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눈물

<배움의 발견>을 읽고

by 눈부신 일상

코로나가 건넨 반가운 선물을 애써 하나 찾자면 배달 앱이 아닐까?


그녀는 평소 배달 음식을 즐기지 않았지만, 마스크처럼 익숙해진 코로나의 선물을 야금야금 사용하며 즐긴다. 쓰면 쓸수록 빠져드는 게, 참 요물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점심 식사 후, 묘하게 남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 선물 상자를 열었다. 앱을 열자마자 신박하게 그녀가 원하는 음식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끝없이 화면을 내리며 감동하는 사이, 그녀가 먹고 싶었던 음식은 품절이 되었다. 아쉬움에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던졌다. 여전히 그녀의 머릿속에는 휘황찬란한 음식들이 선명하게 남아 자신을 괴롭힌다. 구경꾼 같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복잡하게 생각만 가득한 그녀의 삶과 묘하게 닮았다.


그녀는 요란한 머릿속을 잠재우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서랍을 뒤진다. 딱 과자 한 봉지만 먹어야지 했는데, 어느새 그녀 수북하게 쌓인 과자 봉지를 마주했다. 분명 맛있게 먹었는데, 소화도 되기 전에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녀는 평생 체중에 신경을 썼고, 최근에는 심각하게 체중 감량을 고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마음 때문인지 갑자기 체기가 느껴진다.


‘괜찮아. 비도 오고 생리까지 시작하니 몸도 무겁고 기분도 꿀꿀하네. 달달한 것 좀 먹고 힘내서 할 일을 해야지…’



*

평소 그녀는 매일 체중계의 숫자를 확인하듯, 음식 칼로리를 확인하고 운동량을 확인했다. 그녀는 철저하게 다이어트를 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마음껏 먹지도 않았다. 매일 운동을 하고 음식의 칼로리와 영양소를 따진 덕분에 그녀는 오래도록 일정한 체중을 유지한다. 체중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것은 그녀의 삶을 소중히 가꾸고 그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1년 전, 그녀가 변했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답답하게 덮은 그때부터 그녀는 더 이상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는다. 음식 뒷면의 숫자자도 보지 않는다, 운동은커녕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았다. 체중에 무감각해진 만큼 삶은 무기력해졌다. 자신을 돌보는 것에 소홀해지자,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그 틈을 채웠다. 묘한 허기가 찾아왔고, 자주 음식을 탐닉하게 되었다. 악순환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그녀의 삶을 무참히 파헤쳤다.


시간이 갈수록 욕심과 강박감에 운동하기 더 어려웠고, 코로나의 매혹적인 선물에 집착했다. 그녀의 뇌는 계속 앙큼하게 거짓말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코로나로 힘겨운 상황에서 먹는 것이라도 즐겨야 한다고, 조금만 신경 쓰면 금방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얄밉게도 몸은 너무 솔직했다. 그녀는 애써 체중계의 숫자를 외면했지만, 오감으로 체중의 변화를 정확히 느꼈다.


체기를 느낀 바로 그날, 브래지어 아래에 불룩하게 잡히는 한 줌의 살덩이가 무척 낯설고 거북했다. 과자가 기분 전환이 되기는커녕, 살덩이의 무게에 눌려 숨쉬기조차 힘겨웠다. 찌뿌둥한 몸과 마음을 정성스럽게 돌보지 않고, 고작 과자 한 봉지에 의지해서 위로받으려 한 나약한 자신이 너무 싫었다. 비계 한 덩이를 먹은 듯 역겨웠다.



**

그녀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무엇에 홀린 듯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여러 번 다부지게 운동을 결심했지만 무참히 실패했다. 그 어떤 날도 걷지 못했던 길을 멍하니 걸어간다. 정처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어느새 한강이다. 넓고 탁 틔인 곳에 서 있으니 울렁이는 기분도 잦아들고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의 활력에 힘입어 발걸음에 속도를 더해보았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들으니 그녀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자, 몸이 서러움에 복받친 듯 눈물을 흘린다. 그동안 자신에게 무심했던 시간에 속상하고 억울했던 것처럼.


한바탕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듯, 모처럼 옷이 홀딱 젖도록 운동을 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그녀는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난 것 같이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던 멋진 사람이었다는 자만심을 벗어던졌다. 최근, 대책 없이 무너진 연약한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도 버렸다.


3년 전, 그녀는 살랑이는 봄바람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고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 생(生)을 찾았다. 그때와 묘하게 닮은 바람의 숨결이 몸의 눈물을 살며시 닦아준다. 이전까지 수없이 반복했던 무의미한 결심과 달리 생명력이 가득한 다짐이 꿈틀거린다. 생명을 듬뿍 머금은 새싹같이.


과거는 사실일 뿐, 어떤 과거도 지금 그녀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수와 후회를 어떻게 다루고,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이다. 온몸으로 울고 난 후. 비로소 그녀는 과거가 전하는 미래의 무거운 짐을 벗고, 대신 미래의 꿈을 스케치하며 중얼거린다. “내 역사를 쓰는 사람은 바로 나야!”



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 <배움의 발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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