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오늘은 어떤 삶을 지우게 될까?’
노부부가 살던 한 아파트에 도착해서 의뢰인에게 전화했다. 의뢰인은 노부부의 근처에 살고 있어서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와서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현관을 들어서자 답답하게 정체된 공기가 주인 대신 인사를 건넨다. 거실의 통유리를 넘어 들어오는 햇살은 고자질하듯 집안 곳곳에 쌓여 있는 먼지를 비춘다. 내 눈동자는 상하,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며 본능적으로 집안 곳곳을 스캔한다. 다행이다. 오늘은 그나마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다.
“안녕하세요! 저희 시부모님이 살던 곳이에요. 두 분이 건강이 악화가 되어서 요양원으로 급하게 가셨어요. 병세가 상당히 나빠서 다시 집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집을 정리하려고요. 여기 있는 짐들 모두 폐기해주세요. 가져가실 만한 것은 가져가도 괜찮고요.”
“귀중품이나 필요한 물건을 다 챙기신 거죠?”
“네!”
나는 의뢰인과 짧은 대화를 마무리하고 일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할 말이 있는 듯 뒤에서 머뭇거리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마지막 말을 꺼냈다.
“… 혹시 여성용 검정 가방이 나오면 챙겨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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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의 마지막 부탁을 새기며 묵묵히 일을 시작한다. 의뢰인이 노부부에 대해 전한 짧은 한마디와 달리 집안 곳곳에는 노부부의 삶을 대변하는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 흔적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못다 전해진 노부부의 삶을 숨바꼭질하듯 찾아갈 시간이다.
안방에는 유난히 크고 화려한 돌침대가 이 집과 어울리지 않게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겨울 노부부는 집을 떠난 것일까? 두툼한 수면 바지가 넓은 돌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리고 마치 옷장은 도둑이 물건을 훔치고 지나간 흔적같이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있다. 아마 가족들이 노부부의 귀중품이나 중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흔적일 것이다. 분주했던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중요한 물건은 없었는지 빼곡한 옷장에는 비워진 흔적이 없다. 과연 남은 자들에게 귀중하고 중요한 물건은 무엇일까?
큰 비닐을 가져와 옷장의 물건을 하나씩 담는다. 꺼내 보지도 않은 채 상자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손수건, 스카프, 넥타이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다. 젊은 시절 노부부에게 누군가가 전한 감사한 마음을 채 열어보지도 못했다. 침대와 옷장 사이 작은 공간에 한참 눈길이 머무른다. 비좁은 공간을 비집고 놓인 작은 탁자 앞에는 도톰한 방석이 놓여있다. 금방 누군가 앉아서 불경을 외던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것 같이 온기가 느껴진다. 매일 노부부는 병약한 상태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기도를 했을까? 유난히 탁자와 방석을 치우는 손길이 무겁고 느리다. 그 정성이 오랫동안 남아있길 노부부처럼 기도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주방에 있는 식탁 위에는 음식 대신 다양한 종류의 약이 널브러져 있다. 이 작은 약에 의지하며 하루를 살아냈을 것을 생각하니 쉽게 치울 수가 없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낡은 냄비와 그릇이 노부부를 꼭 닮은 느낌이다. 굳게 닫힌 냉장고를 열어본다. 오랫동안 열지 않아서 그런지 냉기가 더욱 차고 거칠다. 그 냉기 덕분에 냉장고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이 느껴진다. 냉장고는 많은 음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채우는 것은 어리석음과 욕심이 아니라 삶에 대한 더 간절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간절한 마음을 속절없이 꺼내어 비닐에 담아낸다.
거실에는 부분 부분 가죽이 벗겨진 오래된 소파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 옆에는 이 집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은 세련된 안마 의자가 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노부부가 이 안마 의자에서 잠시라도 위로받고 편히 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거실 창가에는 돌본 지 오래되어 힘없이 잎사귀를 떨군 채 죽어가는 큼직한 화분이 두 개가 놓여있다. 고층 아파트촌임에도 햇살을 가득 머금은 호사스러운 환경이지만, 사랑과 관심이 없는 곳에서는 식물조차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다.
남은 방 두 개에는 더욱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싸늘하다. 한 곳에는 미처 풀지 못한 짐들이 상자에 담겨서 차곡차곡 쌓여있고, 다른 방에는 큰 책장에 더 이상 펼쳐보지 않은 책과 다양한 상패가 보관되어 있다. 앨범에는 그들이 보낸 세월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고, 다양한 상패는 그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삶을 이끌어왔는지 말해준다. 두 아이를 정성껏 키우며 애쓰며 살아왔을 삶이 희미하게 보인다. 노부부의 삶이자 내 부모의 삶이자 내 삶이 묘하게 겹친다. 결코 특별하지 않지만 가치 있고 귀중한 삶임에 틀림없다. 나는 늘 그들의 삶을 들추며 살펴보다가 결국은 나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
정리한 짐은 사다리차로 하나씩 내려졌고, 폐기물이 되어서 트럭에 하나씩 실린다. 한 사람의 인생이 무참히 부서져서 내팽개쳐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무겁다. 자주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수 있다. 의뢰인에게 작업이 완료되었음을 전했고, 의뢰인은 익숙한 물건이 낯선 폐기물이 되는 과정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단란하게 찍은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 몇 개는 차마 부수지 못하고 의뢰인에게 보여주며 의사를 물었다.
“폐기해주세요..”
오히려 의뢰인은 담담하다. 로봇 같다.
의뢰인과 함께 다시 집을 방문했다. 처음 마주한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는 사라졌고, 노부부의 흔적은 깔끔하게 지워졌다. 한평생의 삶을 지우기에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의뢰인은 수고했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잠시 머뭇거린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머뭇거림이 스친다.
“저기.. 혹시.. 검정 가방은 없었죠?”
“네,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합니다.”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짐을 정리하고 폐기물을 트럭에 싣고나니 날이 저물고 있다. 어떤 삶이든 쉽고 가벼운 것은 없는 것이다. 정성껏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무게만큼 그 흔적을 치우는 일은 당연히 고되고 힘들어야 억울하지 않지. 한 사람의 삶을 가득 실은 트럭이 해가 뉘엿뉘엿 지는 도로를 달린다. 참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나 또한 주어진 내 삶을 정성껏 잘 살았는지 온몸이 쑤시고 많은 생각이 스친다.
‘그나저나 그 검정 가방의 정체는 무엇이기에 그렇게 애타게 찾는 걸까?’
얄궂게 나 또한 검정 가방을 계속 찾던 의뢰인의 물음이 머리 속에 맴돈다.
당신이 서둘러 경험한 죽음을 향해 나 역시 잠시도 지체하지 못하고 한 걸음씩 다가설 뿐입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그렇게 예외 없이 죽음을 고스란히 맞이합니다. 이곳을 치우며 우연히 알게 된 당신의 이름과 출신학교, 직장, 생년월일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그것은 당신에 대한 어떤 진실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치우면서 한 가지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이곳에 남은 자들의 마음입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