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강아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by 눈부신 일상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키는 데 비해, 헵타 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 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



“엄마, 이 책 좀 읽어줘요!”

“중간 속도로 읽어줘요!”

“그게 아니잖아.. 제대로 읽어줘요!”


오늘도 한 생명체가 수차례 읽고 들어서 내용을 다 외우는 책을 들고 바쁜 내 꽁무니를 쫓아다닌다. 요령껏 속도를 내어 읽거나, 이야기를 훌쩍 건너뛰면 바로 불평이 이어진다. 불평 사이로 다양한 책을 읽었으면 하는 욕심이 고개를 내민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생명체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배웠지만, 여전히 온전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해보다 무조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뒤, 관계가 한결 가볍고 편해졌다. 다 아는 내용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 비효율적인 시간도 조금씩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낯선 생명체를 만나기 전 담뱃불 같은 삶을 살았다. 담배를 순차적으로 태우는 삶은 재와 연기를 남겼다.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자연스럽게 현재를 과거와 미래로 잇는다. 인과적인 해석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집착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현재를 뒤덮었다. 인과관계를 따지며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내 안에는 수북하게 담뱃재가 쌓이고 숨쉬기 어려울 만큼 자욱하게 담배 연기가 차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낯선 생명체 몇을 만났고, 그들은 불꽃놀이 같은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며, 오로지 지금만 지각하고 유일하게 자신만 인식했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본능적이라 느꼈다. 얄궂게 나는 나와 너무나 다른 생명체들을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다.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알지 못해 당황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그들을 닮아간다. 생명체가 사용하는 불편한 언어를 배우고, 낯선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어느덧 그들은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들을 ‘강아지(견犬, 見)’라고 부른다.


‘강아지들’은 최소화와 최대화에 익숙하다. 지금 당장 재미가 없고 관심이 없는 것은 제거하고, 좋아하고 즐거운 것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그들은 늘 웃는다. 물론 울거나 화를 낼 때도 있지만, 금방 잊고 자기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집중한다. 후회와 걱정은 없고, 늘 현재 시제 속에서만 살아간다. 현재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염두에 둬야 하는 내 삶에 ‘강아지들’의 삶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스스로 신발을 신을 수 있다며 좌우 반대로 신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속절없이 내려가버려도. 스스로 밥을 먹겠다고 하며 반 이상 바닥에 흘려도 지켜봐야 했다. 나중에 청소해야 하는 시간을 애써 잊고. 그렇게 살아도 별일 없었고, 집안은 웃음소리로 넘치고 사진첩에 추억은 더 많이 쌓여갔다.


‘강아지들’의 삶이 크게 바뀌는 시기, 신선한 공기가 내 안에 훅 들어왔다. 공기는 담배를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태운다. 순식간에 재가 쌓이고 연기가 자욱해지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인다. 평소에 담담하게 지켜볼 수 있었던 현재에서 어쩔 줄 몰라 종종걸음을 치며 방황한다. 갑자기 다른 사람의 삶을 뒤지며 비교하기 시작했고, 맹목적으로 그 삶을 좇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강아지들의 언어가 불편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강아지들의 매력이 사라지고, 믿음도 힘을 잃어가며 그들이 볼품없이 느껴진다. 나는 재와 연기로 숨쉬기 답답한 상황에 지쳐서 며칠을 앓고 잠만 잤다. 다행히 잠자는 시간 동안 무서운 속도로 타 들어가던 담뱃불이 잦아들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강아지들도 매력을 되찾았다.


신선한 공기가 한 바퀴 내 안을 휘젓고 난 뒤, 비로소 내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차분히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지금 내가 무게를 실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 아무리 ‘강아지들’의 언어를 배우고 사고방식에 익숙해도 완전히 나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아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두 삶 위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갈 뿐이다. 현재를 유심히 바라보며 집중하면서, 최소한으로 담배를 태우며 조심스럽게 과거와 미래를 이어간다. 내 안에 쌓이는 담뱃재와 연기가 ‘강아지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내 마음을 청소하는 시간을 통해 버리고 채워야 할 것을 고민한다.


*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쌀쌀한 공기에 봄기운이 가득한 계절이다. 글쓰기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자고 일어난 ‘강아지’가 엄마 냄새를 맡으며 품에서 중얼거린다.


“놀이터에 가서 미끄럼틀 타고 싶어요..”


갑자기 담뱃불이 피어오른다. 다행히 그 불씨를 잠재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무심히 깜빡거리며 나를 재촉하는 커서를 담담하게 무시하며 노트북을 덮고, 따스한 아이 손을 잡고 가볍게 놀이터로 향한다. 또다시 신선한 공기가 온몸에 휘감지만, 더 이상 내 안의 담배는 이전처럼 무섭게 타들어 가지 않는다. 모처럼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쳤고, 사진첩에는 행복이 담겼다.



**

글쓰기는 어떻게 되었냐고?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한 무책임한 존재가 되었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치고, 다행히 모임이 시작되기 전 부랴부랴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있어. 다행히 모임 전에는 글을 제출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넌지시 던지며 삐죽삐죽 모임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원래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었냐고? 아니.. 전혀.. 마감을 지키기 위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던 사람이었지. 미래가 두려웠고, 상대방의 시선이 불편한 사람이었어. 그런 본성이 여전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기에 이렇게 주절주절 변명 같은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아.


근데 어떻게 이렇게 변했냐고? 최소화와 최대화에 대해 ‘강아지들’에게 배웠거든. 내가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기 위해 버리고 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만큼 현재에 푹 빠져서 즐길 수 없어도 허리 정도는 담그고 함께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리고 글쓰기 모임은 마감보다는 나에게 솔직한 것이 더욱 중요한 곳이야. 부족한 나를 여과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곳이지. 그래서 마감을 지키지 못한 나도 뻔뻔할 수 있고, 그런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 믿는 곳이란다. 나누는 글이 더해질수록 더욱 특별한 소중한 곳이 되는 것 같다.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이 더해갈수록 삶의 행복도 더 커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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