 그랬다. 그래서 나도 흔쾌히 좋다고 엄마에게 도시락 주문을 넣었다.
2단 도시락에 반찬은 4가지, 심지어 도시락 주인공 격인 계란과 소세지를 동시에 넣는 정성 가득 도시락 ⓒ 이현희
다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지만, 내 도시락은 특별히 온도부터 달랐다. 엄마가 저녁 6시 넘어 아빠와 하던 바베큐 집으로 출근하던 시절, 학교가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던 시절이었다. 엄마의 귀한 휴식 시간이었을 내 석식 시간에 엄마는 방금 지은 밥으로 도시락을 싸서 교문 앞까지 배달했다. 보온 도시락이 아닌데도 내 도시락은 늘 따뜻했다. 열일곱 살 딸은 따뜻한 도시락보다 엄마 얼굴 한 번 더 보는 게 그렇게 반가웠지.
그렇게 따뜻한 도시락을 먹고 자란 나는 취직하고도 회사에서 점심값을 주지 않아 엄마의 도시락 신세를 계속 졌다. 다음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불합리한 고용 조건은 나 혼자가 아닌, 엄마와 같이 겪은 셈이다. 지금 회사도 식대를 안 주는 꼼수를 부려 29년째 도시락 단골 손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지금도 "현희 네가 다음에는 꼭 점심값을 주는 회사로 갔으면 좋겠어. 다른 조건은 보지 마, 오직 점심값만 봐!"
그러다가도 엄마는 도시락으로 엄마의 존재를 증명하고 나선다. 얼마 전 주말 브런치로 엄마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는데, 일주일 중 두 번은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내가 너무 맛있게 먹고 있자 -
- 엄마 : "이제 김치볶음밥 지겹지 않니? 도시락 단골 메뉴잖아."
- 현희 : "아니 나는 매일 먹어도 좋은데? 회사 사람들도 부러워해. 다들 혼자 살거든."
- 엄마 : "그래? 그럼 엄마가 그 사람들 도시락도 한번 싸줄까? 새벽에 일어나서 밥 짓고 하면 되지, 그 까짓것."
웃어야 할지 모를, 백 퍼센트 진담을 건네온다.
엄마의 더 자세한 도시락 추천 반찬
01 훈제 계란 장조림
: 딸이 아침 대용으로 사둔 훈제 계란이 남으면 장조림을 만든다. 이미 익었고 간도 되어 있어 살짝만 졸이면 된다.
02 오이고추 쌈장 무침
03 곰취, 청양고추, 대파 등 각종 장아찌
: 장아찌는 맛이 쉽게 변하지 않아 늘 도시락 반찬 칸 한쪽을 차지한다.
04 계란말이
05 마트표 천원 마늘햄 또는 소세지
: 밥 칸에 넣어 밥을 데울 때 함께 데우면 프라이팬에 굽지 않아도 구운 햄을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