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은 없다>를 읽고
'음력설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새 학기가 되면 활기가 생길까?'
오늘도 마냥 무엇을 기다린다...
털 달린 두터운 외투를 입을 때부터, 그러니까 새해가 되었다고 많은 사람이 다부진 결심을 나눌 때부터 묵직한 몸과 마음은 함께했다. 유예 기간 같은 음력설이 지나면 당당하게 그 행렬에 합류할 수 있을까 기대를 했지만, 나는 여전히 잔뜩 웅크리고 있다. 새 학기가 되면 아이들의 시작에 휩쓸려 나도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를 했는데, 여전히 몸은 무겁고 마음은 냉랭하다. 변한 일상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지친 것을 탓하기는 영 탐탁하지 않다. 특별한 이유 없이 힘들고 마음이 흐트러지는 경우는 없니, 인정하기 싫어서 외면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라보아야 한다. 나무가 아닌 나무와 나무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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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에는 기대와 설렘만큼 두려움과 부담이 공존한다. 대체로 나의 시작은 설렘과 기대가 훨씬 컸다. 물론 다짐은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였고, 궁극에는 출발선에 품은 부푼 마음과 떨림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다시 출발선에서 쉽게 기대하고 설레며 시작할 수 있었다.
올해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너무 고요하고 잔잔해서, 무기력하게 느껴질 정도다. 한 살 더해진 아이들의 나이 덕분에 다른 시간을 어슴푸레 느낄 뿐이다. 주변 사람들은 당당하게 결심하고, 당차게 달려간다. 겨우 아등바등 현상 유지를 하는 내가 한심하게 보이고, 힘들고 지친다는 말이 투정처럼 들렸다. 갑자기 타인의 삶에 특별한 가치를 더하자, 내 삶이 초라해지고 의미 없게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작년은 결심이 작심삼일로 잊히지 않았다. 별생각 없이 적은 목표가 하나씩 현실이 되고, 기대 이상의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아쉽게 그 경험은 다른 출발에 동력이 되지 못하고 부담감과 두려움이 되어버렸다. 지금보다 더 나은 도전하고, 특별하게 이루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반갑게 봄을 맞는 지금까지, 책상 위 다이어리는 여백의 미를 뽐낸다.
솔직히 나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유지하는 것도 숨차고 힘겹다. 무엇 하나 작은 것이라도 욕심을 내면,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각오해야 한다. 가끔 욕심껏 꽉 찬 하루를 보내고 나면, 뿌듯하고 만족스럽기보다는 더는 못 해 먹겠다는 한숨만 늘었다. 가끔 더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생각 자체를 의심해 보기도 한다. ‘육아와 아이들을 핑계 삼는 것은 아닐까? 뭔가 더 쥐어짜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가?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나? 삶과 꿈에 간절한 마음이 없나?’ 생각이 깊고 넓어질수록 행동은 더욱 굼뜬다.
어느 순간 요즘 세대 필수라는 소셜미디어도 등한시하고, 수많은 단톡방도 유령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성취와 성과가 난무하는 곳이 거북하고, 소화할 수 없는 비법과 정보를 나누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단톡방에 복작복작하게 쌓이는 숫자가 마음의 무게를 더할 때 즈음, 무심히 단톡방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서 무게를 덜어낸다. 옷 위에 먼지를 털어내듯 간단한 일이었다. 오히려 무관심은 조금씩 초조함과 불안감을 잠재우고,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느끼도록 했다. (아쉽게 단톡방을 퇴장할 자신감은 아직 없다.)
혹시 조심스럽게 욕심을 내다가, 역시 할 수 없다는 용기를 배운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은 것은 일상 속 작은 빈틈을 찾기 위해 요리조리 눈치를 살핀다. 지루할 만큼 머뭇거리지만, 이조차 ‘나’이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쉬는 중일 수도 있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찾고 있을 수도 있다. 나비의 날갯짓을 하릴없다고 하는가! 주저앉아 울고 있지는 않고 부단히 손과 발을 움직이고 있다. 차근차근 방향과 속도를 찾아 나아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신념일지라도, 언제나 나는 내 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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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3년 차 “미라클 모닝러”는 암막 커튼을 비집고 들어오는 환한 햇살에 놀라며 겨우 눈을 뜬다. 거의 아이들과 함께 일어나거나 아이들이 먼저 일어나서 나를 깨우기도 있다. 아이들도 그런 엄마가 낯설고 신기하다고 한다. 분명 다른 시작은 내 일상을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이끌며, 요동치게 했다. 애타게 새벽 시간을 갈구하는 마음에 비해 그 시간을 채우는 활동은 무척 소소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잠이나 푹 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도 자도 남은 피로는 여전했고, 마음은 더 답답하고 무거워졌다. 다이어리 속 여백이 더욱 넓고 무거워졌다. 다시 이전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빈 다이어리를 마주할까 봐 점점 걱정되고 두려워졌다.
모처럼 어스름한 시간에 하루를 시작했다. 창밖의 어둠이 봄꽃만큼 나를 반긴다. 숨소리만 가득 한 공간에서 사소한 시간의 조각을 자근자근 이어간다. 모르는 것에 허덕이지 않고, 찬찬히 내 삶의 순간을 즐기고 쌓아가는 시간이 평온하다. 그 마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넓은 여백을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즐겁게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파도를 타고, 바람을 타듯 내 삶을 탄다.
오랜만에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을 통해, 삶의 온기를 느낀다. 내면 깊은 곳에서 따스하게 봄꽃이 피어난다. 참 위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마침 읽고 있는 책 속 한 구절이 살랑이는 봄바람을 타고 내 안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위대한 일은 없다. 오직 작은 일들만 있을 뿐이다. 그걸 위대한 마음으로 하면 된다."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이 순간에 깨어 있다는 그 사실보다 아름다운 일도 없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혹은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삶의 순간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히려 순간순간 노래하고 기뻐하며 쉬지 않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높게 날아올라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 날갯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날기 위해서 날고 살기 위해서 살뿐이다.
- <위대한 일은 없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