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침묵의 봄>을 읽고

by 눈부신 일상
“만일 다윈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적자생존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인상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놀랄 것이다. 화학 방제가 대세인 상황에서 약한 곤충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곤충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많은 지역에서 가장 강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침묵의 봄> 중에서



항생제란 세균의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약물로 세균 감염증에 대한 치료제이다. 항생제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병원균이 항생제에 스스로 저항하는 힘을 기르게 되어 점점 더 내성이 강해지고, 최악의 경우에는 어떤 강력한 항생제도 반응하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항생제를 남용하지 않고, 복용 시 중단하는 시기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 감염병인 CRE 감염증(가장 강력한 항생제인 카바페넴이 듣지 않는 희귀 패혈증을 일으키는 질병)은 지속적으로 증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병원이나 장기 치료 시설에서 진료 및 시술을 받는 환자에게서 흔히 발생하며, 접촉을 통해 감염이 된다. 감염환자의 60% 이상이 70세이며, 감염 환자의 50%는 사망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뉴스를 통해 얼핏 들었던 남의 이야기였다. 이름조차 무서운 ‘슈퍼박테리아’는 5년 전 우리 가족의 삶을 공격했고, 뉴스 속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되었다. 코로나 덕분에 감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요즘과 비교한다면, 그 당시 나는 참 무식했고, 오히려 그 무식함 때문에 그 시간을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지병을 앓고 있었다. 간과 신장이 좋지 않아서 병원 치료를 받으며 많은 약을 먹었다. 결혼 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1년에 두 번 정도는 응급실 신세를 지곤 했다. 나는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가족 중 지병을 앓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미 몸의 많은 부분이 망가진 상태에 세월의 흐름이 더해지자 시어머니의 병세는 점점 악화가 되었다.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고, 집에는 약 봉투가 넘쳐났다. 결국 주 3회 신장 투석을 시작했고, 꼬박 반나절 신장 투석을 받고 온 날은 더욱 힘들어했다. 힘든 시간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에 가는 횟수는 점점 늘었고, 급기야 중환자실에 입원을 몇 차례 하기도 했다. 셋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급히 떠난 시어머니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몇 개월 뒤 주검으로 마주했다. 아마 오랜 시간 다양한 약을 먹으면서 항생제에 내성이 생겼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CRE 감염증이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이 될 동안, 나는 고통과 슬픔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 가족 중 지병을 앓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심한 감기를 앓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물론 가장 힘든 사람은 병에 걸린 당사자일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환자를 돌보기 위해 다른 가족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어느 순간 그 희생이 너무 일방적이고 부당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도움이 절실한 남편은 늘 시댁에 호출이 있으면 달려갔고, 입원이라도 하면 장기간 집을 비웠다. 중환자실 입원 후 나오는 막대한 입원비는 당연히 우리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누구 한 명 손 벌릴 곳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은 당연했고, 감사하다는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무엇보다 건강한 것이 감사한 일이라지만 사람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너그럽고 인자하지 않았다. 남편 또한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점점 지쳤고, 무관심한 나에 대한 서운함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 질병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막연한 두려움 대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참 아쉽다.


그 당시 나는 힘겨운 상황이 반복되자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 감정의 내성(耐性)이 생겨서 가족의 상황을 공감하지 못한 채 로봇 같은 모습으로 살았다. 다행히 항생제 내성균에는 치료제가 없지만, 얼어붙은 감정은 내성(內省)을 통해 회복할 수 있었다. 시간의 내성(耐性) 덕분에 상처 받은 마음도 조금씩 아물어간다. 하지만 깊은 상처는 흉터를 남기는 법이다. 특히 요즘처럼 찬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그 흉터가 미세하게 욱신거린다.


우리 가족을 위협한 슈퍼 박테리아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맞는 3번째 겨울이다.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병원에 다녀오면 항생제가 들어 있는 약을 먹고, 귀찮다는 이유로 먹던 약을 그냥 버리기도 한다. 집단 사육을 할 때는 다량의 항생제를 사용하며, 그것은 온전히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른다. 삶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비슷한 공포를 마주할 것이다. 코로나 19 덕분에 다행히 환경 문제에 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우리 삶을 다방면으로 다시 살펴보며 반성한다. 이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되어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과학의 자만심 대신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겸손한 마음으로 앞으로 다가오는 봄에는 침묵을 깨고 진정한 따사로움이 깃들기를 소망한다.


미세하게 욱신거리는 내 마음도 따스한 봄의 기운이 어루만져주길…




❖ 내성의 두 가지 뜻

◽️내성(耐性) : 약물의 반복 복용에 의해 약효가 저하되는 현상

◽️내성(內省): (심리) 자신의 심리 상태나 정신의 움직임을 내면적으로 관찰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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