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등을 보며 나는 꿈을 그린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를 읽고

by 눈부신 일상

4년 전 겨울, 엄마는 내 나이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근무한 직장을 은퇴했다. 나는 셋째 출산 직전이라 4시간이나 이동해서 친정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엄마의 퇴임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엄마의 퇴직을 축하했고, 엄마의 삶을 존경했는데 정작 아무런 표현도 하지 못한 것이 이제야 아쉽고 후회가 된다.


엄마는 25살에 결혼을 하고, 딱 1년이 지난 결혼기념일에 나와 남동생을 동시에 만났다. 평생 일을 하면서 두 아이를 키웠고, 두 아이가 제법 커서 한 숨 돌릴 때 즈음 셋째가 태어났다. 역시 일을 계속했고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시어머니까지 챙겼다. 매일 새벽마다 도시락 4개(그때는 급식 없이 밤까지 자율학습을 했다)를 싸고, 집에 홀로 남겨진 어린 막내도 챙겨야 했다. 어릴 적, 목에 걸린 열쇠로 문을 열고 텅 빈 집에 들어오는 것이 참 싫었다. 다행히 그 아쉬움은 밤늦게 들어오는 딸을 기다리며 소파에서 졸고 있는 엄마의 모습으로 채워졌다. 텅 빈 집의 쓸쓸함 외 엄마가 일하기 때문에 생기는 빈 공간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엄마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고, 최대한의 사랑을 주었다.


솔직히 결혼 전까지 엄마가 정말 애쓰며 살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이해했다. 일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가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결혼 후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상상했다. 막상 엄마가 되고 나니, 자신감 넘치던 마음은 서서히 무너졌다. 결국 엄마가 된 지 5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사표를 내기 전 엄마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 엄마는 이미 내 상황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했고, 내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은퇴보다 두 계절 이른 퇴사를 했다. 가끔 엄마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다. 마치 엄마가 애쓴 삶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은퇴 후, 상실감에 힘들어하거나 무기력함에 활력을 잃을지 걱정을 했다. 우려와 달리 엄마는 은퇴 후 더 멋진 삶을 꾸려간다. 물론 사회적인 지위가 높았던 만큼 상실감도 클 것이다. 고작 10년 일했던 회사를 퇴사하고, 나는 힘들다고 주저앉아 울지 않았는가! 그 상실감도 묵묵히 이겨내며, 엄마는 그동안 일을 하느라 누리지 못했던 다른 쪽의 삶을 즐긴다. 낮에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나눈다. 신앙생활도 더 열심히 하고, 다양한 봉사활동도 하며 더 바쁜 일상을 가꾼다. 나와 동생들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면 고민 없이 찾아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아빠와 다양한 곳을 다니며 추억을 쌓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2번이나 완주를 했다. 엄마는 은퇴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겠다고 종종 농담처럼 말했다. 은퇴 후, 내 산후조리가 끝나자마자 큰 배낭을 짊어지고 아빠와 함께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800km를 걷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한 달 반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완전 다른 모습으로 일상에 돌아왔다. 젊은 나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길을 멋지게 걸어간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꿈이 하나 생겼다.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부모의 삶을 통해 직접 배운다. 사회적인 지위와 환경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은퇴 후 삶을 건강하게 즐긴다. 사회로 집중되던 아빠의 시선이 가정으로 향하며, 기꺼이 주방에서 자주 식사 준비를 한다. 물론 좋아하는 운동도 더 즐기며, 지금까지 매일 영어 공부를 한다. 꽤 오랜 시간 공부한 것에 비하면 실력 향상은 무척 더딘 편이다. 하지만 쓸모와 결과에 상관없이, 새벽에 영어를 중얼거리는 아빠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은퇴 전 경력을 살려서 해외 봉사 활동을 계획하고 지원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아빠의 행동에 정말 깜짝 놀랐다.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고 한다. 이제는 부모의 삶을 바라보며 내 미래를 생생하게 상상하며 꿈꾼다. 부모의 삶을 바라보며 한숨짓지 않고, 희망을 키울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부모의 등이 보이자, 부모의 주름과 흰머리도 보인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정성을 더하고 최선을 다하던 부모의 삶에 조금씩 활력이 사라지는 것이 낯설고 두렵다. 얼마 전, 부모님은 평생 삶의 터전을 떠나서 낯선 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아쉬움과 두려움 대신 더욱 활력이 넘치고 풍요로운 일상을 일구어가길 욕심내며, 딸의 사랑을 담아 모지스 할머니의 삶을 전한다.


그리고 20년 후의 내 삶을 스케치해 본다. 어떤 성취에도 상관없이 오늘과 비슷한 일상을 이어가는 그림이 흐릿하게 보인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니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새벽을 맞을 것이다. 따스한 차 한 잔을 벗 삼아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운동을 하겠지. 초를 다투며 챙겨야 할 아이들이 없으니 온전히 나의 흐름에 맞출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일 것이다.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과 모임을 이어가고, 다양한 배움과 성장을 즐길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내 하루에 만족하고, 끝까지 내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부단히 손을 움직이고 있다.


떠들썩한 아이들 틈에 섞여서, 색연필을 쥐고 조용히 벚꽃을 그려본다. 창을 넘어 따스한 햇살이 등 위에 내려앉고, 살포시 봄의 기운이 그림에 전해진다. 곧 벚꽃이 만개하면, 부모님과 함께 봄을 만끽하는 모습이 그림에 더해질 것이다. 따스한 햇살이 미소가 되어 얼굴에 잔잔히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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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을 돌아보니 하루 일과를 돌아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마쳤고 내가 이룬 것에 만족합니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 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27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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