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부단히 글을 쓰는 마음

by 눈부신 일상


“성의 공부는 모름지기 먼저 거짓말하지 않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마디 거짓말하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큰 죄가 되는 것으로 여겨야 하니 이것이 성의 공부로 들어가는 최초의 길목임을 명심하거라.”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


몇 개월의 망설임과 몇 개월의 기다림 끝에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0일이 되었고 14번째 글을 쓴다.


기막힌 우연으로 모임을 시작할 때 함께 한 그 책을 다시 만난다. 처음 쓴 글을 뒤적이며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나를 발견한다. ‘나를 닮은 글을 쓰고,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며, 삶에 색과 깊이를 더하고 싶다.’는 떨리던 다짐은 비처럼 내 삶에 스며들고 있다. 모임 시간마다 만나는 멋진 글이 아무리 부러워도 억지로 입기에는 굉장히 불편했다. 아무리 따라 하고 싶어도 쉽게 따라 하고 닮아갈 수 없는 것이 글이다. 멋진 글 앞에 수없이 감탄을 내뿜으며 한없이 쪼그라들기도 했다. 하지만 매주 쫄깃한 마감 시간을 통해 억지로 글을 썼다. 그 정성이 쪼그라든 나를 조금씩 채우며, 나를 닮은 글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다.


100일이 된 것을 몸이 먼저 알아챈 것일까? 글을 쓰기 싫다는 마음이 강해지고, 급기야 다양한 핑계를 생각한다. 몇 가지 고만고만한 이유를 생각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탐탁하지 않다. 기존에 썼던 글을 조금 다르게 퇴고해서 제출할까 생각도 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솔직하게 한번 쉬고 싶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핑곗거리를 찾아 분주한 머리와 달리 마음은 단조롭고 굳건했다. 내 글에 성의를 다하고 싶었다.


모임 전날 새벽, 모임 책을 준비하지 못해서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책 속의 작은 조각을 찾아본다. 대충 마음에 드는 책 속 글귀 하나를 잡고 글을 써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글귀를 찾아도 글을 쓰기에 역시 성의가 없다. 여러 개 열어 둔 인터넷 창을 닫고 책을 사기로 했다. 복잡한 머리가 깔끔하게 정리가 된 아침이 가볍고 산뜻하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산책도 할 겸 서점에 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한다. 입을 옷이 많은 겨울은 외출을 준비하는 시간이 더 힘들고 길어진다. 창밖에는 부슬부슬 비까지 내린다. 아이들 챙길 손도 부족한데 우산까지 더해서 꾸역꾸역 유모차를 밀며 집을 나섰다. 무사히 책을 구했고, 비에 젖어 축축해진 외투를 말리며 따뜻한 커피의 온기와 책을 읽어간다. ‘성의’라는 단어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맞다! 내가 매번 머리를 쥐어짜는 힘든 과정을 겪으며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나와 내 삶에 정성을 다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내 글쓰기의 시발점은 기록이다. 물론 학창 시절 글을 쓰는 것을 즐겼다는 것이 내가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방증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글을 쓰게 된 명확한 이유는 스치듯 지나가는 내 삶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때문이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열심히 달려 뒤돌아보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공허함 속에는 막연한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 찼다. 남겨진 마음과 결과와 내가 살아온 삶의 결이 너무 다른 것이 억울했고, 억울함을 대변할 증빙 서류를 만들 듯 매일 내 삶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기록을 했고, 섬세하게 많은 것을 담고 싶은 욕심에 정성을 다해 글을 쓴다. 그것이 마음 한편에 욕심과 부담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지금은 억척스러운 마음으로 욕심과 부담만큼 성의를 다해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언젠가는 이 에너지가 부족하게 되면, 글쓰기를 중단하게 될까? 좀 더 가볍고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정성을 다하는 시간을 통해 부디 후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부단히 글을 쓴다.


오늘 오후, 세 아이를 이끌고 빗속을 힘겹게 걸어 책을 사 오는 그 길에서다. 유모차를 비는 손등 위에 비가 더해져서 이미 축축하게 젖었다. 그냥 좀 비싸더라도 인터넷 주문을 했으면 편하게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괜히 속상하고 원망스럽다. 그 순간 퍼뜩 생각이 스친다. 두 손과 두 발을 통해 정성을 다하는 삶을 직접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라는. 그리고 혹시나 택배가 늦어져서 책을 제때 받지 못할까 봐 우려한 내 마음도 보인다. 막연하게 쓰려고 생각한 글의 주제가 선명해지는 느낌에 마스크로 김이 서린 안경 사이로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가벼워진다. 바로 이것이 힘들고 부담스럽지만, 부단히 글을 쓰는 이유이다. 다양하게 뻗어가는 일상의 가지 덕분에 삶이 풍성해진다. 풍요로운 일상은 언제나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선사한다.


정성을 다한 글은 진중(鎭重)하고, 그 글을 담은 삶 또한 진중(鎭重)해진다.



**진중하다

鎭重 형용사 무게가 있고 점잖다.

珍重 동사 아주 소중히 여기다. 형용사 진귀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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