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기억과 사라지는 기억 그 사이

<어른이 되면> 읽고

by 눈부신 일상

키가 180cm가 넘는 할아버지에게 요양원의 침대는 너무 짧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요양원 생활을 하는 10년 동안 편안하게 다리 한 번 뻗어보지 못하며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매번 요양보호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가족들이 고마워한 것은 기억을 잃은 할아버지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 덕분에 가족들이 삶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까?


할아버지는 훤칠한 키와 다부진 모습을 가진 멋진 분이었다. 나는 올곧은 할아버지를 무섭고 어려운 존재로 기억했다. 태어나면서부터 할아버지 집을 내 집처럼 오갔지만, 할아버지와는 꽤 먼 거리감을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강진한 할아버지는 퇴직 후,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점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고, 가끔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눈빛만큼 말투와 행동도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유난히 할머니에게는 더 강하고 거칠었다. 마치 자신의 모든 힘을 할머니에게 쏟아붓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할아버지 집에는 더 이상 할아버지의 숨결을 느낄 수 없었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이유를 간결하게 설명해주었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더 나빠졌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힘들어서 더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했다고.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 덕분에 나는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떠난 집은 금방 할머니의 숨결로 가득 찼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 가끔 할아버지의 새로운 ‘거처’를 방문했다. 건장하고 멋진 모습의 할아버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소매가 짧은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힘없이 몸을 의지한 낯선 분이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낯선 모습의 할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우리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다행히 손녀를 잊은 할아버지는 부드럽게 존댓말을 쓰며 당황한 나를 보듬어주었다. 그곳에는 똑같은 옷을 입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멍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복제품처럼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무거움 때문일까? 나는 잔뜩 긴장을 했고,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것은 형식적인 인사 몇 마디와 말 사이에 맴도는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안전하게 10년 이상을 지냈다. 점점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시간의 간격이 길어졌다. 아이를 맡기고 정신없이 출근하는 날 아침, 엄마가 담담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그 후, 무겁고 답답한 공기가 가득한 그곳을 더 이상 방문하지 않았다.



*

어느덧 나는 초보 엄마에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의 '거처'를 찾아가듯, 세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들의 할아버지를 방문한다. 시아버지는 환자복을 입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침대에 누워있다. 환자복은 모든 사람을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었다. 꽤 오래전 할아버지를 방문하던 때가 희미하게 겹친다. 처음 방문한 곳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질감과 무게가 무척 익숙했다. 무거운 공기가 나를 답답하게 눌렀고, 과거보다 더 긴장을 한다. 세 아이를 때문일까?


다행히 낯선 모습의 시아버지는 우리를 기억하고, 환히 웃으며 반긴다. 하지만 그곳은 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오래 머물기에 불편한 곳이었다. 그곳은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장소였다. 간결하게 인사를 나누고 형식적인 안부를 묻고 서둘러 우리는 삶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곳을 떠나는 순간까지 내 삶의 균형을 위해 짐을 대신 지고 있는 분들에게 여러 번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어쩌면 그분들과 더 내밀한 관계를 맺고 온 것이 아니었을까?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았을 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허무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상대를 기억하고, 삶의 기억이 남아 있어도 별반 다른 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겨진 기억은 더 야속했다. 더 애잔하고 안타까웠다. 불행 중 다행일까? 할아버지 때와 달리, 시아버지를 에워싸는 무거운 공기에서 금방 자유로울 수 있었다.


**

우리나라에는 70만 명이 넘는 치매 환자가 살고 있다고 한다. 65세 인구가 700만이 넘는다고 하니 열명 중 한 명은 치매를 앓는 것이다. (2018년 기준, 중앙치매센터 자료) 하지만 우리는 삶의 터전에서 치매 환자를 거의 만나지 못한다. 그 많은 치매 환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옆에 없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들을 격리한 것이다. 나머지 가족의 삶을 위해 낯선 환자복을 입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맡기다. 말없이 안전하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들이 구석으로 밀쳐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했다. 나 하나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아닌가!


사람의 기억이 사라진다고 그 사람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고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기억이 사라져 가는, 이미 기억이 사라진 사람도 변함없이 나에게 따듯한 미소를 전했다. 그 미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바로 온전한 기억을 가진 나였다.


어떤 모습과 상황이든,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함께 웃으며 평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특별한 주의사항이 아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소통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면 우리 모두는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그곳이 안전하게 죽음에 이르도록 보호하는 곳일지라도…


“이곳은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장소였다. 사람들은 이곳을 거쳐 다른 사람의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처럼 보였다. 시설은 한 번 들어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안전하게 죽음에 이르도록 보호하는 곳이었다.
...
이곳은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보호하는 곳이기 때문에 '거쳐' 이상의 인간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일, 더 나아가 지금의 '균형'을 깨뜨리는 위험한 일이었다. 나는 미처 그것을 몰랐다. 이곳에서 혜정이에게 주어진 것은 인간다울 권리가 아니라 그저 '고마운 줄 알아야 하는 호의’였다.”

-<어른이 되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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