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자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전자는 '~로부터의 자유'다. 나를 옭아매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때 소극적 자유가 성립한다. 후자는 '~할 자유'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때 적극적 자유가 성립한다.
-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중에서 -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 그녀는 엄마의 역할로부터 잠시 해방이 된다. 꽤 적극적으로 보낸 시간의 결과로 주어지는 지극히 소극적인 자유다. 세 번째 엄마가 되어서야 겨우 쟁취한 소극적인 시간이 그녀는 눈물겹도록 소중하다. 늘 하나의 역할이 비운 자리를 다른 역할이 재빨리 채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녀도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거실 통유리를 넘어 내리쬐는 햇살을 즐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그녀는 얇고 가벼운 책 한 권과 따스한 커피 한 잔으로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과하게 들어오는 햇살을 가리기 위해 쳐두었던 거실의 커튼을 걷을 시간이다. 멀리서 어둠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다시 마음이 바빠진다. 읽던 책을 덮고, 앞치마를 걸친다. 책은 작고 가벼웠지만, 의외로 책장은 무거웠다. 끙끙거리며 책을 읽는 시간에서 탈출할 수 있어서, 오늘은 앞치마가 새삼 반갑다. 난해한 책의 내용에서 벗어나지만, 금방 그녀의 머릿속은 매일 반복하는 중차대한 그 질문이 차지한다. ‘뭐 해 먹지?’
냉장고를 열고 열심히 눈을 굴리며 오늘 저녁 식탁을 상상하며 채워본다. 손발을 바지런히 움직이며 식사를 준비하는 와중에, 눈은 핸드폰 화면 속 드라마에 계속 머문다. 과도하게 부여된 엄마의 역할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내용이 너무 공감되어, 최근 가슴 뭉클하게 보는 드라마이다. 갑자기 드라마를 보던 핸드폰 화면에 낯선 번호가 나타나며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다. 낯선 번호만큼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시간대라, 잔뜩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ㅇㅇ입니다. 저녁 시간에 바쁜데 죄송합니다. 내일모레 행사가 예정되어 있는 거 아시나요? 가능하다면 출연해서 그동안의 경험을 나눠줄 수 있을까요? 유튜브 생방송이 늦은 시간에 진행이 되어서요..”
“아, 행사가 있는지 몰랐네요. 제 일정을 확인해서 내일 오전에 바로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연락 주세요. ”
그녀는 갑작스러운 전화에 잠시 얼떨떨하게 서 있었다. 방송에 출연한다는 상상만으로 가슴이 벌렁거렸다. 다시 핸드폰은 익숙한 드라마로 화면이 바뀌었고, 그녀는 애써 평온하게 야채를 다듬는다.
그녀는 일정을 확인한다고 했지만, 아무리 달력을 쳐다봐도 한 달 내내 특별한 일정이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섣불리 개인적인 약속을 잡을 수 없다. 왜냐면 그녀는 24시간 돌봐야 하는 어린아이가 세 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달력은 텅 비어있지만, 자유롭지 못한 그녀의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대신할 존재를 찾아야 비로소 잠깐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모처럼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만든 엄청난 기회를 재빨리 낚아챌 수 없었다.
그녀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남편의 저녁 일정을 확인한다. 그녀의 남편은 해외 업무가 많다 보니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유난히 미팅이 많다. 다행히 그날 저녁 시간대에 달력은 깨끗했다. 쓸데없이 철두철미한 그녀는, 혹시나 하는 걱정에 친정엄마에게도 전화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 마음속에 일렁이는 저항감을 잠재우는 것이다. 그동안 통통하게 살이 올라 동글동글한 모습도 걱정이고, 머리 손질을 할 때가 지나서 엉망인 몰골도 걱정이 되었다. 딱히 입고 갈 옷이 없는 것도 떠오르고, 특별하게 나눌 이야기가 없다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찰나의 순간에도 쓸데없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는 피식 웃는다. 깊은 한숨 속에 내면 깊은 곳에 웅크리고 두려움에 떠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쩌면 즉시 답을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내 안의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
쓸데없이 다양한 걱정과 달리 고민은 깊지 않았다. 모임 두 개가 연거푸 이어지는 바쁜 하루이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을 준비하고, 오후에 읽다 만 무거운 책장을 다시 꾸역꾸역 넘기며, 다시 연락하기로 한 아침을 맞이했다. 독서 모임을 끝내고 낯선 전화번호를 찾아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점심을 준비하는 시간,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차분하다. 오히려 상대방이 약간 긴장을 하며 주저하는 느낌이었다. 둘 사이 묘한 어색함이 흘렀다.
“안녕하세요! 정말 죄송한데.. 방송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많은 분께 연락을 했었어요. 통화 중에 바로 출연이 가능하다는 분이 있어서 그분들로 결정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전화를 끊었고, 처음보다 더 얼떨떨하게 서 있었다. 출연할까 말까 망설이던 마음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것인지, 후회와 아쉬움이 속절없이 몰려온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참 야속하다. 오늘은 드라마 대신, ‘띵’ 문자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혼선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로 찾아뵙겠습니다. 활발한 활동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ㅇㅇ에서 보낸 사과 문자였다. 그 문자는 섭외 과정에서 느낀 불쾌한 감정을 정당화할 뿐, 그녀는 누구에게도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을 나누고 위로받지 못했다. 바보 같은 마음만 차올랐다. 엄마의 역할로부터 잠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억울함으로 거세게 밀려와 그녀를 눌렀다. 그녀는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했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엄마의 한 마디에 왈칵 눈물이 차오른다. 애써 참으며 급히 전화를 끊고, 차오른 눈물을 속절없이 펑펑 쏟아냈다. 그녀 곁에는 아직 어린 막내가 함께 있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엄마의 눈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 옆에서 종알종알하며, 엄마의 마음을 도닥인다.
한참 울며 차오른 감정을 쏟아내고 나니, 불현듯 생각 한 조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친다.
‘자유.. 내일 글쓰기 모임에 제출할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의 역할로부터의 자유는 없지만 상상하며 글을 쓸 자유는 있잖아. 글로 풀어내고 훌훌 털어내자!’
그녀는 아침까지 무겁게 읽던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장 오늘 오후에 글을 한 편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책의 내용도 난해하지만,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책이 더욱더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번개처럼 스친 생각이 글쓰기의 부담감에서 그녀를 자유롭게 했다. 자유롭지 못해 눈물을 흘린 시간을 통해 다른 자유를 선물 받은 것이다. 그녀는 세상에 헛된 경험은 없는 것을 깨닫는다. 아니, 글쓰기는 어떤 경험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임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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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종알거리는 막내를 재우고, 다시 누리는 자유로운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로 생각을 풀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녀는 묵묵히 커서를 움직인다. 다시 ‘카톡~’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남편 : <내일 혼자 바람 쐬고 와>
엄마 : <다음에는 무조건 OK 해라. 엄마 일정은 조정 가능해!>
갑자기 모니터가 일렁이며 흔들린다. 그녀는 힘차게 눈물을 훔치고 당차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늘은 커피 대신 청명한 하늘과 잘 어울리는 시원한 맥주를 선택했다. 그녀는 낮술을 즐길 자유를 누리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흥~두고 보라지! 언젠가 상대방이 목 빠지게 내 답변을 기다리게 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